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회장

아라리오뮤지엄 김창일 회장. 인터뷰 현장에서 본 그의 거친 맨발은 성공한 기업가의 훈장처럼 보였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삼포시대 청년들에게 전할 수 있는 몇 가지 성공전략을 듣고 싶어 인터뷰를 청했다. 지난 35년간의 삶을 축약한 그의 메시지는 강렬하고 축약적이다. 청년들에게 던지는 그의 메시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당신의 영혼과 생명을 던져라’이다. 열악했던 청년시절 빈곤은 절실함으로, 꿈과 갈망으로 진화되었고 군 의장대시절은 수치스러웠고 힘들었다. 줄곧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를 부르게 되었고 하느님을 원망하던 한 청년은 기업을 만들어 성공을 꿈꾸기 시작했다. 제대 후 종로통을 헤매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게 무얼까 고민하던 그의 DNA는 점점 승부사적 기질로 변해갔다. 고뇌하던 청춘의 문턱 28살, 기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던 그에게 운명은 어머니가 준 선물, 천안터미널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아라리오 그룹의 시작이었다.

김창일의 레고게임, 아리랑 고개를 넘을 수 있는 방법은 꿈밖에 없다

28살 한 점의 그림 구매를 시작으로 평범할 수도 있었던 작은 도시 터미널 상가의 주인은 한 발, 한 발 컬렉터의 길로 걸어 나갔다. 세계적인 아트페어와 비엔날레의 문턱을 드나들며 트렌드를 배워 나갔고 그로부터 딱 35년, 세계가 주목하는 200대 컬렉터에 뽑히기도 했다. 갤러리를 꿈꾸었던 욕망이 자라 뮤지엄에 대한 무지개로 변화한다. 유통 전문가에서 세계적인 컬렉터로, 이제 세계적인 화가를 꿈꾸며 사는 그의 일생은 한 편의 드라마이고 이를 듣는 청춘들의 가슴을 들끓게 만든다.

시장에서는 가장 가고 싶은 미술관, 미술계 영향력 1위로 ‘리움’을 꼽고 ‘리움’의 10년을 주목한다. 문득 ‘세계 200대 컬렉터에 선정된 김창일, 그리고 아라리오의 미래 10년’이 궁금했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은 리움과 많이 다르다. ‘아름다움이 뭘까’에 대한 오랜 질문은 유명한 건축가의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영혼과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라는 답을 얻었고 그 전환점을 제시하는 것이 향후 10년의 목표다. 천안, 서울, 상하이, 제주 등 사슴가족의 확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사실 원서동 공간사옥의 경우 제약이 많았다. 하지만 제주의 경우는 다르다. 자유롭다. 특히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의 경우 영혼이 자유로운 제주 청년들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인정받고 싶다. 제주 원도심 폐건물을 통한 과거의 기억이 A.R 팽크나 안토니 곰리의 작품을 통해 젊은 청춘들의 창조적인 공간으로 존재했으면 한다. 그 밖에 제주 올레를 비롯 5군데의 공간을 주목하고 있다”는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렇게 김창일 회장의 무지개는 아라리오뮤지엄 제주를 탄생시켰고 마침내 제주특별자치도민의 무지개가 되었다. 제주가 싱가포르나 홍콩보다 더 중요한 도시가 될 것이라는 그의 예견에 세상이 주목하고 있다.

대작을 구입하는 데 5분을 고민하지 않는다고 하는 그의 컬렉션 방식이 독일작가 지그마르 폴케의 대표작 ‘서부에서 가장 빠른 총’과 닮아 있다. 그래서 질문했다. 한 작가의 작품 4점을 한꺼번에 소장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그의 대답은 “나는 100만달러 이상의 대작 구매를 결정하는 데 5분이 안 걸린다. 빠른 촉은 제주에 80억원 투자를 결정하고 오픈하는 데 1년이 안 걸리게 만들었다. 나의 컬렉터 방식에 시시비비가 많은데 경제규모가 훌륭한 컬렉터의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내가 선택한 작품은 1.5~3배 이상 가격이 오르는 걸 보면 믿을만하지 않은가”라며 반문하기까지 했다. 아마 지그마르 폴케 선생도 그의 성공적 판단력을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

김창일 회장

제주를 향한 나의 뮤지컬은 이제 시작이다

탑동시네마 5층 규모의 뮤지엄을 만든 그의 뮤지컬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무모하리만큼 과격한 그의 추진력이 제주의 투박함과 맞았는지, 성공한 기업가 김창일 회장이 보물섬 제주를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제주 전시 By Destiny를 상징하는 인도작가 수보드 굽타의 작품은 이주민의 애환을 그렸다고 하는데 2, 3층 전시실을 터서 준비한 공간 디스플레이가 인상적이다. 제주 경제의 주 소비층인 제주 이주민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 문득 궁금했다. 그는 “제주에서 자신의 꿈을 만들길 권한다. 인내를 가지면 운명은 당신의 편이 되어준다. 살다보면 로케이션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뮤지엄 건립을 위한 지점을 선정하면 건물을 빌리지 않고 무조건 사서 시작한다. 2005년 아라리오 베이징, 뉴욕 첼시 디아센터(Dia Center for the Art)를 롤 모델로 시작했던 2007년 아라리오 뉴욕, 두 번의 실패는 있었지만 난 그 원칙을 존중한다”라고 대답했다. 실패를 통해서도 뮤지엄, 뮤지엄에 대한 갈망만은 놓지 않았던 그의 욕망이 가져다 준 선물같아 보였다. 20m 작품 한 점을 위해 2, 3층을 터 8m 높이의 전시 공간에 투자할 수 있었던 것은 뮤지엄을 통해 더 좋은 전시, 더 좋은 서비스를 해야겠다는 그의 욕망 때문이다.

4층 전시실에 마련된 소 100마리의 가죽으로 만든 중국작가 장환의 10m 작품 ‘영웅 No.2’는 그가 말한 ‘제주 탑동의 지형도를 바꾸고 싶다’는 이미지와 잘 어울려 보인다고 물었더니 “제주특별자치도가 진짜 특별할 수 있는 건 공간 때문이다.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에서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의 공통 분모는 영원할 영화를 꿈꾸었던 공간, 오래 전 영화관, 상업건물, 모텔로 사용했던 공간, 과거 건물의 쓰임과 기억, 흔적이 그대로 보존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미술품은 전시되어야 가치가 있다는 나의 철학이 17개국 작가 43명, 160여점의 현대미술작품들에 녹아 있고 이것이 제주도의 진정한 가치와 창조적 공간의 교집합을 통해 제주도민의 자긍심을 높여 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고 대답하는데 그의 에너지에 대일 뻔 했다.

제주와의 인연은 10년 전 중산간 구릉마다 펼쳐진 빛깔 고운 야생화가 시작이었고, 탑동과의 인연은 맛난 물항식당 고등어조림과의 인연이었다. 그 운명은 그를 이끌어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탑동시네마의 주인으로 인도했다. 2007년 뉴욕 화랑가에서 가장 큰 갤러리를 접고 마음 아팠을 그의 음영은 전시명 By Destiny(운명적으로)로 이끌었다. 각혈을 하더라도 작가로서의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인내심 있게 견뎌내는 작가, 그런 작가를 찾고 그런 작가를 닮고 싶은 그의 무지개가 그의 철학 Life is Art, Art is Life와 닮아 있다. 그의 성공스토리가 삼포시대 속 꿈을 잃고 방황하는 대한민국 청춘들에게 운명을 바꿔줄 수 있는 아리랑으로 들렸으면 좋겠다.

이재정기자 add61@naver.com

 

김창일 회장의 작가 약력

1951년 출생

개인전

2013년  SAILING,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2009년  To Make a Rainbow,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2003년  CI KIM, Union Project, 런던, 영국

             Contemporary Art Continues,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단체전

2006년  Ballkunster, 라이프치히 조형예술박물관, 라이프치히, 독일

2004년  Bug-Eyed; Art, Culture and Insects, Redding, 캘리포니아, 미국

2003년  아트벤치, 여의도공원,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