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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크린] 싸이월드, 끝나지 않은 이야기그 많던 일촌은 어디로 떠났을까?
▲ 출처=싸이월드

싸이월드는 한때 잘나갔다. 3500만명을 넘었던 가입자들은 너도나도 도토리를 구매해 자신의 미니홈피를 꾸몄다. 방학 때가 되면 트래픽이 치솟아 비상 서버를 가동해야 할 정도로 이용자가 몰린 적도 있었다. 싸이월드는 ‘국민 SNS’라는 말이 어울렸다. 지나서 보니 싸이월드는 SNS의 원조였다.

싸이월드는 지난 1999년 이동형(現 나우프로필 대표)이 카이스트 동기들과 함께 만든 SNS 서비스로 짧은 시간에 회원이 300만명까지 급증하며 ‘벤처 신화’를 써내려갔다. 이후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즈(SK컴즈)에 인수·합병되는데, 주식 교환 방식으로 약 75억원에 계약이 성사됐다.

포털업체 ‘넷츠고’와 ‘라이코스’의 합병으로 탄생한 ‘SK컴즈’는 싸이월드 인수·합병 후 싸이월드 운영에 집중한다. 그 결과 2000년대 중반 전성기를 누리며 다양한 기록을 만들어냈다. 시가총액 1조원, 매출 1천억원, 회원 수 3500만명, 도토리 하루 매출 3억원 돌파 등의 진기록을 낳았다. 2004년엔 삼성경제연구소가 히트상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싸이월드 천하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용자들이 빠른 속도로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싸이월드의 부진으로 SK컴즈는 무려 11분기 연속 적자에 빠졌다. 결국, 지난 4월 SK컴즈는 싸이월드를 종업원지주회사로 완전 독립시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많던 일촌은 싸이월드를 떠난 것일까.

모바일 시대에 적응 못하다

한마디로 싸이월드는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 PC 기반 서비스의 한계를 노출하며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 등에 자리를 내줬다. 경쟁업체보다 시작은 빨랐다. 싸이월드의 모바일 서비스는 2004년부터 시작했으니 그 당시 페이스북·트위터보다 무려 2년이나 앞섰다. 그러나 PC 버전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것이 발목을 잡았다.

가장 큰 문제는 최적화였다.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무거워서 CPU나 메모리를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I)도 복잡해서 이용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데이터 통화료도 과도하게 청구됐다. 또한, 최대 강점인 꾸미기 기능이 모바일 환경에서는 제한적이었다. 카카오톡과 라인 등 무료 메신저 서비스가 등장하며 싸이월드는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해외 진출은 타이밍이 중요해

싸이월드의 해외 진출은 다소 늦었다. 가장 공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에 탁상공론만 했다. SK컴즈의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했던 탓이다. 이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마이스페이스나 야후360 같은 서비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싸이월드의 해외 진출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중국을 시작으로 일본과 미국에 진출했지만, 성공적으로 뿌리내리진 못했다. 섣불리 해외 진출을 타진했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사이버 머니인 ‘도토리’라는 이름은 해외 서비스에서도 한국어 그대로 ‘도토리’로 사용됐다. 현지화를 고려하지 않은 실책이다. 김중태 IT문화원 원장은 “서비스를 각 나라의 문화에 적합하도록 변화를 줄 필요가 있는데, 싸이월드는 그렇게 하지 못해 글로벌 시장에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별 소득 없이 글로벌 무대에서 퇴장한 싸이월드는 2011년 다시 한 번 ‘글로벌 싸이월드’로 국제무대를 노렸다.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5개 언어를 지원했으며 기존에 진출했던 국가는 물론 베트남, 대만 등지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난 2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가입자 수가 계속 수십만 수준에 머물렀기에 잠정 중단된 것이다.

닫힌 시스템, 폐쇄와 개방 사이

싸이월드는 ‘폐쇄형 커뮤니티’다. 일촌이 아닌 사람에게는 철저히 닫혀 있다. 이런 특성을 선호하는 이용자는 분명 있다. 그러나 운영시스템 자체가 폐쇄적이라는 것을 반기는 이용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도토리로 음악을 구매해도 다른 기기에서는 그 음악을 들을 수 없다든지, 유튜브 동영상을 미니홈피에 공유할 수 없다든지, 이처럼 폐쇄적이라는 것은 ‘다른 플랫폼과 연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싸이월드의 플랫폼 자체도 폐쇄적이다. 개방과 공유의 비즈니스를 실현하지 못했다. 콘텐츠를 넉넉하게 확보하지 못해 운영의 한계도 느꼈다. 이는 콘텐츠 자체 생산에 따른 한계다. 반면, 페이스북의 경우는 다르다. ‘F8 플랫폼’은 개방형 플랫폼이다. 전 세계 개발자가 자발적으로 응용프로그램과 콘텐츠 개발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카카오도 일찍이 ‘개방형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Open API)’를 공개하며 같은 효과를 누렸다.

물론, 싸이월드 운영진도 이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준비한 서비스가 ‘앱스토어’다. 외부 개발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판을 키워 소셜게임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싸이월드의 비전이 불분명한 시점에 전용 앱 개발에 시간을 투자하려는 개발자는 많지 않았다.

우리 정말, 일촌 끊어야 하나

앞서 언급했듯 싸이월드는 2003년 8월 SK컴즈에 합병됐다. SK컴즈는 싸이월드는 물론, 이투스와 이글루스(2006), 엠파스(2007) 등 당시 규모 있던 IT 서비스 업체들을 인수했다. 그러나 시너지 효과를 만들지 못했다. 하나하나 쇠퇴의 길을 걸었다.

SK컴즈가 싸이월드의 전성기를 함께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몰락의 계기를 제공한 것도 SK컴즈다. SK컴즈는 SK텔레콤과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때 국민 메신저로 불리던 네이트온이 카카오톡으로 대체되는 과정엔 ‘SKT 눈치 보기’가 있었다. SK컴즈는 모회사의 문자메시지 매출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네이트온 모바일 서비스에 주력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경영진이 싸이월드의 좌초를 자초하기도 했다. 일단 최고경영자가 너무 자주 교체됐다. 2002년 출범한 SK컴즈는 지난 12년 동안 CEO가 무려 6번 바뀌었다. CEO 평균 재임 기간이 1.7년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SK플래닛, SK텔레콤 출신 낙하산 인사가 경영진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인터넷 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없었고 경직된 조직 문화를 조장했다. 장기 적자의 늪에 빠진 SK컴즈는 결국, 구조조정이라는 최후 자구책까지 꺼내게 됐다.

▲ 출처=싸이월드

싸이월드는 끝나지 않았다

싸이월드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계속 하락하던 일일 이용자 수도 이젠 90만명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SK컴즈와 작별한 싸이월드는 어떤 변화를 모색하고 있을까. 지난 6월 싸이월드는 ‘리멤버’ 앱을 출시했다. 이는 이용자가 그동안 미니홈피에 올렸던 과거 사진을 모아서 감상할 수 있는 앱이다. 싸이월드 관계자는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기 위해 매일 회의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며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라며 말을 아꼈다.

지금이 싸이월드에는 중요한 시점이다. 최재용 한국소셜미디어진흥원 원장은 싸이월드가 ‘제2의 전성기’를 위해서는 다시 국제무대에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싸이월드는 현지에 최적화된 다국어 버전을 지속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동시에 이용자 타깃을 차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타깃을 정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야만 국산 SNS가 도미노처럼 줄줄이 넘어졌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분명한 것은 ‘싸이월드는 끝나지 않았다’.

조재성 기자  |  jojae@econovill.com  |  승인 2014.11.11  18: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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