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부산 벡스코에서는 2014 ITU 전권회의가 열리고 있다. 모든 IT의 기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색하는 사유의 지평선으로 여겨지는 2014 ITU 전권회의. 그 의미와 비전을 5개의 키워드로 살펴보자.

▲ 2014 ITU 전권회의 1차 본회의. 사진제공 - 미래창조과학부

키워드 하나. 1955

ITU는 국제전기통신연합(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s Union)의 약자로, ITU 전권회의는 말 그대로 국가 원수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대사(장관급)가 ITU의 현안을 결정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회의라는 뜻이다. 현재는 UN산하 ICT 전문 국제기구로 자리매김했으며, 193개 회원국과 800개 이상의 민간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으며 조직은 사무총국과 정보통신표준화총국(ITU-T), 전파통신총국(ITU-R), 정보통신개발총국(ITU-D)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은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1950년 ITU에 가입하려 했으나 회원국 3분의2 이상 찬성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실패했다. 하지만 1952년 정식 가입 승인을 받아 1955년 최종 가입에 성공했다.

키워드 둘. 토종기술

한국은 2G와 3G 이동통신 시절 사실상 세계 ICT 업계를 주도했지만 와이브로의 사장과 LTE의 등장으로 그 성장동력이 크게 약화되고 말았다. 하지만 2014년 한국은 ITU 전권회의 의장국의 진면목을 자랑하고 있다. 오랜만에 등장한 토종기술의 강력한 인프라가 전권회의장을 매료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Gbps의 속도를 자랑하는 유선 네트워크 장비를 전권회의장에 공급한 중견기업 유비쿼스다. 토종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유비쿼스는 이번 회의를 ‘종이없는 회의’로 만들기 위해 기존 인터넷 속도보다 10배 빠른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다. 이에 힘입어 초대형 스크린을 통한 실시간 동시 회의가 가능해져 원활한 의사 일정이 이뤄졌다는 평가다. 시스코 등 외국 업체가 주도하는 네트워크 시장의 개혁이 기대된다.

국내 벤처기업 스마트박스가 선보인 사물인터넷 기반의 무인 물품함도 2014 ITU 전권회의를 장식해 눈길을 끌었다.

강력한 무선인터넷, WI-FI 망도 강점이다. 전권회의장 주변에는 최대 4000개의 디바이스를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기가급 무선망이 구축되어 세계 ICT 전문가들을 놀라게 만들고 있다. 물론 5G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기업의 발전도 토종기술의 측면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 외에도 3D프린터, 가상현실 체험 시뮬레이터, 초소형 드론 등도 선보였다. 총 400개의 한국 중소기업이 전권회의를 통해 세계로 향한다.

 

키워드 셋. 5G

최근 삼성전자는 시속 100km 이상의 고속주행 환경에서 1.2Gbps(1초에 약 150MB 전송)의 끊김없는 데이터 전송속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정지상태에서 세계 최고속도인 7.5Gbps(1초에 940MB 전송)까지 5G 기술의 전송속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4G LTE 상용망보다 약 30배 빠른 속도다. 아직 정확한 표준화나 규격이 등장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5G라고 부른다.

▲ 삼성전자의 5G시연. 사진제공 - 삼성전자

전권회의와 동시에 열린 5G 글로벌 서밋(Global Summit)은 사실상 세계 IT 강국들이 5G 상용화를 천명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일본 후세다 히데오 총무성 국장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맞춰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포부를 밝혔다. 일본의 5G 상용화 시기가 처음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히데오 국장은 “2013년 9월 일본전파산업협회(ARIB)를 통해 총 33개 민간기업이 참여한 5G 프로모션 포럼을 설립하는 한편, 기대효과·기술·시스템·서비스·비용 등을 연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 주요 통신사와 제조사 등 52개의 사업자가 모여 추진 협의체를 구성한 중국의 동샤오루 공업신식화부 부처장도 “정부 차원의 연구 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며 국제 공조와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으로 빠르게 5G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단언했다. 이에 맞서 한국의 오상진 미래창조과학부 과장은 “5G 기술과 표준화를 위한 경쟁력을 강화해 궁극적으로 새로운 경제 활동을 창출하겠다”고 강조했다.

▲ 5G 글로벌 서밋(Global Summit). 사진제공 - LG유플러스

전권회의와 동시에 개막했던 ‘2014 월드 IT쇼’는 5G의 축제나 다름없었다. 우선 KT는 2006년 상용화된 최고속도 100Mbps 초고속 인터넷보다 10배 빠른 1Gbps 속도의 ‘올레 기가인터넷’의 상용화를 발표했다. 심지어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은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등과 함께 ‘기가인터넷 응용서비스 체험관’ 및 ‘10G 인터넷 체험관’을 선보이기도 했다. 빨라지는 인터넷 속도는 콘텐츠 소비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진시킨다.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변화의 기로인 셈이다.

 

키워드 넷. 표준화

전권회의를 통해 공동으로 의결된 결의안은 총 35개다. 그 중 2개는 한국에서 새로 제안한 것이다. 바로 사물인터넷과 인터넷 컨버전스다. 두 가지 모두 미래 ICT 산업의 중요한 척도이자 ‘아직 누구도 선점하지 못한’ 중요한 분야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사물인터넷의 경우 관련 기술은 물론 주파수 대역, 활용처 등 모든 것이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러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전권회의의 중요한 성공척도는 표준화다. ‘표준’을 점하는 곳이 시장 주도권을 가진다.

키워드 다섯. 부산 선언문

전권회의 직전 채택된 부산 선언문은 ITU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정보통신기술 격차 해소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미래 ICT의 공동 발전을 위한 국제협력을 촉구하자는 부산 선언문은 사실상 ‘차별없는 ICT, 성역없는 ICT’를 목표로 한다.

▲ 부산 선언문 채택. 사진제공 - 미래창조과학부

실제로 선언문은 2015년 이후 국제연합(UN)의 새천년개발목표를 위한 비전을 공유하고 ICT를 통한 위기 극복 및 새로운 가치 창출 등 국제사회의 합의를 계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천년개발목표는 지난 2000년 9월 국제연합(UN) 정기총회에서 2015년까지 빈곤을 반으로 줄인다는 내용을 담은 인류학적 선언이다. 이를 계승한 부산 선언문은 사실상 ICT 분야에서 가장 근본적이며, 가장 긍정적인 ‘선언’이다.

2014 ITU 전권회의는 한국에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중국의 자오허우린 신임 사무총장과 더불어 이재섭 카이스트 융합연구소 박사가 표준화총국장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은 ITU 이사국 7선에 성공하기도 했으며, 우리가 주도한 사물인터넷 표준화가 실무회의를 통과해 다음주 본회의를 앞두고 있다. 글로벌 ICT 업계의 치열한 주도권 경쟁에서 한국이 2014 ITU 전권회의라는 기회를 잡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