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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의 파벨 두로프, 그는 누구인가(1)VK의 성공과 그의 길

2012년 러시아, 길을 걷던 행인들이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비실비실한 종이 비행기가 허공을 가른다. ‘아이가 장난치는 건가?’ 처음에는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돌릴 뿐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누군가 외친다. “돈이다!” 행인들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우루루 달려들었다. 아이가 날렸을 것이라 생각했던 종이 비행기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5000루블(약 19만원)짜리 지폐였다. 행인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종이 비행기, 아니 지폐를 줍기 위해 서로 주먹다짐까지 벌이며 아둥바둥 다퉜다. 그리고 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한 남자는, 다소 실망스러운 얼굴로 트위터에 글을 올린다. ‘축제같은 분위기를 만들려 했는데...사람들이 짐승처럼 변했다“

그 청년은 엉뚱하면서도 괴이한, 하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IT 로맨티스트 파벨 두로프였다. 우리에게는 텔레그램의 개발자로 익숙한 인물이다.

▲ 파벨 두로프. 사진제공 - 파벨 두로프 페이스북

왜 텔레그래프의 파벨 두로프인가

2014년 10월, 우리는 사이버 검열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 패착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 국내 ICT 산업의 전반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독일의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이다. 그리고 우리는 텔레그램의 탄생배경부터, 이를 창조한 파헬 두로프를 알아야 한다. 국내 IT 산업에 사상 초유의 위기가 닥친 현재가 바로 우리의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힌트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 다음카카오 사과 기자회견. 사진제공 - 뉴시스

파벨 두로프와 러시아, ‘어색한 만남’

1984년 10월 1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파벨 두로프는 그 직후 이탈리아로 넘어갔다. 덕분에 그는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내게 된다. 아버지 발레리가 언어학자로 일하며 이탈리아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자유로운 르네상스의 파도가 몰아치는 이탈리아의 중심에서 자연과 문명, 역사와 미술의 인문학적 소양을 강렬하게 자각하게 된다. 이후 2001년, 그는 러시아로 돌아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한다.

평생의 파트너, 형과의 협업

대학을 졸업한 파벨 두로프는 수학자이자 프로그램 개발자인 형 니콜라이와 함께 2006년 9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브이콘탁테(VKontakte/VK)’의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다. 언어학자의 길을 걷던 그가 형의 영향으로 본격적인 개발자의 세계로 입문한 셈이다. 그리고 VK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한다. 2007년 2월 10만 이용자를 끌어모으며 러시아에서 2번째로 큰 소셜 네트워크로 인정받았으며, 2008년 4월에는 무려 1000만 이용자를 기록해 12월 기준으로 라이벌 회사 오드노클라스니키(Odnoklassniki)를 물리치기에 이르렀다.

파벨 두로프는 단숨에 ‘러시아의 마크 주커버그’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VK의 성공으로 그는 약 2억 6000 달러(약 2조원 이상)의 순자산을 보유하게 됐으며, (2014년 기준) 글로벌 랭킹 8위에 오르기도 했다. VK는 러시아를 비롯해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시 등 동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게 된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형인 니콜라이와의 협업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니콜라이는 수학자이자 프로그램 개발자로서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그리고 파벨 두로프는 언어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짙게 물려받아 인문학적 소양이 충만하다. 이 둘의 만남은 곧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시너지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형제를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과 비교하기도 한다. 물론 파벨 두로프가 스티브 잡스, 형 니콜라이가 스티브 워즈니악이다.

▲ 파벨 두로프. 사진제공 - 파벨 두로프 페이스북

2011년, 그리고 2012년

승승장구하던 파벨 두로프의 인생에 굴곡이 지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의 정치적 급변과 관련이 깊다. 2011년 총선과 2012년 대선 직후 러시아의 대통령인 푸틴을 규탄하는 ‘반푸틴 시위’가 급속도로 확장되며 VK와 러시아 정부의 갈등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급속도로 퍼지는 ‘반푸틴 시위’를 우려스러운 사태로 규정하고, 이를 진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 집권 3기 취임식을 하루 앞둔 2012년 5월 6일 수도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다수의 시위대가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자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러시아 정부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가뜩이나 반푸틴 시위에 참여한 시위대가 ‘수치(shame)’ ‘마이단(Maidan, 친유럽 운동)’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자칫 복잡한 외교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광장’이라는 구호는 우크라이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몰아 낸 반체제 시위의 중심이 됐던 키예프 독립광장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다급했다.

▲ 2011년 반푸틴 시위. 사진제공 - 뉴시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최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VK에 자료협조를 요청한다. VK를 통해 시위대가 정보를 교환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직적인 행동에 나서자 VK에게 시위대의 개인정보와 반정부 인사들의 VK페이지 삭제를 요청한 것이다. 2014년 10월 대한민국 검찰과 카카오톡 사이에서 벌어진 일과 유사하다.

하지만 VK의, 파벨 두로프의 선택은 대한민국의 2014년 10월과 달랐다. 그는 러시아 정부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한편, 어떠한 정보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VK가 ‘눈엣가시’로 부상하는 순간이다.(계속)

최진홍 기자  |  rgdsz@econovill.com  |  승인 2014.10.15  17: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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