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상거래 업체 페이팔(Paypal)이 이베이에서 독립한다. 페이팔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요인이 많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그 여파는 단순하지 않다. 향후 전자 상거래 시장의 격변이 예고된다.

치열한 글로벌 전자 상거래 시장

최근 글로벌 전자 상거래 시장은 요동을 치고 있다. 뉴욕증시 상장으로 잭팟을 터트린 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알리페이는 MMF(머니마켓펀드)까지 영역을 확장해 엄청난 수익을 거두는 한편, 홍콩에서도 MMF 사업을 타진하고 있다. 심지어 국내 진출도 본격적으로 모색하며 IT 강국 대한민국의 전자 상거래 시장도 넘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공개된 에플페이는 막강한 동맹군을 바탕으로 전통의 강자 구글월렛의 지위를 넘보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카카오페이가 태동하며 새로운 사업동력을 끌어 올리는 중이다. 이미 ‘삼성월렛’으로 안드로이드 기반의 전자 상거래 기술을 검증받은 삼성전자는 국내의 과도한 규제에 막혀 중국의 유니온페이와 합작하는 우회전략을 선택한 상황이다.

이처럼 전자 상거래 시장은 치열한 격변의 시기를 맞이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존 도나호 이베이 최고경영자는 이베이에서 페이팔을 정식으로 분리한다고 발표했다. 늦어도 내년 하반기 페이팔은 이베이와 상관없는 ‘남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페이팔의 독립이 의미하는 것

페이팔의 독립은 글로벌 전자 상거래 시장에서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경쟁력 제고다. 페이팔은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이 누차 지적했듯이 ‘이베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대목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금까지 페이팔이 이베이의 틀 안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는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타오바오라는 그릇 안에서 알리페이라는 젓가락이 성공한 이유와 같다. 페이팔의 성공에는 이베이라는 ‘배경’도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 이유로 페이팔의 분사 여부를 두고 열린 이베이 이사회에서는 격론이 펼쳐진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존 도나호 이베이 최고경영자는 “페이팔의 성공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곳은 이베이”라며 페이팔 분사 불가를 천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이베이 연례 전략회의였다. 회의에서 존 도나호 이베이 최고경영자는 비트코인과 같은 신기술의 도입을 검토하는 한편, 이베이의 이용자들이 우버나 에이비앤비와 같은 공유경제 서비스도 이용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며 ‘분사’로 방향을 잡았다. 이베이 입장에서는 다양한 결제수단으로의 영역확장이 필요하며, 페이팔은 이베이라는 틀을 넘어 경쟁사를 넘나드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감했다.

▲ 존 도나후 이베이 CEO. 사진제공 - 이베이

이로써 페이팔은 이베이의 틀에서 벗어나 또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는 아시아 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한 포석이 될 전망이다. 페이팔은 이미 국내시장 진출 초읽기에 돌입한 상황이다.

 

우리는 준비하고 있나?

알리페이와 더불어, 독립한 페이팔의 공습에 대비하는 국내 전자 상거래 시장은 사실상 ‘무대책’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게임시장의 대부분이 중국의 텐센트를 비롯해 다수의 외국 업체에 넘어간 역사가 전자 상거래 시장에서 또 한번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할 수준이다.

지난달 26일 여신금융협회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간편결제 서비스 확대에 따른 환경변화 요인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협회는 페이팔의 수수료 체계를 바탕으로 산정한 결과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수수료는 매출액별로 2.36~3.97%로 예상되는데 이는 국내 3.4~4.0%에 비해 낮다"고 설명했다. 페이팔이 국내로 진출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미국의 페이팔과 중국의 알리페이 등 외국계 간편결제 업체가 저렴한 수수료를 앞세워 우리나라에 진출할 경우 쇼핑몰업체들이 외국계로 옮겨가 국내 업체 시장점유율이 잠식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책은 없는 것일까? 일단 여신금융협회는 카드업계가 갖춘 기존의 보안시스템을 활용해 PG업체들의 수수료를 낮출 수 있는 공동 간편결제서비스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결제 단계를 줄여 몸집을 슬림화시킨 후 체급을 맞추자는 뜻이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 정부의 정책은 여전히 형편없는 수준이다.

2일 여신금융협회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에 대한 성토를 쏟아냈다. 협회에 따르면 현재 PG사들이 카드정보를 저장하려면 자체 FDS는 물론, 재해복구센터를 반드시 구축해야 하는 자격조건을 갖춰야 한다. 심지어 자기자본금이 400억 원 이상이어야 하며 국제 브랜드사가 공동으로 만든 표준 보안 인증(PCI DSS)을 갖추도록 했다. 하지만 PG사 가이드라인에 ‘채찍’만 있다는 것이 문제다.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바람에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페이의 PG사인 LG CNS가 적격 PG사에서 탈락할 위기에 몰린 대목은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에만 매몰된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진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LG CNS는 '1년 이상 상용화된 자체 간편결제서비스 운영 경험'이 없어 PG사에서 탈락할 수 있다. 카카오페이를 통해 모바일 결제 시장에 승부수를 던지려던 다음카카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페이팔은 매년 예산을 구성할 때 큰 규모의 손해배상 규모를 가정하고 그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인정하면서 그 ‘리스크’를 줄이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내의 전자 상거래 시장은 사업 초기부터 과도한 규제에 묶여 보안사고를 ‘0’으로 상정하고 사업을 실시한다. 공격적인 사업이 원천적으로 막힌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에 튀는 불똥

페이팔의 독립으로 삼성도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이미 삼성월렛이라는 상품을 개발했지만, 중국의 유니온페이와 먼저 제휴에 돌입한 삼성 입장에서 페이팔의 독립은 분명히 위기다. 이유는 간단하다. 페이팔이 삼성과 맺은 전략적 제휴가 틀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달 1일 애플이 애플페이를 처음 출시했을 무렵, 애플의 동맹군 중 페이팔의 이름은 없었다. 이미 페이팔은 삼성과 먼저 제휴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독립’으로 페이팔은 삼성과의 제휴에 연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페이팔이 독립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새로운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적으로 여겨지던 기업과도 과감하게 손을 잡겠다는 의지가 상당하다. 일각에서는 페이팔이 삼성과 결별하고 애플과 손을 잡을 확률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는 이유는, 존 도나호 이베이 최고경영자의 퇴진 때문이다. 페이팔과 삼성의 협력에 있어 가교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존 도나호 이베이 최고경영자다. 그는 삼성과의 제휴를 반대하던 데이비스 마커스 페이팔 사장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결국 페이팔-삼성 조합을 일궈낸 일등공신이다.(당시 일로 데이비스 마커스 사장은 사표를 쓰고 페이스북으로 이직) 하지만 그는 페이팔 분사를 마지막으로 이베이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난다. 삼성의 든든한 우군이던 존 도나후 이베이 최고경영자의 퇴진은 전자 상거래 시장에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삼성 입장에서 분명한 악재다.

페이팔, 애플과 손 잡을까?

분사한 페이팔이 애플과 적극적으로 결합하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일단 양쪽이 너무 ‘멀리 왔다.’ 갈등의 골이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당초 애플은 애플페이 출시를 준비하며 페이팔과 긴밀하게 협조를 해왔다. 하지만 존 도나호 이베이 최고경영자가 이를 뒤엎고 삼성과의 제휴를 추진하자 애플은 상당히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애플은 스타트업 기업인 스트라이프와 제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페이팔은 아이클라우드 해킹 당시 노골적으로 애플을 조롱하기도 했다. 물론 냉정한 사업의 영역에서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가 될수 있지만, 페이팔 사장의 퇴진까지 엮이며 대립의 역사를 썼던 양쪽의 대승적인 화합은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