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출산·유아교육 박람회에 손주와 함께 방문하는 조부모가 꾸준히 늘고있으며, 이들이 아이용품을 구입하는 주요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 코리아베이비페어 제공

# “우리 손자랑 산책할 때 내가 힘에 부치니까 유모차를 꼭 가지고 나가는데 가벼운 접이식 제품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오늘 하나 구매하려고요”

- 서울시 도봉구. 김민자(63세) 씨

# “아들 내외가 맞벌이를 하니까 낮에 손녀를 봐주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애들 먹거리나 필요한 용품은 내가 구입하게 되지요. 손녀 하나인데, 다 좋은 것만 해주고 싶지.”

- 경기도 일산. 박순덕(58세) 씨

지난 9일부터 나흘간 열린 코리아베이비페어(코베) 임신·출산·유아교육 박람회에서는 부모가 아닌 손주를 위해 이곳을 방문한 조부모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코베 관계자는 “나흘간 12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는데 특히 손주와 함께 온 50~60대 조부모의 숫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자녀 대신 육아를 맡는 조부모가 늘어나면서 아이들을 위한 소비주체가 자연스럽게 부모에서 조부모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자녀를 위해서 기꺼이 소비할 수 있는 어른이 부모 외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6명이 존재한다는 ‘식스포켓(Six Pocket)’이라는 마케팅 용어까지 생겨났다. 요즘에는 ‘식스포켓’을 넘어서 결혼하지 않은 ‘골드 미스’ 이모와 고모까지 포함시킨 ‘에잇 포켓(Eight Pocket)’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귀한 우리 아이에게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소비 주체가 늘어나면서 키즈 관련 산업에서는 불황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KB연구소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유아 및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키즈 산업’ 규모는 27조원으로 2002년 대비 10배가량 성장했다. 기존의 키즈 산업은 콘텐츠 시장(애니메이션, 캐릭터 등)과 유아용품, 장난감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소비의 주체가 부모에서 조부모, 이모, 고모까지 다양화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스마트 기기가 활성화되면서 ICT 시장에서도 ‘키즈 모시기’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 코리아베이비페어 제공

‘키즈’는 불황을 모른다

최근 마트에서 가장 잘 팔리는 카테고리의 상위권에 완구류가 지속적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A사 마트 관계자는 “이 마트 상담직원에 따르면 새로운 캐릭터의 완구가 입고되면 관련 문의전화가 정말 많이 온다”며 “최근에는 제품이 품절됐다는 얘기에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께서 언제쯤 살 수 있냐고 재차 물으시며 다른 지점에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이가 원하면 뭐든 해주려고 하는 어른의 소비심리에 관련 업계는 호황이다.

롯데마트의 토이저러스 잠실점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고객들이 꾸준히 방문하는 곳이다. 토이저러스 관계자는 “주말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고 바쁘다”며 “최근에는 아이와 함께 방문하는 조부모뿐 아니라 젊은 이모나 삼촌과 함께 방문하는 경우도 많아지면서 아이를 위한 소비의 주체가 다양화돼 관련 매출도 계속 상승세”라고 귀띔했다.

 

온라인 마켓 역시 키즈관련 제품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옥션에 따르면 올해(1월 1일~10월 7일) 유아용품의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했다. 유아용품의 판매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로, 최근 3년간 판매가 평균 10% 늘었다. 특히 올해에는 손주를 키우는 조부모의 유아용품 구매가 크게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올해 50~70대 시니어 고객의 유아용품 구매는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 이 중 유모차, 카시트 등 고가의 아동용품 구매는 60%나 증가했다. 옥션 관계자는 “조부모가 선물해주거나 조부모 스스로 육아에 사용할 제품을 고르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조부모들은 스마트폰과 모바일 쇼핑 사용 증가로 오픈마켓의 새로운 고객층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유아용품에서는 캐릭터 상품이 매출에서 강세를 보인다. 옥션이 한 해 중 완구 판매가 가장 많은 4월을 기준으로 지난 3년간 어린이 캐릭터 완구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올해는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의 열풍으로 ‘엘사’가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로 꼽혔다. 엘사의 뒤를 잇는 인기 캐릭터는 또봇, 타요, 라바, 바비/미미 순이었다.

해외직구로 키즈용품을 구입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옷, 식품, 과학 교구 등 구입 분야도 다양해졌다.

겨울왕국과 타요, 라바 등 캐릭터의 인기로 올해 캐릭터 완구는 작년 동기 대비 150% 판매가 신장했다. 엘사는 작년에 비교군이 없어 자체 신장률은 집계가 안 되지만, 엘사를 포함한 디즈니 캐릭터는 올해 현재까지 작년 동기 대비 인형 상품이 240%, 캐릭터 상품이 55% 증가하는 등 엘사의 힘으로 전체 카테고리가 크게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타요버스가 운행되면서 타요의 인기가 회복세를 보였으며, 라바는 올해부터 판매가 크게 늘어 카테고리를 별도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골드미스’로 불리는 미혼의 이모·고모들은 백화점에 나온 고급용품을 중심으로 더욱 과감하게 소비한다. 현대백화점이 올해 1월부터 2월 17일까지 아동·스포츠캐주얼 구매 연령층을 분석한 결과, 30대 미혼여성 비중은 14.9%로 2010년(13.4%)보다 늘어났다. 이들의 씀씀이도 커서 2010년에는 1인당 3.7회씩 현대백화점 유아매장을 찾아 건당 평균 30만4000원을 소비했지만, 지난해에는 1년간 4.2회 찾아 36만5000원을 썼다. 객단가가 20% 이상 신장한 셈이다.

60대 남·여 소비자의 현대백화점 유아매장 소비 비중도 2010년 1~2월 각각 5.5%, 5.2%에서 올해는 6.3%, 6.4%로 증가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골드미스들이 높은 구매력을 바탕으로 키즈의 주력 소비군으로 떠올랐다”며 “실버 세대들 역시 손주를 위한 물건 구입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고 말했다.

ITC, 향후 먹거리 ‘키즈 사업’에 집중

최근 어린이들의 태블릿 PC, 스마트폰 이용률이 높아지면서 ICT 산업 내에서도 키즈가 공략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영유아 및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 소비는 자연스럽게 부모의 지출로 이어지므로 관련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는 “어린이들의 디지털 콘텐츠 소비는 엔터테인먼트에 교육성을 가미한 에듀테인먼트(Edutatiment) 산업을 크게 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탭3 키즈’는 놀이를 하듯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다양한 어린이용 콘텐츠를 탑재했다. 특히 창의력과 사고력을 높여주는 글로벌 인기 애플리케이션들을 기본으로 탑재했으며, 1500여 개의 프리미엄 학습 콘텐츠와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다운받을 수 있는 ‘키즈월드’와 아이들에게 최적화된 애플리케이션을 모아놓은 ‘키즈스토어’도 갖추고 있다. 아울러 부모와 자녀가 안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사용시간, 애플리케이션, 마켓 접속을 제어하는 ‘부모 모드’를 지원한다.

사진: SKT 제공

LG전자는 2012년 ‘키즈패드’를 처음 선보였으며 출시 직후 홈쇼핑 판매를 통해 16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올해 5월 후속 제품으로 ‘키즈패드2’를 선보였는데 회사 측은 아가월드, 블루스프링스 등 주요 교육 업체와 협력해 유아교육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아가월드의 전집시리즈 및 교구를 콘텐츠화해 담을 예정이며, 블루스프링스 센터 내 체험존을 설치하고 수업에도 ‘키즈패드2’를 활용할 계획이다.

‘키즈패드2’는 한글, 영어, 중국어를 동시에 학습할 수 있는 ‘디즈니 삼중언어’ 등 기초적인 영역별 학습 콘텐츠와 ‘기억력 놀이’, ‘칠교 놀이’ 등과 같은 사고력을 키워주는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구성해 3∼7세 아이의 정서와 인지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LG전자 서의홍 키즈패드 BL(비즈니스 리더)은 “다양한 유아 교육 콘텐츠 등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유아 패드 시장 공략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부모들을 위해 지난 7월 SK텔레콤이 선보인 어린이 전용 단말 ‘T 키즈폰 준(JooN)’도 인기다. T 키즈폰 준은 손목시계나 목걸이 형태의 웨어러블(Wearable) 기기다. 간편 통화, 자녀 위치 실시간 확인, 안심 존(Zone) 설정 등 부모가 스마트폰을 통해 자녀의 안전을 관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능을 지원한다. 회사 측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누계 가입자가 5만명을 돌파했고, 해당 단말기의 하루 가입자가 1000명 이상이다.

업계 전문가는 “최근 ICT 기기 활용도가 높아지고, 어린이들의 태블릿 PC 및 스마트폰 사용률이 빠른 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단말기, 콘텐츠 관련 사업자들이 키즈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며 “시장포화로 성장률이 저하된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에서 키즈라는 날개를 달고 관련 업계는 적극적으로 니치마켓(niche market)을 공략 중”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특히 어린이들이 본인 소유의 기기를 갖기를 원함에 따라 이를 공략한 어린이 전용 기기가 나오고 있다”며 “어린이들도 어른 못지 않은 통신사의 ‘골드 고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