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는 흥미로운 분야다. 단순한 플랫폼으로 여겨지며 기능적 집적도에만 치중하면 차분한 진화의 역사를 만들지만,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 개입하는 순간 모든 것을 부수고 재창조하는 거대한 시대의 파도로 돌변한다. 그리고 지금, 사회적 현상과 IT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모든 것을 다시 만드는' 극적인 장면이 2014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장면1. 10월 1일 다음카카오 출범식. 대형 IT 회사인 다음카카오의 ‘잔치날’에 나타난 한 기자가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사이버 망명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회견장에는 순간적으로 차가운 공기가 스친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는다. 이석우 대표와 최세훈 대표는 조심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국내 법에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기자는 다시 묻는다. "정부가 원한다면 카카오 서버를 볼 수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꼬리가 흐려진다. "서버가 암호가 되는지 확인부터 해야...."

장면2. 홍콩의 거리. 화려한 조명대신 우울한 회색빛의 건물이 진득한 그림자를 떨군다. 주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호흡을 고르며 자신들을 겨누고 있는 날카로운 국가의 ‘무력’에 맞서고 있다. 그때 누군가의 비명이 터진다. 경찰이 돌격하자 아득한 최루탄의 연기가 쏟아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마치 약속이나 한것처럼 우산을 펼쳐들었다. 촤르륵. 날카로운 검은 빗방울이 우산대를 때린다.

그 틈을 노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인스타그램에 접속한다. 폭력과 절규가 오가는 현장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세계로 퍼진다.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근처에서 운영되는 병원과 약국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전파하고, 모바일 메신저인 왓츠앱(Whatsapp)을 통해 시위 지역 주변에 설치된 응급 치료 시설에서 일할 인력이 모인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사람들을 위한 생필품 목록이 업데이트 된다. “동쪽거리에 경찰이 몰리고 있습니다” 다급한 메시지가 동시다발적으로 번진다. 사람들은 최루탄을 피하기 위해 한손에는 우산을 쓰고, 다른 한손에는 스마트폰으로 시위대와 경찰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행진한다.

 

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장병완(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글로벌 애플리케이션 리서치기관 '앱애니'로부터 받은 자료를 공개했다. 장 의원에 따르면 애플 앱스토어 100위권 밖에 있던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이 최근 부동의 1위였던 카카오톡을 물리치고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다음카카오가 출범한지 하루만에 나온 발표다.

▲ 다음카카오 출범. 사진 - 이미화 기자

장 의원에 따르면 지난 19일 검찰의 ‘사이버 공간 검열’ 발표 이후 4일 만에 45위까지 뛰어올랐던 텔레그램은 24일 이후로 카카오톡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놀라운 성과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도 텔레그램은 전체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랭키닷컴에 따르면 최근 텔레그램의 국내 이용자는 일주일만에 2만명에서 25만명으로 10배 증가했다.

텔레그램의 ‘비약’은 사이버 검열과 결을 함께한다.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카카오톡을 들여다 볼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이버 망명객들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카톡방을 운영하던 기업과 언론사들도 속속 텔레그램으로의 망명길에 오르고 있다.

당초 텔레그램은 강압적인 러시아 정부의 사이버 검열을 피하고자 만들어진 ‘휘발성 모바일 메신저’다. 다음과의 합병을 천명한 카카오톡 입장에서는 황당한 현상이다.

업계에서는 텔레그램으로의 망명이 증가할수록 다음카카오는 물론, 국내 IT 환경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트래픽 자체가 수익인 모바일 환경에서 ‘정치적 이유’로 만들어진 텔레그램에 사람들이 몰리면 기존의 생태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석우 대표는 10월 1일 합병 기자간담회에서 카카오톡 검열에 대해 “국내 법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은 상태다.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다음카카오의 수장으로서 다소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발언은 당연한 발언이지만, 구글의 래리 페이지 CEO가 미국 정부의 검열에 대해 “법 위에 국민이 있으며, 구글은 국민과 함께 한다”고 발언한 대목과 묘하게 오버랩되기도 한다. 사회적 현상이 IT의 지형을 바꾸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을 전망이다.

반면, IT 현상이 사회적 현상을 바꾸는 일도 있다. 중동의 쟈스민 혁명이나 국내의 SNS 정치참여 독려에 따른 판세 뒤짚기,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야당이 제작한 내부 보고서에 담긴 카카오 메시지 등이 대표적이다. IT의 발전으로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다. 특히 최근 벌어진 홍콩의 우산시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발견이 많다.

1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는 홍콩의 민주화 요구 시위, 통칭 우산시위를 분석하며 “뚜렷한 지도부가 없는 시위지만, 오히려 이런 부분 때문에 시위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서 촉발된 시위인데다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과의 직접 대화부터 렁 장관의 즉각 사임, 중국 중앙 정부의 양보요구 등 조건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처음 발생한 우산시위도 다분히 충동적이다.

▲ 서울 인사동 입구에서 홍콩관광객들이 자국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 노연주 기자[스마트폰 촬영]

일각에서는 홍콩의 우산시위를 대표적인 IT형 시위로 부른다. 실제로 많이 닮았다. 개개인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는 점은 위키디피아로 대표되는 집단지성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는 현실세계에서는 어려운 일이며, IT에서 처음 시도된 바 있다. 게다가 지도부가 없다는 것도 유사하다. 우산시위는 시위를 주도하는 대표가 없으며, 따라서 협상창구도 없다. IT도 마찬가지다.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큰손은 있어도 전체 IT를 대표하는 지도부는 없다.

게다가 시위의 수단마저 ‘IT스럽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부족하거나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모바일로 정보를 전파한다. 자원봉사자 모집부터 구호품까지 모바일로 공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씻으며 시위대의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체크하다가 사람이 줄어든다 싶으면 다시 뛰쳐나오고 있다. 시위가 흐지부지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모바일 세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식이다. 시위문화가 변하는 셈이다.

사회적 현상과 IT는 이제 상호보완을 떠나 완벽하게 합쳐지는 분위기다. 다만 지금까지 IT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사회적 현상의 도구가 되었다면, 사이버 망명객 사례에서도 알 수있듯이 사회적 현상이 IT의 지형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적 현상과 IT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