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몸 좋은데! 보좌관 한번 해보지 않겠어?” 기자가 10년 전 국회에 출입할 당시 모 국회의원으로부터 제안(?) 받은 말이다.

모든 국민이 아는 사실이지만 국회는 머리보다 몸을 많이 사용하는 곳처럼 보인다.

분명 국회의 본 업무는 국민을 위한 민생법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각종 회의 때마다, 매년 연말 예산 책정과 결산 시, 매년 추석 무렵 진행돼 온 국정감사(이하 국감) 등 사실상 그네들이 외유를 안 하고 자리에 있을 때는 거의 몸 쓸 일이 많다.

초등학생들이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하는 다툼을 보고 이종격투기를 배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할까.

이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 전문적(?)으로 막장을 보여주는 기간이 국감 시기다.

각 위원회별 회의는 사안별로 하루에서 수일이면 막을 내린다. 가장 치열한 전쟁터로 변하는 연말 예산안 확정도 1주일 전후로 드라마틱하게 끝난다.

하지만 국감은 무려 20일 이상, 거의 매일 한편의 막장 드라마를 연출한다.

국감을 통해 스타(?)가 된 의원들도 많다. 그동안 낙지 먹기, 소화기 뿌리기, 오물 투척 등을 통해 국감은 많은 스타를 배출해 왔다.

올해도 지난 4월 총선을 전후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던 국회가 지난 7일부터 27일까지 20일 동안 ‘2014년도 국정감사’를 진행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올해도 시작부터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환경부에 대한 국감은 증인 채택 문제로 여야의원들이 다투다 퇴장해 국감장을 지킨 것은 괴물쥐 뉴트리아뿐이었다는 말이 나왔다.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감 역시 만만치 않았다.

여당의원은 ‘문외한’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야당의원의 사과를 요구했고, 야당의원은 “자신의 너무 솔직한 발언에 사과한다”는 말로 오히려 분란만 키웠다.

입씨름으로 시간을 보낸 늦은 저녁에는 국감장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성 몸매를 감상하다가 언론에 들킨 의원도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막장 국감’이라는 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라는 대국민 이슈와 담뱃값과 주민세 등 증세 논란에 KB사태까지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쌓여 있었다. 여기에 사상 최대 672곳이라는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한다는 타이틀까지 달고 야심차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올해 역시 국감이 끝나고 남은 것은 의원들의 호통소리뿐이다. 감시하는 국회에는 감시할 장치와 기준, 연속성을 위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시스템이 없다.

감시를 받는 정부는 국감 기간만 버티면 된다는 식으로 올해도 지난해에 써먹은 자료를 재탕 삼탕 해 오거나 차일피일 미뤘다.

지난 12일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이 모 일간지 미주지사를 통해 실은 사설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꼬집었다.

김 전 의원은 “대한민국의 국정감사는 20일의 기간이 정해져 있어 정부 부처들은 그때만 꾹 참고 잘 넘기면 된다”며 “미 의회는 한국같이 국정감사 기관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1년 12달 국정감사를 대행해주는 의회 직속 감사기관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의회 직속 감사기관인 회계감사국(GAO)은 직원이 3400명이나 되고 1년 예산도 6억달러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GAO는 국민의 혈세가 낭비됐거나 정부를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지 세밀히 조사하는 기관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한국의 공기업이 엄청난 적자를 내면서도 보너스 잔치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미국의 회계감사국 같으면 이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해당 공기업을 폐쇄시키고 개인기업에 입찰을 주든가 운영팀을 모두 갈아치우든가 하는 명백한 해답을 국회에 줬을 것이다”며 “한국 국회도 미국의 회계감사국 같은 국회 산하의 감독 상설수사기관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미국과 달리 자체조사를 실시할 인력도 능력도 떨어지니 피감기관이 자료를 주지 않으면 감사할 내용도 없는 것이 대한민국 국회의 현실이다.

명확한 근거 자료와 데이터가 없다 보니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막말과 호통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호통이 안 먹히면 협박도 불사한다.

물론, 모든 의원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

새벽에 시작해 새벽에 끝나는 바쁜 일정으로 눈에 핏발이 선 의원들도 보았고, 법안 가득 빨갛고 파란 펜으로 빽빽하게 메모한 의원들도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의원들보다 그 반대인 의원들이 더 많다고 느끼는 건 비단 본인만은 아닐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매월 서민들은 손에 쥐어보기도 어려운 1000만원의 큰 수입을 챙기고 정작 본업인 입법 활동은 단 한 건도 하지 않는 의원들.

수시로 각종 비리에 연루돼 방송에 얼굴을 비추고, 막말과 폭력이 난무하는 의정활동은 웬만한 막장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활기(?)차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국내 최장 막장 드라마 ‘국정감사’가 앞으로는 또 어떤 스타(?)를 배출하고 화젯거리를 만들어 낼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다.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인 전원일기도 끝났고 가족오락관도 문을 닫았다. 국회와 국회의원들이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매년 찍어내는 막장 드라마를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민이 주는 세금은 ‘난투 국회’나 ‘막장 국감’을 시청하기 위해 내는 것이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