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법률 분야의 래지상이 있다면?

해마다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빅 이벤트다. 화려한 배우와 감독,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영화의 향연은 모든 영화팬의 가슴속에 또 하나의 울림을 선사한다.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만큼이나 세계 영화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가 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래지상)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 열리는 래지상은 ‘올해 최악의 영화’를 선정하는 행사다. 최고의 영화와 배우를 뽑는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 최악의 영화와 배우를 뽑는 행사가 열리는 셈이다.

우리나라에 래지상같은 다분히 미국스러운 행사는 없지만, 만약 법률 분야에서 비슷한 행사가 있다면 ‘어떤 법’은 이미 1등을 맡겨둔 것이나 다름없다. 바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이다. 대한민국 법률 분야 래지상이 있다면, 단통법은 단연 수상후보 0순위다.

▲ 단통법 시행. 사진 - 이미화 기자

단통법, 최악의 법으로 남을까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의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스마트폰 보조금 지급을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단통법이 오히려 업계의 혼란을 야기시키는 분위기다. 34만5000원이라는 최대 보조금은 ‘전 국민 고가 스마트폰 구입’으로 수렴되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10월 1일 시행된 이후 3주가 지났지만 들리는 소리는 유통점 폐업, 고가의 스마트폰, 그리고 무책임한 책임전가다.

이런 분위기는 단통법 시행 3주차에도 계속되는 분위기다. 낮은 스마트폰 보조금 문제로 불만이 극에 달했지만 통신사의 보조금 규모는 요지부동이다.

▲ 단통법 시행. 사진 - 이미화 기자

실제로 15일 통신사 홈페이지 공시 기준 스마트폰 보조금 규모는 8일 공시와 비슷하거나 약간 올라간 수준이다. 그나마 갤럭시노트3가 SK텔레콤에서 14만1000원을 기록하며 소폭 상승했으며, 나머지 스마트폰 보조금은 모두 제자리 걸음이다. 물론 31일 이후 아이폰6 시리즈가 국내에 정식으로 출시되면 국내 제조사 중심으로 스마트폰 보조금이 일부 올라갈 여지는 있으나, 그마저도 ‘예상’일 뿐이다.

업계는 초비상이다. 번호이동 및 단말기 구입 비중이 단통법 시행 전과 비교해 반토막이 나며 일선 판매점은 줄줄이 도산하고 있다. 물론 이용자도 피해자다. 단통법 시행이 알려지며 한때 ‘투명하고 합리적인 보조금’을 기대했지만, 이제는 지나치게 비싼 스마트폰 가격에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단통법에 누락된 분리고시 조항을 다시 부활시키는 한편, 통신사가 제조사로부터 단말기를 공급받은 후 요금제와 연계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현행 유통 방식을 다른 전자제품들처럼 바꾸는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아우르는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식도 결국 ‘문제가 많은 단통법’의 테두리 내부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과에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단통법의 거악(巨惡)은 정부

자연스럽게 책임론이 부각되고 있다. 일단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제조사와 통신사를 겨냥하는 분위기다. 특히 단통법이 시행되면 투명한 스마트폰 보조금 시장이 안착할 것이라 장담했던 미래부는 기대했던 효과가 발생하지 않자 제조사와 통신사를 희생양으로 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문제는 압박의 '대상'이 갈지자 행보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제조사를, 후에 통신사를 비판하더니 이제는 단말기 출고가가 높다는 이유로 제조사를 재차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단말기 출고가는 각국의 법률적 한계와 통신사의 보조금 책정 등으로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부는, 아니 정부는 오락가락 비판을 남발하며 '남 탓'에만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물론 제조사와 통신사가 ‘과도한 가계 통신비 사태’에 일차적인 원인제공자임은 확실하지만, 기본적인 정책수립에 실패한 정부의 패착이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정부가 사이버 검열, 국내 게임사업 초토화, 전자 결제 시장의 과도한 규제를 통해 국내 IT 사업을 완벽하게 파괴하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단통법의 여파까지 겹치는 분위기다. ‘어느 나라 정부인가?’라는 업계의 실소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거악(大巨惡)은 국회, 부끄럽지도 않나

국회도 책임에서 비껴갈 수 없다. 올해 국정감사를 통해 미래부와 방통위를 겨냥하며 “왜 정책을 이렇게 만들었냐”라며 당당하게 질타하고 있지만, 사실 국회야 말로 단통법 부작용의 1등공신이다. ‘단통법’을 발의하고 이를 본회의를 통해 통과시킨 곳이 바로 국회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통법은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으며 지난 5월 2일 재석의원 215명 중 찬성 213표, 기권 2표, 반대는 ‘0’표로 통과됐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단통법의 긍정적인 취지가 부각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법을 통과시켰다는 이유만으로 국회에 맹목적인 비판을 가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나 단통법 자체를 꼼꼼하게 따지지 않고 이를 졸속으로 처리한 점은 분명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단통법이 발의되고 공표된 5월은 여야가 세월호 참사 및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의혹 등으로 지루한 공방전을 펼치던 시기다. 물론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항이지만, 당시 여야는 정당의 이해논리에 갇혀 무의미한 다툼만 벌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단통법이 제대로 논의되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실제로 여야는 단통법의 진정한 의미와 분석없이 그저 '법을 처리하자'는 기계적인 사고에 갇혀 간단하게 법을 통과시켜 버렸다. 결국 국감장에서 의원들이 미래부 장관과 방통위 위원장에게 ‘단통법이 엉망이다’고 호통을 치는 장면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갈 뿐이다.

물론 여야가 정쟁을 벌이며 단통법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을 때, 일부 이익 당사자의 의견을 대변하며 무리하게 단통법 통과를 촉구했던 언론의 책임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대목이다.

 

“창조경제는 정부가 얌전히 있어주는 것?”

최근 업계에는 “정부가 창조경제를 위해 일하지 말고, 차라리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이 돕는 것이다”라는 냉소가 번지고 있다. 소위 작은정부론이다. 그만큼 단통법 하나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사이버 검열, 게임사업 파괴, 전자 상거래 시장 규제 등으로 대한민국 IT 산업을 파괴하는 가장 큰 적은 ‘정부’라는 한숨이 업계 전반에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