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TI 배럴당 1년간 가격변화 추이. [사진출처=네이버]
▲ 브렌트유 배럴당 1년간 가격변화 추이. [사진출처=네이버]

국제유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한때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고공행진을 해오던 유가가 이제는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날개 없는 추락을 지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지선인 배럴당 80달러대가 무너지면 배럴당 70~75달러까지도 주저앉을 수도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하지만 산유국의 재정균형 수준인 90달러대에서 장기 균형점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최근 유가 급락의 원인은 글로벌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침체, 셰일가스의 생산량 확대 영향 그리고 산유국간의 중동 분쟁이 그 원인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이슬람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의 분쟁은 IS를 지원하는 이란이 사실상 기름을 팔아 전비를 충당하고 있어서 수출을 늘리면서 가격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에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아랍 산유국의 결속력이 사실상 깨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산유국별로 재정균형을 맞출 수 있는 생산원가가 다 달라서 무한정 가격하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이란의 입지 약화와 셰일가스의 공급 약화를 노려 손해를 감수하면서 가격하락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배럴당 40달러대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균형, 즉 흑자를 유지하기 위한 생산원가는 배럴당 90달러, 셰일원유의 생산원가는 70~77달러, 최근 유가하락으로 셰일원유의 생산국들이 역마진을 우려하고 있어 생산을 줄이려고 하는 것도 생산원가 때문이다.  장기 유가의 균형점은 대략 90달러이지만 정치적인 변수와 글로벌 불황의 정도에 따라 추가하락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물론 이슬람국가(IS)의 사우디아라비아 유전 시설 테러가 감행될 경우엔 유가는 급반등세로 돌아설 가능성도 상존한다. 국제유가, 과연 어디까지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가 향방의 키(key)를 쥐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15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 대비 0.10% 하락한 배럴당 81.78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2012년 6월 말 이후 최저치이며, 올해 6월 고점 대비 20% 이상 폭락한 것이다.

WTI 가격은 이달 들어 연일 하락을 거듭하면서 지난달 말 이후 불과 보름 만에 무려 10.2%나 하락했으며 전일에는 4% 넘게 급락했다. 80달러선 붕괴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브렌트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같은 날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북해산 브렌트유 11월물은
1.50% 하락한 배럴당 83.78달러에 마감했다. 이 역시 종가 기준으로 2010년 11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으나 무엇보다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의한 영향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루 250만배럴까지 증산이 가능한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중동국가 중에서 제일 재정이 탄탄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IS를 약화시키기 위해 국제유가를 오히려 약화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기 때문이며, 물론 최근 국제유가 하락은 글로벌 경기 부진이라는 수요적 요인이 더 크지만 정치적인 변수까지 겹치면서 하락폭이 더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IS는 전비를 사실상 석유수출대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까닭때문에 다음달 27일에 열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을 결정하지 않을 것이 유력시되고 있다.

또 중동국가들의 셰일가스 견제 심리도 짙게 깔려 있다.  최근 3년간 북미지역의 셰일가스의 본격 생산으로 상승세를 타던 국제유가 움직임이 멈추고, 올해 들어서는 하락세로 돌아섰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이 이번 기회에 셰일가스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가격을 낮춰서 셰일가스의 추가 개발과 생산을 막고 기존 생산업자의 수익성을 위협하자는 의도다. 결국 공급시설을 견제해 장기적으로 유가 안정을 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제유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로이터통신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미국의 셰일가스와 남미의 심해유전 투자 열기를 억제해야 비로소 중장기적으로 고유가를 유지할 수 있다”며 “현 상황에서 저유가를 고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에너지 패권’에 도전하는 미국 셰일 산업

미국은 셰일가스를 중심으로 경기회복세를 이루며 이를 통해 에너지 수입국에서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모하려는 모습을 꾀하고 있다.

2007년 당시 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러시아의 80%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셰일가스의 활발한 개발로 인해 20% 수준으로까지 가파르게 하락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최대 화학업체 바스프와 오스트리아 철강업체 푀슈탈피네 등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제조업체들은 값싼 에너지를 찾아 미국으로 몰렸다.

시장에서는 국제유가가 더 떨어져도 미국 셰일기업들이 생산을 줄이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셰일가스의 채산성이 점차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셰일원유 개발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의 원유 공급량은 지난 5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씨티그룹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가 유지돼야 셰일가스 업체들이 이익을 낼 것으로 믿고 있다”며 “하지만 생산원가가 37~45달러까지 내린 현재 단계에서는 75달러선에서도 미국 원유업체들은 생산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마크 핸슨 모닝스타 애널리스트 역시 같은 견해를 밝혔다. 핸슨 애널리스트는 “유가가 배럴당 75달러 수준으로 하락하면 마치 패닉 상황에 이를 것처럼 시장은 떠들어 대지만 만약 배럴당 50달러 밑으로 떨어지더라도 수익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씨티그룹은 유가 하락에 따른 에너지 비용 감소로 인해 미국은 매일 18억달러(약 1조9000억원) 규모의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리고 있으며, 기타 상품 및 원자재가격 하락분을 포함해 이를 연간으로 환산할 시에는 매년 약 1조1000억달러(약 1168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세계 경기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우려

또 다른 전문가들은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올해 원유 수요를 하향했다는 소식에 국제유가가 폭락했다고 평가했다.

IEA가 최근 발간한 월간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원유 수요 전망치는 종전 하루 90만배럴 증가에서 20만배럴 가량 줄어든 70만배럴로 하향 조정됐다. 이는 지난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요증가세이며 작년보다 하루 65만배럴 정도 늘어난 수준에 불과하다.

IEA는 최근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면서 원유 수요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일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올해 7월에 발표한 4.0%에서 불과 3개월 만에 0.2% 내린 3.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IMF는 이 같은 부정적인 전망 배경에 대해 “세계 경제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예상보다 취약한 데다 하방 위험이 여전하다”며 “국가별로 위험요인이 다원화되고 있다”고 세계경제전망(WEO) 보고서를 통해 설명했다.

국가별로는 중국의 성장률이 올해 7.5%를 밑돌 것으로 점쳐진 가운데 일본의 경제 성장 속도는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브라질과 러시아 등 주요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률도 하방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내년 러시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5%로 하향조정됐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자 투자자들은 서둘러 자금을 회수했다. 그 결과 루블화가 대폭 평가절하되면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탓이다.
 
IMF는 이어 유럽도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유로존 3대 경제 대국인 독일·프랑스·이탈리아가 3년 연속 침체기에 접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국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전부 하향조정됐다. 이를 반영이나 하듯 15일(현지시각) 유럽 주요 증시는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국제유가, 수요보다 공급에 주목해야

앞으로 원유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수요보다 공급이다. 중동 걸프 산유국은 국제원유 시장에서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맞추는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늘어나는 셰일 원유로 인해 ‘에너지 패권’ 자리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쿠웨이트 에너지장관은 유가가 배럴당 76달러선까지 떨어져도 문제없다고 언급했으며, 그동안 고유가를 지지해온 이란 역시 돌연 자세를 바꿔 유가가 하락해도 견딜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론적으로 유가 하락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미국 셰일 개발 붐으로 원유 생산량이 많이 늘어난 데다 글로벌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감소 전망에도 불구하고 OPEC 회원국들마저 감산은커녕 오히려 공급 확대에 나섰다는 데 기인한다.

원유 공급은 꾸준히 늘어 지난달 OPEC 회원국들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은 1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OPEC 비회원국들 역시 지난달 하루 원유 생산량이 210만배럴 가량 늘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원유 수요 둔화와 미국 내 셰일 오일 생산 확대 등을 고려할 때 유가의 추가 하락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며 “특히 유가가 70달러 수준대에서 안착할 여지가 높아 보인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유가 급락 현상이 당장에는 글로벌 경기 회복에는 일조하기 힘들겠지만 부양정책의 약
효가 약화하는 상황에서 저유가 현상이 고착화될 경우 시차를 두고 글로벌 경기에는 또 다른 경기부양책과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관점에서 유가 하락 추이를 긍정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