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다음카카오는 사이버 검열 문제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당초 기자회견에는 이석우, 최세훈 공동대표가 모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다. 사안이 심각한 만큼 두 명의 공동대표가 전면에서 사태 진화에 나설 것으로 관측됐기 때문이다. 실제 기자회견장에도 의자 두 개가 비치됐었다. 하지만 기자회견 직전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석우 공동대표뿐이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통합하기 전 카카오를 책임지던 이 대표가 홀로 나서 이번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혀졌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는 “사이버 검열에 대해 안이한 인식과 미숙한 대처로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불안과 혼란을 끼쳐 송구하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순간 현장에 대기하고 있었던 수많은 카메라가 돌아가며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플래시를 터뜨렸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사과 수순이다.

하지만 이석우 공동대표의 다음 발언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는 “10월 7일부터 수사기관의 감청 영장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응하지 않겠다”며 “인터넷기업협회처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다양한 업체들과 지혜로운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다”라고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비장한 톤으로 밝혔다. 모든 책임을 대표이사인 본인이 지겠다는 얘기도 했다. 갑자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한 명의 공동대표를 남겨두고 혼자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이석우 공동대표의 의중이 피부로 느껴졌다. 다음카카오가 ‘배수의 진’을 쳤다는 의미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정부가 IT산업 파괴의 주범인가?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창조경제 예산으로만 8조3302억원을 편성했다. 올해 대비 17.1%나 증가한 금액이다. 특히 과학기술 및 정보통신 역량 강화에만 1조8922억원을 투입키로 한 대목에 눈길이 쏠린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과학기술 및 정보통신 역량은 물론 신사업-신시장 개척에 3조5437억원, 창업생태계 및 벤처중소기업 지원에 1조7483억원, 창조경제 문화 조성에 1조1460억원을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창조경제 활성화 의지는 내년도 예산안 발표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 진정성부터 의심받고 있다. 무차별적인 규제로 국내 IT산업의 ‘빙하기’를 자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위시한 사회문화적 파장과는 별도로, 정부의 과도한 규제는 IT산업을 근간부터 갉아먹는 암적인 존재로 비쳐지고 있다.

 

다음카카오, 착한 모범생에서 희생양으로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까지 한 다음카카오는, 사실 지금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어야 정상인 업체다. 지난 1일 합병한 이후 14일 코스닥시장에서 신주를 발행하며 또 한번 비상의 기회를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다음카카오는 추가 상장을 통해 시가총액 7조8700억원대의 거대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셀트리온을 누르고 단숨에 시가총액 1위 대장주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코스닥시장에서 IT기업이 시가총액 1위의 자리에 오른 것은 2008년 SK브로드밴드 이후 5년 9개월만이다. 하지만 다음카카오의 미래에 장밋빛 전망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의외의 복병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바로 정부의 사이버 검열 논란이다.

▲ 최세훈(왼쪽),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가 합병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이미화 기자

13일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검찰이 작성한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단 범정부 유관기관 대책회의’ 자료를 공개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검찰은 ‘공직자의 인격과 사생활에 대한 악의적이고 부당한 중상·비방’을 중점 수사목록에 넣어 카카오톡은 물론 네이버의 라인과 밴드까지 현존하는 대부분의 모바일 플랫폼을 수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 의원은 이에 대해 “이는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 견해를 사전에 막아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특정 검색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처벌하겠다는 것은 검찰 스스로 사법부임을 포기하고 정권의 호위무사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전병헌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전체 인터넷 감청은 총 1887개 회선(감청허가서 401건)에서 이뤄졌으며, 이 가운데 1798건(95.3%)이 국정원에서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정보기관이 무리한 유권해석을 통해 과도하게 온라인 데이터를 수집했다는 결론이 가능해 보인다.

카카오는 물론 네이버의 라인과 밴드에 대한 정부의 사이버 검열은 고스란히 국내 IT기업들에 직격탄으로 돌아갔다. 우선 이들 기업에 대한 이용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카카오의 실사례를 들여다보자. 한때 망 중립성 논란이 벌어졌을 무렵, 통신사의 견제에 힘겨워하던 카카오는 이용자들의 응원 덕에 간신히 동력을 추스리며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모바일 트래픽 증가의 원흉으로 지목되며 문자 메시지 사업을 빼앗긴 통신사의 공세가 만만치 않았지만 카카오는 ‘국민’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기에 위기에도 끄덕없이 무게중심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사에 순순히 응하겠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카카오는 이용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뒤늦게 외양간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도 바로 이 같은 다급함이 묻어있다.

사실 외양간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상당히 진일보한 대안이다. 카카오가 밝힌 해결책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바로 비밀대화 기능과 수신확인 메시지 삭제 기능이다. 비밀대화 기능은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 전체를 암호화 시키는 기능이다.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암호키도 다음카카오의 서버가 아닌 이용자의 스마트폰에 저장되도록 만들었다. 수사기관이 다음카카오의 서버를 압수수색해도 비밀대화 기능으로 오간 대화는 확인할 수 없다. 이용자의 스마트폰에 모든 것이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 다음카카오는 이 기능을 개발하기 위해 단말기에 암호키를 저장하는 ‘종단간 암호화(end-to-end encryption)’ 기술을 도입했다. 다음카카오는 이 기술을 올해 안으로 1:1 비밀대화방에 우선적으로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그룹 비밀대화방에도 적용할 방침이다. 수신확인 메시지 삭제 기능은 더욱 강력한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이다. 수신이 확인되는 즉시 대화 내용이 서버에서 자동으로 삭제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용자 두 명이 온라인 상태에서 대화를 주고 받으면, 그 즉시 대화 내용이 서버에서 삭제된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정기적인 투명성 보고서 발간도 이용자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의 헛발질과 카카오의 ‘실기’가 결국 사태를 악화시킨 셈이다. 물론 일각에서 ‘동정론’도 고개를 들고 있지만, 당분간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질적인 위협까지는 미치지 못해도 카카오는 그 브랜드 가치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기자회견이 터닝 포인트라는 점은 맞지만 피해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반대급부로 텔레그램의 성공이 눈부시다. 독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은 260만명이 넘는 국내 이용자를 흡수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게임산업도 마찬가지다

모바일 메신저 시장만 정부의 정치논리에 상처받는 것은 아니다. 게임시장도 마찬가지다.

국내 게임시장은 2000년대 초만해도 중국시장을 사실상 지배해 왔다. 한류의 원조라고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정부가 ‘셧다운제’를 내세워 국내 게임시장을 사실상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관련산업은 완전히 무너졌다. 오히려 중국의 제물로 전락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텐센트’는 최근 관련사업에 박차를 가하며 한국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텐센트는 지난 9월, 국내 모바일 게임사 파티게임즈가 텐센트로부터 2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텐센트가 단숨에 지분 20%를 확보해 2대 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물론 텐센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리바바 역시 국내 유수의 게임업체 파티게임즈, 네시삼십삼분과 게임 퍼블리싱 계약을 맺었다. 아울러 중국 샨다게임즈도 2004년 1000억원을 투자해 액토즈소프트를 사들였고, 2010년에는 1100억원으로 아이덴티티게임즈를 인수했다.

▲ 2011년 셧다운제 폐지 촉구 1인 시위. 사진제공 - 아수나로

중국게임 산업도 성장일로다. 지난 6월 리서치 전문업체 ‘뉴쥬’가 발표한 세계 게임회사 매출 TOP 25를 보면 중국의 성장이 확연하다. 중국의 텐센트가 경쟁사에 비해 압도적인 차이로 1위를 기록하는 가운데 13위의 넷이즈, 23위의 창유도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전 세계 게임시장의 성장축이 단순 개발 및 퍼블리싱 기업에서 유통 마켓과 채널, 플랫폼을 보유한 회사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중국 게임시장의 약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6월 2일 한국무역협회는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K-IDEA)와 공동으로 국내 90여개의 게임회사를 대상으로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국내에서 게임회사를 계속 꾸려 가겠는가?’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설문조사 결과 정부지원 및 세금감면 등 혜택이 주어지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싶다고 응답한 회사가 무려 80.5%나 됐기 때문이다.

‘정경분리’가 필요하다

모바일 메신저 검열과 게임산업의 예만 있는 것도 아니다. 애플페이부터 시작된 전자상거래 시장도 삼성전자가 먼저 상용화 기술을 개발했으나 정부는 보안과 관련된 과도한 규제로 이를 원천봉쇄한 바가 있다. 이대로는 될 일도 안 된다.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아소 다로 일본 경제부총리가 미국에서 만나 양국의 경제협력을 위해 ‘정경분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진짜 정경분리가 필요한 곳은 바로 국내 IT분야다. 업계에서는 IT분야를 정치적 논리로 재단하는 현 정부의 기조가 이어지는 한, 제대로 된 창조경제 구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석우 공동대표의 사과와 국내 게임사업의 몰락이 묘하게 오버랩되며 불길한 예감이 밀려드는 것도 바로 그 같은 이유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이석우 공동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연 곳은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이다. 공교롭게도 청와대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IT사업의 역군으로서, 정부와 국가에 대한 무언의 불만을 토로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대한민국 IT는 폭풍전야의 불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