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키아 5800 익스프레스 뮤직. 출처=노키아

사회초년생 K가 사용한 첫 스마트폰은 다소 생소한 기기였다. 익뮤라고 불리는 ‘노키아 5800 익스프레스 뮤직’이었다. 2009년 출시된 제품을 2010년 초에 샀으니 ‘구닥다리’는 아닐 것이라 믿었다. K는 사실 스마트폰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다. 익뮤가 그저 스마트폰이라는 것만 알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익뮤로는 다른 친구들이 다 하는 카카오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문자 메시지 창을 카카오톡과 비슷하게 꾸며주는 스킨만 설치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비웃었다. “그건 카톡이 아니야!” 심지어 여러 앱을 설치하고 싶었지만 한국어로 된 앱은 구하기 힘들었다. 뒤늦게 익뮤가 심비안 OS(운영체제)를 탑재한 기기라는 것을 알았다. K는 다짐했다. 다시는 심비안폰을 쓰지 않겠다고.

심비안 OS(Symbian OS)는 2001년에 출시된 모바일 기기 운영체제다. 1998년 파나소닉·노키아·삼성전자 등이 뭉쳐 동명의 개발업체를 세웠으며  한때 세계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주로 노키아 기기에 탑재돼 인기를 얻었다.

성공도 함께, 몰락도 함께

한때 심비안은 전 세계 모바일 OS의 80%를 담당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현재까지 심비안 기반의 기기는 3억대가 넘게 보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 출처=노키아

다만 높은 점유율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편차가 심했기 때문이다. 심비안폰은 국내를 비롯해 일본과 미국 등 주요시장에서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주로 유럽이나 중국, 러시아 등 상대적으로 IT 변경지에서 인기가 많았다.

심비안을 알기 위해서는 노키아를 살펴보는 게 우선이다. 심비안은 노키아와 ‘영광의 시절’을 함께했다. 심지어 몰락도 함께했다. 지난 2009년 2월 노키아는 심비안Ltd.를 인수했다. 사실상 노키아만 심비안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이상할 것이 없는 결정이었다.

이후 심비안이 후발주자인 구글 안드로이드, 애플 iOS에 ‘판정패’를 당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심비안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조금씩 경쟁력을 잃자 마이크로소프트(MS) 출신의 신임 최고경영자(CEO) 스티븐 엘롭은 심비안을 내치고, 윈도 기반 OS를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더 이상 심비안 전용 앱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윈도폰 판매 실적도 부진했다. 노키아는 반복된 주가폭락으로 구조조정까지 단행했다. 그러다 휴대전화 사업부를 MS에 넘기게 됐다. 핀란드의 자존심이었던 노키아의 시대가 저문 것이다. 최근 MS는 노키아 브랜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업계 관계자들은 노키아를 위기에 빠트린 주범으로 심비안을 지목하기도 한다.

그렇게 심비안은 침몰했다

그 어느 분야보다 IT업계의 시계는 빠른 편이다. 성공도 실패도 급속도로 진행된다. 2011년 시장조사기업 가트너는 2015년에는 심비안 사용자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예측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됐다.

분명 노키아는 반등의 기회를 엿봤다. 심비안 OS 소스코드를 무료 공개한 것이 대표적인 노력이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개발자는 모여들지 않았다. 다시 심비안을 채택하려는 제조업체도 없었다. 결국 노키아는 소스코드 공개를 철회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선원들은 단합하지 못했다. 노키아 OS 개발팀 내부에서 갈등이 생겨난 것이다. 심비안을 개선해 활용하자는 부류와 신규 OS 미고(MeeGO)를 발전시키자는 부류가 대치했다. 양측은 서로 사내 간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피 터지게 싸웠다. 노키아 입장에서는 엄청난 시간과 재원 낭비인 셈이다.

이렇게 노키아와 심비안은 침몰했다. 한 외신은 “무대 위에 올라온 더 젊고 예쁜 여배우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내줘야 하는 나이 든 여배우와 같은 신세”라며 노키아와 심비안을 비꼬기도 했다.

▲ ‘심비안폰’ 노키아 X7. 출처=노키아

심비안이 퇴장한 자리는 현재 iOS와 안드로이드가 꿰찼다. 그들이 일으킨 바람은 거셌다. 물론 심비안의 몰락을 외풍 탓으로만 돌린 순 없다. 다양한 몰락 이유를 들 수 있다. 우선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심비안은 피처폰 기반 OS다. 피처폰 하드웨어에 적합하며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고성능 AP에 어울리지 않았다.

국내 심비안 전용 앱 개발자 커뮤니티 ‘앤유’ 운영자 김윤식 씨는 “노키아와 심비안의 몰락 이유는 동일하다.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며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 특히 SW 생태계를 갖추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SW 개발자가 많지 않으니 전용 앱이 부족하고 결국 유저들도 외면했다”고 회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심비안의 자리가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심비안 전용 앱 자체가 얼마 없었지만 한국어를 지원하는 앱은 더더욱 드물었다. 물론 국내에 심비안 앱 개발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윤식 씨는 “심비안만 보고 개발 의지를 불태울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해외를 타깃으로 한 개발자가 있었지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들 중 일부는 현재 삼성전자의 타이젠 OS 전용 앱을 개발하며 타이젠이 블루오션이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제3의 OS가 가능하려면

아이폰이 등장한 2007년 노키아는 긴장하지 않았다. 여기에 구글까지 가세하며 심비안의 자리를 침탈했다. 많은 제조사가 재빨리 심비안에서 내려 새로운 배를 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심비안폰은 종적을 감췄다. 쓸쓸한 퇴장이었다.

▲ 윈도폰 OS를 탑재한 MS 루미아. 출처=마이크로소프트

최근 구글은 64bit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롤리팝을 공개해 주목받고 있다. 애플의 iOS는 아이폰6 시리즈 흥행 물결을 타고 순항 중이다. 강자들이 차지한 OS 시장 이면엔 퇴출당한 OS도 있다. 미고(MeeGo), 리모(LiMo) 등이 그렇게 됐다. 캐노니컬의 우분투 터치, 팜 OS, 모질라재단의 파이어폭스OS도 기대를 모았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럼에도 자체 OS 개발을 통해 주류 OS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꾸준히 타이젠 OS를 성장시키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대안 OS가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OS로써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앱 생태계가 구축돼야 하지만,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는 블랙베리나 MS도 성공적으로 완수하지 못한 임무다. 제3의 모바일 OS가 의미 있는 시장점유율을 얻기 위해서는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와 앱 개발자를 등에 업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안 OS 개발은 계속될 것이며 그중 일부는 심비안과 운명을 같이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