행복은 즐거움이다. 불쾌하고 우울한데 행복할 리 없다. 즐거움을 찾고 행복해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마치 뜨거운 불길에 손을 데일까봐 얼른 피하는 것과 같이 또는 추운 겨울날 따끈한 아랫목을 찾듯이 말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인간은 쾌락을 좇고 불안을 멀리하는 쾌락원칙에 의해 움직여진다고 했다. 현실원칙이라는 이성과 자아의 힘으로 균형을 잡아가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쾌락은 인간을 움직이는 원천이다.

맛집을 찾는 행복

즐거움은 다양하다. 가볍게 기분이 좋아질 정도의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터질 것 같이 솟구치는 감정도 있다. 주식투자로 몇십만원을 벌어도 좋아 죽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수억원 정도 이득을 봐야 씩하고 미소 한 번 띄는 사람도 있다. 젊은 아가씨들은 낙엽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까르르한다지만, 나이가 드니 개그 프로그램을 봐도 무덤덤하다. 이렇게 즐거움은 정도, 원인, 반응 등이 다양하니 같으면서도 또한 다르다. 게다가 유행을 타고,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세월에 따른 즐거움의 변화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생각해보자. 예전에 맛집은 구전(口傳)이었다. 친구들이 좋다고 하면 가서 먹어보고 확인을 한다. 허름한 기사식당이라도 맛만 좋으면 되었다. 인테리어가 촌스럽다거나, 주인이 세련되지 못했다거나, 주차가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여전히 구전도 있지만, 대개는 인터넷을 통해서 맛집을 접한다. 고화질 컬러 사진으로 음식은 물론이고 인테리어까지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음식 맛과 더불어 종업원의 태도까지 평가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고, 주차장과 연회석이 완비되어 있는지 확인도 하고, 심지어 외국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맛 전문가의 평점까지 보고 맛집을 찾는다.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가! 서울 사람이 제주도 어디에 맛집이 있다고 하면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주관적인 감상을 읽고 간접 경험을 통해 나름의 평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실패의 확률이 줄어든다. 문제는 접근 가능한 정보가 지나치게 많다 보니 오히려 맛집 검색에, 다시 말해 즐거움을 찾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는 것이다.

맛집만이 아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쾌락을 위한 기회가 많아졌다. 주 5일제 근무로 바뀌면서 여행을 하거나 취미활동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회사나 동창회에도 같은 취미를 즐기려는 동호회 모임으로 북적댄다. 나이와 상관없이 즐거움을 위한 학습도 붐이다. 기껏해야 외국어 공부가 전부였던 직장인들도 요즘은 요리, 댄스, 와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즐거움을 위해 학원을 찾고 있다. 행복을 위한 긍정적인 변화다.

스마트폰 중독

하지만 쾌락이 절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중독되기 때문이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 쾌락은 행복의 일부분이지만, 자칫 중독에 이르면 불행에 빠지게 하는 양날의 칼인 셈이다.

최근에는 쾌락을 주는 자극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술과 담배 같은 법적으로 허용된 쾌락물질은 물론이고, 환각제나 마약류 같은 불법적인 쾌락물질도 심심치 않게 보도가 될 정도로 접근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졌다. 물론, 담배나 술과 같이 이미 해악이 널리 알려진 것이나 아예 불법으로 규정된 것은 경계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설마 중독될까?’하는 생각이 들 만한 것들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예를 들어보자. 스마트폰으로는 SNS를 통해 타인과의 교류를 늘리고, 연락처와 스케줄 관리에 편리하고, 음악도 듣고 게임도 할 수 있다. 이 만능 재미덩어리의 보급률이 세계 1~2위를 다투는 대한민국이다 보니, 심심치 않게 스마트폰 중독으로 상담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달 초에 놀러 갔었어요. 어찌하다 보니 배터리도 다 방전되고, 충전할 길도 없고 해서 처음에는 하루만 버티면 되는데 했어요. 그런데 막상 전원이 들어오지 않은 스마트폰을 들고 있자니 죽겠는 거에요. 불안하고 초조하고, 심지어 그날 잠도 못 잤어요. 그후로는 스마트폰이 또 방전이 될까 봐 늘 노심초사에요. 너무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아요.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후배 A는 곧 있을 출장이 두렵다며 상담을 했다. 지역이 동남아 어디라는데, 과거 출장 때 전화가 터지질 않아 불편했었는데, 지난달에 있었던 ‘스마트폰 방전 사건’ 이후에는 또 전화가 불통이 될까 봐 두렵기까지 하다고 한다. 설사 전화가 터진다고 한들, 데이터가 안 되면 메신저가 불가능할 텐데 큰일이라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봤자 정신 차리라는 소리만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별일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 마음은 자꾸 출장을 포기할까 하는 두려움마저 들게 된다는 것이다. A는 스마트폰 중독상태인 것이다.

사실 남들이 보면 아무 문제도 아닐 것 같지만, 중독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중독이란 쾌락을 찾고자 하는 뇌가 끊임없이 자극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극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술과 담배와 같이 ‘물질’일 수도 있고, 휴대폰 같은 ‘기구’일 수도, 운동과 같은 ‘행동’일 수도 있다. 중독에는 내성, 금단증상, 독성증상, 의존성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한 시간 정도 가지고 놀면 만족했던 스마트폰을 이제는 서너 시간은 들여다보고 있어야 성이 찬다면 ‘내성’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스마트폰이 없거나 방전되어 사용할 수 없을 때 몹시 불안해진다면 ‘금단증상’이 생긴 것이다. 지나치게 몰두하여 업무에 방해가 되면 ‘독성증상’, 늘 들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면 ‘의존성’이 걱정된다. 중독이 되면 이미 의지만으로는 어찌하기 힘들다. 우리 뇌가 끊임없이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원치 않는 명령을 쉴 새 없이 내려 전산시스템을 망가트리는 것과 같다. 중독은 우리 인생을 망친다.

행복의 쾌락이냐, 불행의 쾌락이냐

그렇다면 행복의 필수 조건인 동시에 중독의 가능성이 있는 쾌락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어떻게 하면 행복한 즐거움만을 맛볼 수 있을까? 어렵지 않다.

행복의 정의를 되짚어보자.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가 공존하는 포괄적인 경험’이다. 쾌락적 요소를 담고 있지만,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한다. 술을 마시면 즐겁다. 건강한 술자리를 통해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증진한다면, 행복한 즐거움이다. 하지만 아무리 재미있던 술자리라도 필름이 끊기고 시비가 붙고 건강까지 해친다면, 아마도 중독된 상태일 것이다. 산이 좋아 주말마다 오르면 즐겁다. 건강을 유지하고 자연과의 동화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본다면, 등산은 즐거운 행복이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고 산을 올라서 직장은 물론이고 가정생활까지 방해가 될 정도라면, 불행한 중독인 셈이다.

즐거움을 찾는 것은 본능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의미 없이 쾌락만을 추구하다 보면 자칫 중독에 빠지게 되고, 중독은 우리 삶을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므로 즐겁게 살되 늘 의미를 찾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가 공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