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롯데그룹 제공

1922년 경상남도 울산군(현재 울산광역시) 삼동면 둔기리에서 태어나 고교(울산농림고 졸)시절까지 이곳에서 자란 한 남자가 있다.

1941년 스무살이 된 그는 사촌형이 마련해준 여비를 들고 일본에 건너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우유배달을 시작했고, 학업을 위해 와세다 중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한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소년은 어느새 시게미쓰 다케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어색해지지 않을 만큼 일본 생활에 적응해 갔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얘기다. 1947년 일본, 신 총괄회장은 롯데그룹 신화의 상징 중 하나가 된 껌 생산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큰 돈을 벌게 되면서 그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인 1967년 한국 롯데의 모태인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모국에서 사업을 펼쳤다.

이때부터였다. 신 총괄회장의 시작은 일본이었지만, 한국 롯데에 더욱 많은 역량을 쏟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한국 롯데의 자산 규모는 일본 롯데에 비해 무려 10배 이상 커졌다.

 

40년 넘게 ‘마을잔치’ 여는 남자

▲ 신격호 총괄회장

이처럼 오늘의 롯데그룹은 출발도, 성장도 일본을 배제하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에게서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마음도 보인다.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신 총괄회장은 매년 5월이 되면 고향에서 마을 주민들을 초청해 잔치를 열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생가가 있던 울주면 삼남면 둔기리 부락은 지난 70년 울산공단의 용수공급을 위한 대암댐 건설과 함께 수몰돼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그리고 그곳에 살던 주민들은 인근의 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신 총괄회장은 마을 이름을 따 ‘둔기회’를 만들고 매년 이웃사촌을 초대해 마을 잔치를 열게 된 것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주민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준비하던 잔치 음식은 이제 정갈하게 차려진 뷔페 음식이 대신하지만 명절같은 잔치 분위기는 40여년간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몰 전 70여 세대에 불과했던 ‘둔기회’ 회원은 자손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어느새 1천여 세대가 됐다고 한다.

지난해 잔치 당일의 모습도 여전했다.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둔기 공원 일대 잔디밭에는 9시가 되자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남녀노소 수백 명이 모여들었다. 초로의 노인부터 아장거리며 걷는 아이에 이르기까지 오순도순 모여 앉아 근황을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햇살이 좋은 5월의 봄날, 이곳은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올해 예정됐던 44번째 마을잔치는 세월호 사고 애도 분위기에 동참하는 의미로 취소됐다.

 

재단설립 통해 어려운 이웃에 손길

신 총괄회장은 지난 2009년 12월 울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회복지법인인 ‘롯데삼동복지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고향인 울산지역의 발전과 복지사업에 기여하고 싶다는 신 총괄회장의 뜻에 따라 세워진 것으로 주요 사업으로는 소외계층, 시설·기관, 주민의 문화와 복지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기준 자산 규모는 581억원으로, 현재 재단 이사장은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씨가 맡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롯데삼동복지재단은 삼동초등학교에 도서 600권(1천만원 상당)을 기증했다. 학교 어린이들이 책 읽는 습관을 길러 훌륭한 미래의 인재가 되어달라는 이 학교 졸업생인 신격호(5회 졸업) 회장의 후배사랑 선물이다.

올해에는 롯데삼동복지재단과 울산광역시 울주군이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해 ‘울주군 롯데장학생 지원사업 협약’을 체결했다. 롯데장학재단의 한 관계자는 “재단 설립자인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 뜻에 따라 매년 고향마을 저소득 가구 대학생 가운데 학업 성적이 우수한 대학생 60명(1·2학기 각 30명)에게 등록금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