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합병(M&A)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대로 가다간 인수 계약이 무효화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대건설 인수자금 조달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과 주식매매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변수가 많다. 정치권과 금융당국, 경쟁사였던 현대차그룹의 압박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 키워드는 현대그룹과 프랑스 나타시스은행의 대출계약서다. 정확히 말하면 나타시스 은행의 대출이 현지법인을 대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에 관심이 쏠려 있다.

만약 나타시스 은행의 대출금이 현지 법인을 대상으로 했다면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될 가능성이 크다. 허위 자료 제출, 중요사항을 누락할 경우 입찰 자격을 박탈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이 채권단 입찰 규정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또 불공정 행위에 따른 금융당국의 재제 조치도 받게 된다.

김용태 한나라당 의원은 정무위원회의에서 “현대그룹이 MOU 체결 후 차입금인 프랑스 현지 법인의 돈을 끌고 들어온다면 불법”이라고 말했다. 외국환 거래 규정 8-1조 3항에 따르면 현지 금융으로 조달한 자금은 국내에 유입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를 어길 경우 불법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도 “현대그룹의 자금 조달 계획의 안전성보다 건전성을 살펴봐야 한다”며 1조2000억 원에 대한 자금 원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시민단체의 반대 의견도 거세다. 경제개혁연대는 “현대건설 채권단은 현대그룹 인수 자금 출처 의혹을 밝히고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수 자금 논란은 향후 법적 문제뿐 아니라 현대건설과 현대그룹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이 나타시스 은행과 맺은 대출계열사 제출을 요구했지만 현대그룹은 대출확인서를 제출, 현대건설 인수전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현대차 “공개하라” VS 현대 “공개 못해”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에 논란이 제기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대그룹이 프랑스 나타시스 은행으로 부터 받은 대출금은 1조2000억 원.

현지 현대상선 법인의 자산이 33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쉽지 않은 금액이다. 정치권과 금융권, 정부는 이점에 주목하고 현대그룹을 압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쟁사였던 현대차가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주식담보, 현대그룹 계열사 주식담보, 계열사 보증 등을 통해 대출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증권에서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증권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1조2000억 원은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대그룹과 지분계약을 한 넥스젠 캐피털로부터 빌린 돈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밝혔다.

투기자본인 넥스젠과 옵션계약을 했다면 현대그룹에 매우 불리한 조건으로 맺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넥스젠은 2002년 코스닥 기업의 지분율을 갑자기 늘리는 등 공격적 투자를 해온 곳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했던 론스타처럼 이익만 바라보고 이면계약을 통해 경영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나티시스 은행 계열로 알려진 넥스젠은 현대그룹과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지분계약을 맺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전의 문제를 키우고 있는 결정적인 원인은 현대그룹의 태도다. 현대그룹은 나타시스은행과 맺은 대출계약서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인수전에서 승리를 거둔 이상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입찰 규정에 명시됐던 자료를 제출해 1차 검증을 받은 상황에서 2차 검증이 무슨 필요냐는 것이다.

또 문제를 제기하는 대상을 상대로 명예훼손 등 법적 소송을 진행할 것을 내부적으로 정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MOU가 체결 된 이후에도 현대차가 입찰 규정 관련 이의 제기를 함에 따라 무고죄 및 입찰 방해죄의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이 대해 “나타시스 은행과 맺은 대출계약서를 공개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채권단의 요구에도 제출하지 않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현대건설 채권단은 현대그룹에게 나타시스은행의 대출계약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현대건설 매각 주관기관인 외환은행은 지난 1일 “현대그룹이 채권단이 제시한 기간까지 대출계약서 등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MOU 해지를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를 어길 경우 법률 검토를 거쳐 주주협의회서 MOU 해지 처리 내용을 결정할 계획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계약서 제출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일 대출계약서 대신 대출확인서만 제출했다. 대출확인서는 대출계약서와 큰 차이를 갖고 있다. 대출계약서의 경우 계약 사항이 모두 포함되어 있지만 대출확인서는 돈을 빌려줬다는 내용만 담고 있으면 된다.

정책금융공사와 채권단의 애매한 일 처리 방식은 현대건설 인수전의 논란을 더욱 키웠다. 현대의 자금 출처를 제대로 따진 뒤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했다면 지금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쟁력 향상, 경제적 효과에 높은 점수를 주겠다고 했던 채권단이다. 무조건 돈을 많이 적어 낸 곳의 손을 들기 전에 철저한 검증이 선행됐어야 한다는 얘기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대출 자금 확인 절차를 거쳐 미흡하거나 부족하면 정도에 따라 상응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뒤는게 밝혔다. 금융당국도 채권단의 요청이 있을 경우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타시스은행의 대출계약서 공개 여부가 현대건설 인수의 분수령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해결 위한 금융당국 역할론 대두

모든 일은 숨기면 복잡해진다. 문제가 노출되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과장을 한다. 있는 사실 그대로 보여줘야 문제는 해결된다. 자신 스스로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며 꽁꽁 숨기다 보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마련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현대건설 인수에 미련을 두고 있느냐”는 질문의 답이었다. “나타시스은행의 대출계약서만 공개하면 된다. 의혹이 해소되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다. 공정한 경쟁에서 승패가 갈렸다면 문제를 제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