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예측하지 못하는 한 순간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여러 번 경고성 징후를 보낸다"고 주장한 하인리히. 미국의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그가 생전에 정립한 '하인리히의 법칙'은 1:29:300으로 불린다.

이는 심각한 안전 사고가 한 건 일어나려면 그 전에 동일한 원인으로 경미한 사고가 29건, 위험에 노출된 경험이 300건 정도가 일어난 후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형 사고를 미연에 방지코자 한다면 이상 징후들을 미리 파악해서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이다.

국내 경제 곳곳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과거 1990년 후반 IMF 시대에 버금가는 금융위기 상황은 아니다만 이대로 가단 저성장·저금리·저물가에 갇힌 일본 장기불황을 답습하는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약이냐 정체냐의 기로에 선 한국 경제, 무엇이 문제인가.

▲ 지난 10년간 가계부채(빨간색) 및 주택담보대출(주황색) 규모 변화 추이. [사진출처=한국은행]

◇가계부채, 경제 위기의 뇌관…전년 동기 대비 6.2% ↑

무엇보다 가계부채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가계부채는 전년 동기 대비 6.2% 상승한 1040조원으로 지난해 1021조4000억원에서 1년 6개월 새 무려 76조2000억원이나 폭증했다.

가계부채가 이토록 가파르게 증가한 이유는 지난 7월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를 완화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두 달 사이에 가계부채는 11조원 가량 증가했으며 그 중 주택담보대출 금액이 8조3000억원 늘어나 갈수록 커져가는 빚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0월 2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종합감사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해 가계와 기업, 정부의 부채가 WEF(세계경제포럼)의 채무부담 임계치를 모두 초과하고 있다"면서 "과도한 부채 부담으로 부채 조정이 이뤄지면 소비와 투자 둔화로 내수부진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 의원이 지적한 대로 기업부채랑 국가부채 역시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기업부채는 18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됐다. 이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경제포럼(WEF) 기준 비금융 민간기업의 채무부담 임계치인 80%보다 46.8%포인트나 높은 126.8%이다.

국가부채도 순수한 국가부채는 940조원이지만 공공기관부채·공무원·군인연금·충당금까지 합치면  부채는 1641조원에 육박한다. GDP 대비 WEF 기준 정부의 채무부담 임계치 90%보다 월등히 높은  114.9%이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같은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재부·한은·한국수출입은행 등에 대한 종합 국정감사에서 "가계부채 증가율을 소득 증가율 이내로 억제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부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대응하면서 공무원 연금 개혁 등 구조개혁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비은행 금융기관의 가계대출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는 가운데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대출 비중 상향 규제에 따라 2분기 이후 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8월에는 주택금융공사 정책모기지론이 대폭 늘어났다"고 가계부채 증대 요인에 대해 설명했다.

가계부채 부담이 늘어남에 따라 야기되는 낮은 저축률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국내 가계저축률은 2001년 이후 줄곧 하향세를 보여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순저축률(이하 가계저축률)은 4.5%를 기록했다. 3.4%로 집계된 1년 전 대비 1.1%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2001년 이후 가계저축률은 5%를 넘은 경우가 거의 없다. 8.4%를 기록한 2004년과 6.5%를 나타낸 2005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하향 추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들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다양한 자영업 지원 대책에도 불구하고 자영업 폐업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9일 국세청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개인사업자 폐업 현황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지난 10년간 자영업 폐업은 총 793만8683건을 기록했다. 자영업자의 폐업 신고는 69만9292건을 기록한 2004년 한 해를 제외하고 매년 70만건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는 2007년이 84만8062건으로 집계돼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2011년 84만5235건, 2012년 83만3195건을 각각 기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전체 근로자 중 자영업자의 비중은 지난 2012년 기준 28.2%에 달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15.8%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이 유독 높은 까닭은 은퇴나 명예퇴직 등으로 생계형 창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증가하는 비중에 비해 자영업자 생존율은 크게 낮은 것으로 드러나 은퇴 후 커피숍·레스토랑 등을 갖는 게 더 이상 직장인들의 로망이 아닌 시대가 온 셈이다. 사업이 실패할 것으로 생각하고 시작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나름 장밋빛 전망을 품고 사업에 뛰어드나 실상은 참담할 뿐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9월 인터넷판을 통해 국내 50대 은퇴자들이 생계를 위해 대출로 치킨집을 열지만 공급 과잉으로 망하는 업체가 늘어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어 국내 치킨집 숫자는 3만6000여개로 지난 10년 동안 3배 가량 증가했다고 전했다.

꾸준히 증가하는 치킨집 수와 달리 숙박·음식점의 경우 창업 1년 후 불과 55.3%만이 살아남았으며 3년 후에는 28.9%, 5년 후는 단 17.7%만이 사업을 명맥상으로만 간신히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쉽게 말해 창업 후 불과 5년 새 10개 업체 중 채 단 2개도 살아남지 못한 셈이다.

한편,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월 개인회생 신청자 수는 약 5만7000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이상 늘어났다.

일정 기간 내 빚을 갚겠다는 내용의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해 개인회생 신청이 받아들여진다 할 지라도 당사자가 빚으로부터 탈출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 3분기까지 인가기준에 맞춰 부채를 상환한 사람은 4만1081명으로 집계됐으며 이는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다.

어떠한 연유에서든 간에 빚을 갚지 못한다면 결국 파산하는 수 밖에 없는데 대법원은 전국 법원에서 접수한 개인 도산 신청 건수가 올해 들어 지난 3분기까지 총 12만4949건이라고 밝혔다. 도산은 회생 신청과 파산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개인이 신청한 회생·파산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수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 회사 역시 불황의 늪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같은 기간 대법원은 전국 법원에서 접수한 법인 도산 신청이 1037건에 달했다고 지난 10월 28일 밝혔다. 2008년 이후 3분기까지 1000건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악화되는 경제지표…소비자심리지수 전월 대비 2p ↓

한국은행이 10월 28일 발표한 '2014년 10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0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월 대비 2포인트 낮아진 105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7월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하락 전환한 것이며 5월과 같은 수준이다.

CCSI는 100보다 높을 경우 경제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심리가 과거 평균 보다 낙관적임을 의미하고 100보다 낮을 경우 비관적임을 뜻한다. CCSI는 지난해 1월부터 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22개월 연속 기준치 100을 웃돌고 있다.

CCSI는 7월 들어 다시 5월 수준으로 떨어졌다가 8월에 소폭 반등한 후 9월까지 107을 나타내며 정체된 바 있다.

소비자만 경기를 비관적으로 느끼는 게 아니다. 기업도 현재 경제 상황을 안 좋게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업이 느끼는 경기 상황을 지수화한 10월 제조업의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전월보다 2포인트 떨어진 72로 집계됐다고 10월 30일 밝혔다. 이는 올해 들어 가장 낮았던 지난 8월과 같은 수준이다.

BSI 지수 역시 CCSI와 동일하게 100을 밑돌면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의미이고 100을 넘으면 그 반대를 뜻한다.

BSI는 지난 4월 82, 5월 79, 6월 77, 7월 74, 8월 72로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오다 9월에 74로 다소 개선되는 듯 했으나 이번에 다시 떨어졌다.

박성빈 한국은행 기업통계팀장은 "전망치 하향 조정 등 나쁜 소식만 들리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느끼면서 어려워하는 것 같다"며 "일부 업종은 경쟁이 심화된 데 따른 어려움도 있어 보인다"고 언급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한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KDI가 최근 발표한 경제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경제 지표들이 회복 속도와 추세를 고려한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생산 지표의 회복세가 미약하고 민간 소비를 비롯한 내수 지표도 부진하다. 비록 설비투자가 증가세로 돌아섰다고는 하나 절대 수준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지난 9월 전산업생산은 기저효과에도 불구하고 전년 동월 대비 1.8% 증가하는 데 머물렀으며 전월 대비로는 0.9% 감소했다. 소매판매액지수도 1.6%의 낮은 증가율을 보였고 민간소비와 관련 있는 서비스업종의 회복세도 여전히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건설기성액·소매판매액 등이 줄어들면서 전월 대비 0.2포인트 하락해 전반적으로 경기 회복이 정체돼 있음을 시사했다.

◇전문가들 "정부, 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에 적극 나서야"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노력과 규제 완화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가계부채 리스크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만큼 필요하다면 과감한 구조개혁도 단행돼야 한다는 극단적인 처방도 내렸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내수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가운데 외수가 약화되면서 저성장·저물가 기조가 장기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완화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활성화에 집중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고부가 서비스업 육성 등 경제체질 개선에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성장률이 점차 하락하고 있고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앞으로 획기적인 성장동력을 찾기 어려운 상태"라며 "경기회복을 위한 노력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공공부문 비효율성 제거를 위한 노력을 반드시 지속해야 한다"며 "각종 규제개혁을 통해 교육·의료·관광 등 서비스산업 시장을 넓혀야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과도한 가계부채가 앞으로 개인의 연금 및 노후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나 이에 대한 대책은 미비한 상태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허재환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가계부채는 단순히 부동산이나 과잉부채가 아니라 생계형 주택담보대출이 많다는게 문제"라며 "이것은 고령화와 연금, 그리고 노후문제까지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허 연구원은 "노후 및 연금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절실하고 그에 따른 노후를 위한 자영업에 대한 구조조정 또는 부채 탕감 등이 필요해 보인다"면서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성장산업에 있어 국가의 지원, 특히 각종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 완화는 꼭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