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사진=롯데그룹]

30대 청년에게 롯데는 추억, 그 자체다.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롯데 껌은 우리를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단 것이 부족하던 시절의 롯데 껌은 어린이들의 워너비(wannabe) 상품이었다. 롯데 종합과자세트도 우리에게는 과자 이상의 선물이었다.

롯데라는 거대한 브랜드를 만든 신격호 총괄회장의 꿈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1년 후인 1946년에 시작됐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첫 ‘롯데’를 세웠다. 국내로 들어와 모국투자를 시작한 시기는 1967년. ‘롯데제과’가 시작이다.

신 총괄회장은 1922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의 5남 5녀 중 장남이었던 그는 굶주림에서 도망쳐 일본행 밀항선을 탔다. 그리고 그곳에서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빠져든다. ‘롯데’라는 이름은 베르테르가 사랑한 여인인 ‘샤롯데’에서 따온 것이다. 신 총괄회장은 샤롯데처럼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고자 했다. 또 목숨까지 바친 베르테르의 열정을 가진 기업을 바랐다.

롯데그룹이 한국과 일본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후에도 신 총괄회장의 이상형은 여전히 샤롯데다. 롯데에서 만든 프리미엄 상품 혹은 건물에는 샤롯데의 이름이 붙여졌다. 뮤지컬 전용극장인 샤롯데 씨어터, 롯데시네마의 프리미엄 영화관인 샤롯데관, 롯데호텔의 샤롯데룸, 롯데제과의 샤롯데 초콜릿이 그렇다. 롯데백화점 본점에는 샤롯데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롯데호텔은 작년부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전 객실이 비치했다. 신 총괄회장이 얼마나 ‘롯데’를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그는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 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롯데 상표에 대한 강한 만족스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열이 있으면 어떤 어려운 일도 즐겁게 이겨낼 수 있지만, 정열이 없으면 흥미도 일의 능률도 떨어진다. 경영자의 정열과 직원 모두의 정열이 하나로 엮어질 때 그 회사는 큰 발전이 있다.” 직원들에게 정열을 강조하던 신 총괄회장은 완벽함과 정열적인 도전으로 롯데 사업에 임해왔다.

롯데호텔이 서울에 준공되고 첫선을 보인 해, 신 총괄회장은 담당직원에게 복도의 천장을 부수라고 지시했다. 이제 막 새로 지은 건물임에도 복도와 객실이 완전히 분리돼 있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2001년 11월, 어느 새벽 시간에 롯데호텔 본점의 리뉴얼 공사 현장에 홀연히 나타나 직접 사다리를 타고 살펴본 신 총괄회장의 일화는 유명하다.

신 총괄회장은 “상권은 창조하는 것”이라며 허허벌판이었던 잠실에 롯데월드와 롯데호텔을 세웠다. 임원들은 당시 사업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였으나 그는 항상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보고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 이런 마인드가 롯데를 국내 10대 대기업으로, 해외 수출 10조원 이상의 기업으로 만들었다.

“24시간 사업만 생각한다”는 신 총괄회장은 이제 제2롯데월드를 통해 국내 최고층의 랜드마크 건설을 꿈꾸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이번 사업은 국내외의 소비자들을 모두 끌어모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사업이자 도전이다. 오늘도 그는 전 세계 소비자들의 샤롯데가 되겠다는 123층의 높은 꿈을 한층 한층 쌓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