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기업이 ‘토요타(TOYOTA) 배우기’에 나섰다. 물론 우리나라 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년 수천명이 넘는 인원을 토요타에 보내며 그들의 생산성과 품질관리를 따라잡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2010년 미국에서 시작된 ‘토요타 리콜사태’ 이후 ‘탈 토요타 바람’이 불면서 토요타 벤치마킹 물결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단순히 외부의 선진사례를 도입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기업이 가진 혁신기반이나 업의 특성을 고려했는지, 토요타 생산방식의 체계가 아닌 본질을 이해하고 각자의 생산현장에 이를 접목하고 응용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탈 토요타 바람’은 예견된 일이었다.

토요타 벤치마킹이 한창이던 2000년대 중반, 토요타 출신 컨설턴트와 식사를 하며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토요타 생산방식을 ‘가치카치(かちかち)생산’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말로 “째깍째깍 생산”이라는 뜻으로, 낭비나 비효율 없이 단위 공정별로 자동차 조립 공정이 잘 구분되어 있고, 각 공정이 마치 시계추가 움직이듯 일정한 시간에 맞추어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한 대를 조립하는 데 각 40초 단위 10개의 공정이 필요하다면 각 공정이 동시에 정확하게 진행돼, 40초마다 한 대씩 자동차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에 토요타 생산을 ‘흐름생산’, ‘동기화 생산’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산방식의 토대는 ‘낭비제거’ 사상이다. 우리는 이를 ‘공장운영과 공장 작업라인의 비효율을 찾아 개선하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낭비제거의 본질적 의미는 단순히 비효율을 개선하는 것 그 이상이다.

최근 급성장하는 경제를 기반으로 생겨나는 중국의 신생 자동차 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품질, 디자인, 성능 등 모든 면에 있어 글로벌 기업과 견주기에는 취약한 부분이 많지만, 구매, 검사, 물류, 편성된 조립공정, 판매, 영업, 홍보 등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구축하여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이제 이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토요타의 ‘낭비제거’ 사상을 이해하고 수행한다고 생각해보자. 모두가 자신의 업무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제거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작업은 개선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필수불가결한 핵심적인 ‘일’만을 남기게 될 것이고, 결국 높은 생산성과 품질, 안정성 등으로 귀결된다. 토요타 생산방식을 그대로 모방해 도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고 기업 구성원의 역량과 특징에 맞는 방법으로 응용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제조사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다. 유제품을 생산하는 식품회사라면 식자재를 다루는 만큼, 자동차와는 전혀 다른 낭비, 비효율, 불합리가 존재한다. 먼지 한 톨, 윤활유 한 방울의 관리 조차도 회사의 존립과 직결되는 불합리 요인이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특징의 낭비 요인은 제거하는 방법과 노력이 당연히 달라지게 마련이다. 즉, 기업의 분야, 특징은 물론 각 공장의 설비와 작업도구의 성능, 적절성, 공정 자동화 수준, 부품조달 및 물류관리, 작업자 훈련 등 모든 요소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져야 한다. 이것이 식품회사가 토요타 자동차를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며, 토요타 생산방식 도입이 실패하게 된 이유다.

많은 기업과 컨설턴트들은 선진기법을 그대로 도입해서는 안 되며, 우리 기업에 맞는 방법론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손에 쥐어줄 수 있는 ‘우리 기업에 맞는 혁신 방법론’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혁신기법’이라는 것이 배우고 익혀서 시작하는 혁신의 출발점이 아니라, 각 기업의 경영철학과 현재 겪고 있는 문제점에서 출발하여 끊임없이 개선하며 얻어지는 혁신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100개의 기업이 있다면 100가지의 혁신 기법이 만들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필연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의 고유한 혁신방법은 어떻게 완성할 수 있을까?

우선, 끊임없이 실행 가능한 문제해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 시스템은 크게 현장개선과 사무직 개선 프로세스로 구성되어야 한다. 각 구성원들이 속한 기능 조직에 따라 담당업무의 특성과 문제유형이 전혀 다르고, 이에 따라 자율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선프로세스로 정착시키기 위한 동기부여 요인 또한 다르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 운영을 위해 구성원들이 쉽게 이해하고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참여의 동기는 탑다운(Top-Down) 방식의 강요가 아닌, 설득과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 만큼, 해결하는 방법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는 개선 대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낭비’를 규정하는 일이다. 이는 구성원의 자율적∙적극적 참여 아래 문제해결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면, 우리 기업의 제품과 공정 특성에 적합한 ‘낭비’가 무엇인지 올바로 알게 하기 위해서다. 토요타의 7대 낭비는 이 과정에서 나왔다. 자동차 회사인 만큼 앞서 언급한 공정의 동기화가 중요하고, 하나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공정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토요타는 생산의 흐름을 끊는 대기, 고장, 과잉생산, 재고를 낭비로 규정했고, 불필요한 추가 흐름을 만들어내는 재 작업, 운반, 동작 역시 낭비로 규정한 것이다. 이제는 토요타 방식을 배운다며 7대 낭비 중 1차 낭비가 무엇이고, 2차 낭비가 무엇인지 교육하고, 묻고, 배우고, 따라하는 노력들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진정한 혁신에 역행하는 일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세 번째, 우리 기업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낭비가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우리만의 시스템으로 해결되고 있다면, 이를 지속하고 유지시키는 것이 마지막 단계다. 이를 위해서는 최고 경영자들의 인식 전환이 우선이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 기업들의 혁신 활동이 수명을 다 하고 단절되는 가장 큰 원인은 성과추구에 있었다. 성과만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혁신은 뿌리 내리지 못한다. 최고경영자는 지속 가능성을 격려하고 칭찬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3M의 ‘포스트잇’도 체계적인 개발 프로세스나 천재적 아이디어가 아닌, 실패를 격려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와 다양한 혁신체계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이제는 “성과가 무엇이냐”고 묻는 CEO가 아니라 “우리의 혁신체계가 지속 가능한가, 지속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CEO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성장정체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은 다시 한 번 ‘혁신’에 있다. 이제는 혁신을 남에게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진 혁신역량은 어떤 것이 있는지, 우리가 가진 문제와 비효율은 어떤 것인지,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지를 먼저 살피며 우리 자신에서 출발하는 진정한 혁신이 시작되어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란 말이 있듯, 성장정체라지만 어찌 보면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도약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