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칙 따른 폭로만이 사회에 순기능…
개인 이익 따른 돌발행동 땐 자신마저 파멸

내부고발자들은 말한다. 만약 당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부정과 부패, 비리를 목격해 놓고 아무 일 없듯 넘어 갈 수 있겠는가. 잘못된 일을 알린 것 뿐인데 세상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이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배신자라는 낙인과 억울함 뿐이다. 올바르지 못한 시민의식은 한국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다. 어떤 회사원은 성공을 위해 오너 일가가 정치권 로비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비자금 관리 서류를 조작하기도 한다.

진실을 감추고 잘못을 눈감아야 한다고 부추기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시민의식. 대한민국 경제뿐 아니라 미래를 좀먹고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내부고발 문제를 심층 진단하고, 나름의 대책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회사의 비리, 부패를 목격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양심에 따라 폭로를 한다면 배신자란 낙인이 찍힐 수 있다. 반면 눈을 한번 찔끔 감으면 모든 것이 편하다. 우리는 어떤 행동이 올바른 것인지 머릿속으로 알고 있다.

진실 폭로를 주저하게 만드는 가혹한 대가

# 지난 8월23일. 서울시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5·6·7·8호선의 안전 문제가 제기됐다. 정확히 말하면 스크린 도어 감전 사고다. 장애인이 전동차에 오르다 스크린 도어 발판에서 스파크가 일어났고, 승강장과 전동차 간격을 재던 공익요원이 줄자를 대자 스파크가 튀는 현상이 발생했다. 지하철 차체에 전기가 흐르고 있다는 얘기다. 편법으로 급하게 설치하다 생긴 안전상의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시도시철도공사는 부랴부랴 승강장 출입구 쪽에 전열판을 설치하는 등의 안전조치를 취했다.

# 전북 군산에 40층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 현대주택건설이 짓는 현대메트로 아파트다. 지역 언론들은 랜드마크 빌딩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호들갑을 떤다. 군산시도 비슷하다. 그런데 여기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아파트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 문제다. 현대주택건설이 군산시로부터 설계 허가를 받자마자 설계 변경을 했기 때문이다. 공사 기간도 2년을 단축했다. 허가 이후 설계 변경은 불법인 동시에 향후 아파트 붕괴, 기울임의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는 게 건축업자들의 말이다. 실제 해당 공사 지역은 터파기 공사 진행과 동시에 도로 침하, 주변 건물의 기울어짐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두 가지 사례의 문제점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윤리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부에 알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닌가. 혹자는 입을 다물게 된다면 살인자와 다를 게 뭐냐고 말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문제를 외부에 알린 이들은 길거리로 내몰렸다. 서울지하철도공사는 감전 가능성을 알린 내부고발자 3명에게 파면을 통보했다. 사건이 알려진 이후 두 달 만의 일이다. 내부고발자 색출 작업을 벌인 뒤 가장 먼저 취한 조치다. 사고 CCTV 동영상을 외부로 유출했고, 회사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군산시에 건축 중인 고층아파트의 내부고발자 역시 비슷한 처지다. 건축 안전을 검사해야 할 감리사는 문제를 제기한 이후 각종 소송에 휘말렸다. 문제 제기에 따른 공사 지연 등의 손해 배상이다.

LG전자 왕따 메일로 잘 알려진 정국정(본지 538호 보도)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2000년 회사 내부의 검은 커넥션 문제를 지적하고, 퇴사 통보를 받은 뒤 11년 간 법정 소송을 벌였고 2010년 2월5일 고등법원의 복직 판결을 받았다.

일단 겉으론 모든 게 잘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실을 말한 대가는 가혹했다. 10여 년 동안 법정 소송을 벌이는 동안 결혼도 하지 못했다. 복직 판결의 경우도 아직은 확실치 않다. LG전자가 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 대법원의 마지막 결정이 남았다. 최종 판결 일자는 언제가 될지 모른다.

김용환 공익 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대표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호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렴한 사회,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보호 받는 행동수칙 따로 있다”

# 최근 한화그룹의 비자금 문제가 떠들썩했다. 검찰은 한화 계열사 16곳 중 13곳을 압수수색했다. 정치권 비자금 관리 등의 혐의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한화증권 투자상담사를 지낸 윤OO씨가 금융감독원을 찾아 내부 제보를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윤씨는 1989년부터 2005년까지 근무를 한 인물이다. 한화는 검찰 수사 소식이 알려지자 윤씨의 도덕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회사에 비리를 들먹이며 돈을 요구했다.” <이코노믹리뷰>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도덕성 문제가 제기되자 부담을 느껴 잠적을 한 듯 보인다. 한화 관계자는 “검찰의 초기 수사 과정까지만 해도 연락이 됐지만 사건이 커지자 외부와 연락을 단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오너 일가 비리 행위의 폭로. 이건희 회장의 사퇴. 당시 삼성그룹은 “김 변호사의 부인이 돈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협박성 편지를 보냈다”며 “그룹 고위 측과 수차례 만났다”고 밝혔다.


한화그룹과 삼성그룹은 내부 고발로 인해 한 차례 조직의 큰 혼란을 겪거나 경험했다. 내부 고발에 따른 피해를 톡톡히 치렀다는 평가다. 문제의 사실 여부를 떠나 내부고발자의 도덕성을 두고 논란이 제기됐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내부 고발은 어떻게 해석해야 해야 할까하는 점이다.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한 내부 고발이라면 과연 옳은 일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내부 고발의 역기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사회 곳곳에선 내부 고발을 빙자해 불순한 의도로 자기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김용환 공익 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대표는 “내부고발자의 도덕성에 문제가 제기된다면 고발 내용이 사실이라고 해도 설득력을 잃기 마련이다”고 말했다. 또 기업은 이 같은 점을 악용, 내부 고발 문제가 터졌다 하면 내부고발자의 도덕성을 공격해 사건을 무마하고 있다고 했다. 그 결과 순수한 의도의 내부 고발까지 불순한 의도로 비춰져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순수한 의도와 불순한 의도를 구분할 방법은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방법은 있다”고 말했다. 내부고발자 스스로 자신의 순수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부 고발에도) 파인플레이를 해야 한다.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화가 났다고 해서 터뜨리면 안 된다. 가장 정상적일 때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최대한 증거를 모으며 객관화 작업도 중요하다. 일단 신고가 되면 모든 문서들은 없어질 수 있다. (중략)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 고발에 앞서 조직 내부의 관련 부서나 책임자를 통해 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내부에서 치리되지 않고 신분 노출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른 국가권익위원회 등 공식 창구를 찾아야 한다.”

“공익 범위 민간부분까지 확대 필요”

순수한 의도로 제도적 보호를 받기 위한 내부 고발의 절차가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될 경우 절차를 거친 내부고발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또 조직의 CEO는 내부 고발이 제기되면 내부고발자 색출보다는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순수한 의도로 공익사회 건설에 힘쓴 이들이 불순한 의도의 내부고발자로 불리며 길거리로 내몰리는 안타까운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부 고발은 사회의 청렴성을 높이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정부도 이 같은 점에 주목, 내부고발자에 대한 법적 보호제도를 매년 보안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민간 부분의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가 미비하다는 게 문제다. 내부고발의 공익에 대한 범위를 민간 부분으로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다.

별은 혼자서 빛날 수 없다고 한다. 내부고발자의 양심과 제대로 된 정부의 법적 보호가 함께 됐을 때 내부 고발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래야 불순한 의도의 내부 고발에 대한 제제를 통해 역기능을 최소화 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제 다시 한 번 묻는다. 사회 조직에서 비리, 부패를 목격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를 바로잡을 것인가, 그냥 덮어 두고 갈 것인가. 당신이 조직의 CEO라고 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한 사람의 손을 들어 줄 것인가.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