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우 편집국장.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신약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간 예수가 유대교 율법학자와 교조주의 바리사이파로부터 간음한 여자를 모세의 율법대로 돌팔매질해서 죽여야 하는지 질문을 받고 대답한 말이었다.

예수의 말을 들은 주위 군중 가운데 나이 많은 사람부터 먼저 자리를 떴다고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의 논리를 간음한 여자의 죄와 처벌을 제기했던 당시 예루살렘 율법학자들의 절차상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오늘날 일부 기독교인들은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절차라는 형식적·세속적 타당성이 아닌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인간의 원죄(原罪)’라는 측면에서 ‘죄 없는 자가 과연 누구냐’고 되받아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가 간음한 여인을 희생양으로 내세워 자신들의 ‘더 큰 죄악’을 질타하던 예수를 눈엣가시처럼 여겨 어떻게든 제거하려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의 저의를 간파하고 슬기롭게 극복한 부분으로 읽힌다.

예수시대로부터 근 2000년이 지난 2014년 현재 시점의 대한민국을 돌아본다. 해괴하게도 예수시대의 ‘희생양 삼기’ 양상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마치 평행이론처럼 되풀이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올해는 유난히 국민의 생명을 어이없게 앗아간 대형사건·사고가 많았다. 10월 31일 현재 295명의 사망자와 9명의 실종자 인명피해를 낸 세월호 침몰사건을 비롯해 선임병의 집단구타로 애꿎게 목숨을 잃은 육군 28사단 소속 윤일병 사망사건, 지난달 중순 16명을 어처구니없게 잃은 성남 판교 테크노밸리 지상 환풍구 철제덮개 붕괴사고 등 이들 사건 중에는 진상 규명이 이뤄졌거나 여전히 진행 중인 것도 있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 발표나 재판부의 1심 선고 내용을 보면 문제의 사건·사고를 낳게 한 ‘더 큰 죄악’은 가려진 채 절차상의 ‘작은 죄악’을 서둘러 처단하려는 데 급급해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생명을 잃게 한 일차적 죄인의 유죄 여부는 인정하더라도 수사 및 사법 당국의 대응은 사실 선뜻 공감이 안 가는 게 사실이다.

안산 단원고 2학년생들의 떼죽음을 가져온 세월호 침몰 참사부터 보자. 사건을 조사한 검찰은 지난달 27일 1심 공판에서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게 배의 최종 책임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들어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국민들의 감정을 고려하면 이 선장에 대한 사형 구형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러나 솔직히 짚어보자. 이 선장을 포함한 승무원을 제외한 세월호의 진상규명 조사 과정에서 온 국민이 이구동성으로 공분하고 시정을 요구했던 불안한 국민 안전대책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또한, 세월호 구조과정에서 드러나 이른바 ‘관피아’의 적폐를 사건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와 정치권은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꼼지락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세월호 승무원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은 죄 값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한낱 개인들을 일대 참사의 본질을 가리는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의구심을 걷기가 힘든 건 왜일까.

그저 한 개인의 죄악에 대해선 일사천리 속전속결식으로 처리, 마침내 ‘사형’이라는 최고의 충격요법을 쓴 ‘더 큰 죄악’들의 의기투합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16명 희생자를 낸 판교 환풍구 덮개 붕괴 사건에 대한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도 뜨악하게 만들긴 마찬가지다.

안전대책과 행사 안전관리를 맡은 주체들은 놔둔 채 시공업체의 부실공사로, 철제 덮개가 올라탄 구경꾼들의 하중을 못 이겨 참변을 빚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모양새가 영 시답지 않다.

앞서 언급한 사건·사건 가해자들에게 엄청난 징벌이 가해져 제2, 제3의 세월호 침몰, 환풍구 추락사, 윤일병 구타사망이 제대로 근절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건 개인 죄악을 넘어선 ‘더 큰 죄악’을 발본색원해야 하는 문제다. 구조적인 적폐 해소가 없다면 ‘더 큰 죄악’들은 반복되는 ‘작은 죄’의 희생양만 양산할 것이다.

답답한 심정에 사석에서 만난 기업홍보 관계자나 자영업 지인들을 만나 “하반기 들어 사업이 좀 나아졌냐”고 물어보면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세월호 이후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이들은 세월호 같은 큰 사건 이후에도 잇달아 터진 크고 작은 안전 및 인명 사건사고 여파로 소비심리가 좀체 살아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최경환 부총리의 2기 경제팀을 내세워 내수경기를 활성화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지만, 약발이 벌써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만일 2기 경제팀의 경기부양 처방 효력이 끝나면 우리 사회는 또 어떤 ‘희생양’을 내세울까.

내가 아닌, 남의 희생을 요구하는 ‘네 탓’ 사회는 결코 스스로 고질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