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 클라슨 메타메트릭스 COO. 사진=이코노믹 리뷰 이미화 기자

올해 수능 영어 과목에 출제 오류가 있었나 보다. 변별력 조정에서도 실패했다. 수능은 입시 방법이 획일화된 한국의 유일무이한 대학입학평가의 기준 시험이라는 점에서 미디어가 연일 무게 있게 보도하고 있는 것이 호들갑만은 아니다. 교육은 자원 없는 이 나라의 국민이 예외 없이 모두 가지고 있는 열망이었고 대학 입시는 학부모 수험생을 떠나 전 국민의 관심사다.

과거 수출역군 출신으로 중산층이 된 한국 사람들은 소득 수준의 상승과 더불어 영어 교육에 대한 열의를 높여만 갔다. 영어는 입시뿐만 아니라 취업과 승진 등 사회가 요구하는 상위의 가치 기준이 됐다. 세계에서 영어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것이 이것을 방증한다. 대한민국은 영어 사교육에 연간 6조5천억원을 쓴다.

한국의 대학 졸업자와 토익 시험 고득점자는 넘치는데 외국인을 만나면 기가 죽는다고 한동안 어휘력과 독해력을 강조하던 입시 위주 영어교육은 없어지고 듣기·말하기의 회화 교육이 강조됐다. 회화라면서 실제 다양한 영어를 사용하는 세계인과의 소통보다는 미국인이 쓰는 발음과 억양을 흉내내는 것이 이 나라 영어 교육의 유일한 목표라는 듯이 전 정권 인수위원회의 위원장이 ‘어륀지’ 사단(?)을 벌이기도 했다.

영어 과목의 변별력이 ‘물수능’이란 신조어를 낳으며 뉴스가 된 것도 영어 과목이 가지는 특수성과 정치성에 있다. 영어 점수는 부모의 소득과 비례한다. 실제 많은 연구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해외연수 등을 동반하는 신식 영어회화 교육은 부자들만 소비하는 고급품이고 신분 상속의 매개다. 이에 계층간 지역간 격차를 염려한 정부는 수능을 쉽게 내라고 요구했고 ‘물수능’이 됐다.

그러는 사이 동양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이 국제 무대에 등장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공식석상에서 그는 품위 있고 설득력 높은 연설을 영어로 구사했다. 문법은 옳았고 발음의 명확성은 높았으며 어휘는 간결하면서도 쓰임이 정확했다. 가난한 시절 한국의 재래 영어교육을 받은 그의 영어는 당연히 원어민의 것과는 달랐지만 세계인들은 오히려 “또박또박 알아듣기 쉬웠다”, “(그가 살아온) 문화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극찬했다.

연임에 성공한 반 총장은 세계를 감동시키는 명연설가로 유명하다. 의사표현과 소통에 흉내낸 억양보다 그에 담긴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증명됐다. 어린 반기문이 타임지와 내셔널지오그래피와 같은 영어원서를 통째로 암기했다고 할 만큼 독해에 천착한 방법으로 영어를 배워 영어권 문화와 역사, 다양한 정보, 전문지식 등에 해박한 것이 알려지면서 한국은 다시 읽기 교육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18일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어교육 시장을 찾은 메타메트릭스의 최고운영책임자 팀 클라슨을 만났다. 메타메트릭스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영어 독서 지수인 ‘렉사일 지수(Lexile Measures)’를 개발한 연구법인이다.
 

- 지난주 치러진 한국의 수능 시험지를 보았나? 소감은?

봤다. 흥미로웠다.
실제로 메타메트릭스는 매년 수능 영어 시험의 렉사일 지수를 매기고 있다. 보통 한국 수능 영어 시험의 렉사일 지수는 1200L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협업을 진행하는 서울대학교에서 재학생이 쓰는 교재는 1200~1300L 수준이었다. 미국 학생의 대입 시험인 SAT가 1300L 수준이다. 한국 학생들은 글로벌 회사에 취직하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글로벌 시민으로써의 준비가 돼 있다.
 

- 렉사일 지수를 개발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공교육 커리큘럼 등 미국에서만 매년 3천5백만명 이상의 학생들이 활용하는 렉사일 지수는 1984년 메타메트릭스 설립 이후 국립보건국(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등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처음 개발됐다.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국민들의 영어 읽기 실력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교육에 앞서 수준을 나누는 동일한 기준이 있어야 했다.
 

- 교육 당국이 아닌 보건국에서 지원을 받은 것이 특이하다.

렉사일 지수를 처음 개발할 당시인 30년 전 미국에서는 문맹(文盲)의 문제가 보건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민자 가정 등 취약계층 아이들의 문맹을 해결하고 독서 교육을 지원하는 목적이 있었다. 좋은 책을 읽히는 것이 가장 좋은 학습 방법이고, 계층 간 지역 간 교육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 렉사일 지수가 영어 읽기 능력의 평가치라는데, 어떤 방법으로 평가하나?

교재와 사용자를 둘 다 평가하는데 방법은 다르다. 0L(렉사일)부터 2000L까지 측정되는 렉사일 지수는 개인의 영어독서실력을 측정하는 ‘렉사일 독자 지수’와 텍스트의 난이도를 측정하는 ‘렉사일 텍스트 지수’ 두 가지다.
먼저 교재의 경우 어휘, 문장 길이 등을 통합적으로 평가하는 ‘렉사일 분석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수준을 나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서점 인터파크, 예스24와의 제휴를 통해 렉사일 지수가 적용된 영어 도서를 판매하고 있다.
사용자를 평가할 때는 ETS(미국영어평가원)이나 스콜라스틱 등에서 만드는 시험을 통해 점수를 매기고 이를 변환해서 평가한다. 어린 학생들이 보는 토플 주니어나 토플 프라이머리 등의 시험으로도 렉사일 지수를 평가할 수 있고, 우리의 파트너사인 청담 러닝 에이프릴 어학원과 개발한 자체 평가시험도 있다. 
 

- 한국의 영어 사교육 시장은 거대하다. 한국의 영어 공교육도 영어가 만들어내는 계층간 격차를 보완해야 한다. 이 둘이 혼재한 한국 시장에서 어떤 트랙을 따르고 싶나?

두 가지 다다. 미국에서와같이 학교 교과서나 영어 읽기 교재를 평가해 학생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독서를 하도록 돕고 독후 토론 등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의 정책입안자들이나 교육 당국자, 교과서 출판업자들을 만날 계획에 있다.
한국에서 공교육과 사교육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청담 러닝 에이프릴 어학원 등의 우리 파트너사와 함께 연구 개발한 평가 테스트도 체계적인 다독 교육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 읽기 이외에 말하기나 쓰기 등을 평가하는 방법도 개발했나?

최근 렉사일 프레임워크 포 라이팅(Lexile Framework for Writing)을 개발해 작문 교육 평가도 받을 수 있고, 원래도 영어 오디오북을 듣고 따라하는 방법을 활용했기 때문에 자연히 읽기 외의 다른 영어 활용 스킬도 늘게 된다.
 

- 영문학 전공자인 기자가 생각하기에 어휘를 따로 암기하는 과정 없이 읽기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저절로 독해 실력이 향상되지는 않을 것 같다.

렉사일 지수 800L 수준의 학생이 꾸준히 동일한 수준의 교재를 읽고 오디오 자료도 들었다면, 이 학생은 1000L의 렉사일 지수 책도 이해할 수는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문맥(context)이 있기 때문이다. 모국어를 배울 때 어휘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로 외운 것이 아니지 않나. 어휘들이 문맥 속에서 반복될 때 저절로 뜻을 알게 된다. 외국어를 배울 때에도 이 순서가 더 옳다.
많은 사례를 통해 읽기 훈련을 통해 영어의 네 가지 영역이 골고루 향상되며 이해력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아시아에는 한국에만 지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

본사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를 포함해 뉴욕 등 미국 내에 연구개발, 컨설팅인력들이 포진해 있고, 유럽과 남미에 진출했으며 말한 대로 아시아에는 한국지사가 있고 일본에 컨설턴트가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영어를 배우면 더 많은 기회의 문이 열리는 사회기에 영어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다.
 

- 한국에 진출한 지 3년이 넘었는데 인지도가 높지 않다.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어교육 관련 회사가 한국에 진출했다고 하니 흔히 수익만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연구기관이다. 유의미한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 우리의 더 큰 목적이다.
비상교육이 주최하는 초등 학부모 강연인 ‘맘앤토크’를 통해 한국 학부모들과 만난 적이 있다. 그들 중 다수가 렉사일 지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이미 활용하고 있었다. 서울대 등과 활발한 연구와 협업이 진행 중에 있다.
교육 필드에서는 무엇보다 그 토대를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미국에서 영어 독서 교육의 토대를 만드는 데 10년이 걸렸다. 3년 반 동안 한국시장에서 본 변화와 관심을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