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에 약한 한국인
우리 민족은 정(情)이 참 많습니다.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사람도 많고 정에 약한 사람들도 많죠. 오죽 정이 많으면 마시멜로 파이에 초콜릿을 얹은 초코 과자에도 ‘情’이라는 한 글자가 적혀 있겠어요? 그렇다면 제가 재미있는 퀴즈를 하나 내 보죠. 이‘정’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표현하면 뭐가 될까요? 사전을 열심히 찾아봐도 소용없답니다. ‘정’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표현하는 영어 단어가 자체가 없으니까요. 어떤 사전에서는 정을 ‘love’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정과 사랑은 엄연히 다르죠. 흔히 언어는 문화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그 나라, 그 지역, 그 민족이 쓰는 언어를 보면 그들의 문화를 짐작할 수 있죠. 바로 ‘정’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야심 찬 세계 1위 월마트의 한국 진출
월마트라는 브랜드를 아시나요? 월마트는 미국에서 그야말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있는 대형 할인마트입니다. 2014년 현재 전 세계 약 1만 1,000개매장에서 무려 220만 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월마트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미국에서는 “서민들이 한 주의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느냐는 월마트가 결정한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입니다. 월마트는 종종 ‘바이 원, 겟 원 프리(buy one get one free)’라는 행사를 합니다. 이 행사는 한 개를사면 한 개를 더 끼워 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월마트를 이용하는 고객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월마트가 어떤 품목으로 ‘1+1’ 행사를 하느냐에 따라 그 지역 주민들의 일주일치 저녁 메뉴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이번 주 월마트가 생선을 대상으로 ‘바이원, 겟 원 프리’ 행사를 하면 주변 주민들은 일주일 내내 생선만 먹게 되는 식이죠. 그런 세계 최대의 유통 기업 월마트가 1998년 마침내 한국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대형마트가 운영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할인 마트라는 것에 익숙지가 않았답니다. 월마트 입장에서는 한국 시장이 무척 만만해 보였을 것입니다. 아직 할인 마트 시장이 형성조차 안 돼 있는 한국 정도야 월마트가 한 번 들어가기만 하면 시장을 석권할 것이라고 판단했겠죠.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월마트가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를 잡았는데, 한국 소비자들은 월마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한국의 문화를 고려하지 않았던 월마트의 실패
이유가 뭘까요? 바로 한국인 특유의 ‘정(情)’ 문화 때문이었습니다. 월마트는 창고형 매장식으로 마트를 운영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월마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는 ‘싼 가격에 물건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물건만 싸면 잘 팔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들은 마트 내부의 치장에는 거의 신경을 안 썼습니다. 또 물건 구입을 돕는 직원들도 최소 인원만 배치했죠. 물건을 보기 좋게 배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창고에 잔뜩 물건을 쌓아 놓고 소비자들에게 ‘알아서 집어 가세요.’라는 식으로 영업을 한 겁니다. ‘싸게 파는 대신 많이 판다.’는 전략으로 상품 크기도 엄청 큰 것들만 들여왔죠. 이게 미국에서는 무척 잘 먹힌 전략이었습니다. 철저하게 계산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미국 소비자들은 쇼핑하기에는 다소 불편해도 가격만 싸면 만족했습니다. 

또 원래 땅이 넓은 미국의 특성상 소비자들은 한 번 마트에 가면 그야말로 물건을 산더미처럼 사 오는 경향이 있었죠. 이런 이유로 대용량의 상품이라도 가격만 싸면 미국 소비자들은 주저 없이 집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전혀 달랐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마트도 ‘정(情)’을 나누는 공간으로 생각합니다. 매일매일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조금씩 사 오는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가게에 가서 흥정도 하고,“물건이 좋네, 안 좋네.”라며 다툼을 벌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가게에서 내가 찾는 물건이 안 보이면 종업원한테 “저, 망치를 사러 왔는데 좀 찾아 주시겠어요?” 라고 묻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 종업원들은 공구를 담당하는 직원이 아니어도 친절하게 고객을 망치 파는 곳까지 안내를 해 주죠. 하지만 월마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고객은 불편을 감수해라. 대신 우리는 싸게 팔겠다.’는 미국식 전략이 한국에도 먹힐 것이라고 믿은 겁니다. 

이 때문에 월마트를 찾은 한국 소비자들은 “여긴 뭐 이렇게 불친절하고 불편해?”라며 짜증을 내고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가격이 좀 싸긴 했지만, 한국인들은 정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차가운 미국식쇼핑 문화를 견디지 못했던 거죠. 야심 차게 한국에 진출했던 월마트는 예상외로 고전을 거듭하다가 결국 한국 진출 8년 만인 2006년에 한국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말았죠. 이는 아무리 세계적인 기업이라도 현지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쉽게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비슷한 사례가 또 있습니다. 바로 전 세계 검색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이 유독 한국에서 고전하는 현상이 바로 그런 것이죠.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문화는 어떤 것이 있는지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한국 진출을 모색 중인 외국 기업에 중요한 정보가 될 수 도 있겠지요?

본 기사는 아하경제신문 2014년 제 21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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