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국회

지난 9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담뱃값 인상’ 계획안이 대국민을 상대로 한 소위 ‘카드 돌려막기’식 기만행위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A카드에 결제할 금액을 B카드 현금서비스나 대출로 마련하고, B카드에 결제할 금액을 C카드 현금서비스나 대출로 마련하고 C카드 결제할 금액을 다시 A카드 현금서비스나 대출로 막는 것을 카드 돌려막기라고 한다.

과거 국내 건설사들이 사세 확장을 위해 A아파트를 담보로 B아파트 지을 돈을 대출 받고 C아파트 분양 대금으로 A아파트 대출금을 갚았던 방식과도 비슷하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담뱃값 인상’ 역시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세금을 더 내도록 만든 후 그 돈으로 서민들의 복지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조삼모사’, ‘카드 돌려막기’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현재 ‘담뱃값 인상안’은 기획재정부는 ‘개별소비세’로, 안전행정부는 ‘담배소비세’와 ‘소방안전세’로,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방교육세’,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기금’, 환경부는 ‘폐기물부담금’의 명목으로 각각 예산확보를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도 각 상임위원회별 각각의 별개 법안으로 다루게 된다. 즉, 어떤 한 상임위에서 인상안을 반대해도 나머지 상임위 중 하나라도 찬성해서 본회의에 넘긴다면 담뱃값은 인상되는 셈이다.

 

내년 담배 판매 세수 10조원 넘어
한 국회 관계자는 “현재 각 상임위 별로 개개의 법안을 다루고 있으며 일부 상임위는 내년에 다시 논의하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지만 각각의 상임위가 별개로 움직이고 있어 본회의 상정은 기정사실로 보인다”고 전했다.

결국 어떻게 하든 내년에는 담뱃값 인상을 통해 세금이 오른다는 말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야당도 현 정부의 재정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담뱃값 인상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인상 폭을 낮추려는 것이 현재 당론인 듯하다”고 말했다.

여야가 담뱃값 인상에 합의하는 이면에는 담배 한 갑에 이런저런 명복을 붙여 2000원 인상했을 때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이 10조원 이상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 박영선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내년 예상 세수 증대 효과는 2조 8547억원이라고 밝힌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개별소비세 1조 742억원, 건강증진부담금 8726억원, 담배소비세 4972억원, 지방교육세 2697억원, 부가가치세 1015억원, 폐기물 부담금 395억원 등이다.

기재부가 추산한 올해 담배 판매 세수는 6조 7427억원이다. 여기에 2조 8547억원을 더하면 내년 담배 판매 세수는 9조 5974억원이 된다.

내년 추가 세수 예상치인 2조 8500억원은 정부가 보수적으로 추산한 것이어서 내년 1월부터 담뱃값이 4500원으로 인상된다면 세수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 담뱃값 빼면 세수 증가 ‘0’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10일 ‘2014~2018년 NABO 재정전망’을 통해 담뱃값 인상분을 제외하면 앞으로 4년간 세수증대 효과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반면 담뱃값 인상 시 세수증가 효과는 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담뱃값 인상이 사실상 서민증세라는 또 하나의 배경이다.

예정처는 “담뱃값 2000원 인상 시 관련 조세·부담금은 현재의 1550원에서 3318원으로 증가한다"며 "담배 가격에서 조세 및 부담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62%에서 73.7%로 늘어난다"고 밝혔다.

정홍원 국무총리 역시 지난 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담뱃값,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을 둘러싼 ‘서민증세’ 논란에 대해 “(국민) 부담이 늘어난 것은 맞다”고 시인한바 있다.

정부는 가격요인만을 반영해 추정한 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보고를 인용해 담뱃값 2000원 인상 시 담배소비량이 34% 감소하고 세수가 약 2조 8000억원 증가한다고 발표한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 자료에 대해 “조세재정연구원의 탄력도를 근거로 하면 담뱃값이 8382원이 될 때 판매량이 ‘0’이 되는 비현실적인 분석결과가 도출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발 통계, 오류투성이 근거 의심
정부는 지난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OECD 회원국 중 최고수준인 43.7%라며 이를 30% 미만으로 줄이기 위해 강력한 금연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4년 OECD 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흡연율은 23.2%로 OECD 회원국과 브릭스 6개국을 포함한 전체 40개국 중 14위로 집계됐다. 자료에 따르면 OECD 평균 성인흡연율은 20.9%였다.

정부가 담뱃값 인상의 가장 큰 정당성으로 내세우는 것이 담뱃값 인상을 통한 흡연율 감소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의 경우 지난 2004년 말 담뱃세 인상 후 담배 판매량이 2005년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에서도 2010년 10월 담뱃세를 인상했지만 오히려 흡연율은 약 1%포인트 상승해 내부적으로도 당시 인상안이 실패한 정책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바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한국납세자연맹이 흡연율 하락 원인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격이 아닌 건강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당시 인터넷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44%가 ‘본인 및 가족의 건강’을, 22%는 ‘주위의 부정적 인식’을 금연을 하게 된 이유로 꼽았다. ‘담배가격 부담’을 금연의 이유로 든 응답자는 5.1%에 불과했다.

 

증세가 저소득층 ‘건강 불평등’ 해법?
나성린 새누리당 국회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지난 9월 18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해 “(담뱃값 인상)흡연율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므로 1000원에 플러스알파 정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서민증세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서민들이 담뱃값 인상으로 세금을 더 부담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이 사실은 더 많이 부담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은 민주당 출신 지자체장을 포함해 지방자치단체의 요구사항에서 나온 것”이라며 “지방 세수가 심각하게 부족하기 때문에 요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민증세 논란에 정부는 “담뱃값 인상을 통해 금연 유도 및 흡연자를 위한 실질적인 금연 지원을 강화해 ‘저소득층의 건강 불평등 격차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고 답한바 있다.

하지만 김현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담뱃세 인상에 따른 추정 담세율 역시 고소득층(2%) 대비 저소득층(11%)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가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소득수준 하위 25%의 남성 훕연율은 1998년 69.1%에서 2004년 담뱃값을 인상한 이후인 2011년 53.9%로 15.2%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상위 25%의 흡연율은 같은 기간 63%에서 44.1%로 19.3%포인트 하락했다.

 

담뱃값 인상 피해 저소득층이 더 커
담뱃값 인상이 저소득층에 미치는 영향이 보다 고소득층의 흡연율 감소에 더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바꿔 말해 저소득층은 담뱃값이 올라도 끊는 사람보다 계속해서 피우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결국 담뱃값 인상은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의 세부담을 높인다는 것이다.

김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소득별 일별 흡연량을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 담배가격이 2000원 인상되면 최저 소득계층의 담세율은 11.4%, 최고 소득층의 담세율은 2.3%에 불과하다.

납세자연맹은 지난 9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담뱃값이 2000원 인상될 경우 하루에 1갑을 피우면 연간 121만원의 세금을 더 내게 되는 샘이라고 밝혔다.

연봉 약 4745만원을 받는 근로소득자의 근로소득세 125만원과 맞먹는 세금이며 기준시가 9억 원짜리 아파트 소유자가 내는 재산세와도 비슷한 액수라고 강조했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정부가 지급하는 기초연금 10만원, 정부지원금 30만원, 총 40만 원으로 살아가는 독거노인에게 국가에서 보조해준 480만원 중 121만원을 다시 빼앗아 가는 것이 국가가 할 짓인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담뱃세 인상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렵게 생활하는 사회적 약자에 역진적인 세금을 걷어 복지를 구현하자는 것”이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폭력”이라고 비난했다.

더 아이러니 한 것은 지난 2006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정부의 담뱃값 인상에 대해 발표한 성명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정부의 주장은 담뱃값 인상의 주 목적이 흡연율 감소와 국민건강증진보다는 애초부터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자백하는 것”이라며 “국회의 지적대로 일단 법안이 통과된 후 확보된 세수를 바탕으로 예산안을 짰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는 과거 담뱃값 인상을 통해 흡연율이 감소됐다고 연일 선전을 하고 있지만 최근 설문조사 결과 금연자의 92.1%는 건강 염려 등 가격 이외의 요인 때문에 금연을 한 것”이라며 “담배가격 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 역진성을 심화시키며 밀수와 사재기 등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고 물가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고 밝혔다.

 

여야 ‘서민증세’엔 합의 증가분은?
한 마디도 다르지 않게 현 야권과 시민단체들이 지적하는 내용이다. 결국 누가 정권을 잡든 담뱃값 인상을 통한 증세가 정부여당의 숙원사업인 셈이다.

현재 서민증세는 담뱃값만이 아니다. 내년쯤 지방세 인상에 이어 전국의 공공요금이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에 따르면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시 등 수도권 지자체들은 내년 초 버스와 지하철 요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지자체들은 이미 이달부터 시내버스 요금을 올렸다. 용인시와 원주시 등은 내년부터 쓰레기봉투와 상하수도 요금을 상향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지방 공공요금뿐만 아니라 고속도로 통행료 등 중앙 공공요금도 인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과는 다르게 다양한 서민증세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공요금과 생활요금을 올려 서민들의 복지를 지원한다는 것이 현 정부의 복지정책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의 흡연인구는 약 1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전국민의 1/4이다. 흡연구역을 줄이고 혐오스런 방송광고를 내보내며 마치 흡연자를 사회적 암처럼 몰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담뱃값을 올려 그 돈으로 서민들의 위한 복지에 사용한다고 하니 이 역시 모순이 아니지 않나 싶다.

노철래 국회 의원은 지난달 15일 “감사원이 55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공공기관 경영관리감독실태’ 결과는 충격적”이라며 “이들 공공기관이 방만 경영으로 낭비한 예산이 무려 12조 2000억원에 이르며 이는 내년도 정부예산안 376조원의 3.2%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밝혔다.

줄줄 세고 있는 공공기관들의 방만경영 자금만 줄여도 ‘서민증세’는 불필요한 셈이다.

현재 국회에서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심의 중이다. 여야 모두 정부 재정이 부족하다는데 의견을 함께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내년 ‘서민증세’가 어느 선에서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