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의 우리나라 산업재해현황 분석에 따르면, 작년 한해 동안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근로자는 1929명에 이른다.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이며 작년뿐만 아니라, 1997년 OECD가입 이후 꼴찌를 면하지 못하는 불명예스런 기록으로 도무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산업현장의 재해는 생산성 위주의 작업관리가 안전관리의 소홀로 이어진 결과다.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안전불감증에 그 근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취약한 안전문화와 불감증을 탓하고 있기에는 산업현장에서의 재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단기간 내에 줄일 수 없는 것일까? 현장의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제거한 A사의 사례는 현장 안전관리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화공플랜트 설비 및 강교를 제작하는 중공업 업체 A사는 매년 13~15회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가진 사업장이었다. 업체 특성상 수십, 수백톤에 달하는 중량물들을 수시로 이동시키며 이루어지는 고소작업, 용접작업 등 고위험 작업이 많고, 외주를 통해 이루어지는 작업은 작업자들의 변동이 많아 안전교육 등 작업안전관리에도 많은 제약이 있었다. 현장의 안전활동을 진단해본 결과, 외부기관의 안전인증은 물론, 안전교육, 안전작업규정과 절차서, 공정위험성 평가, 안전개선활동 등 겉으로 드러난 안전관리체계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오히려 반복되는 중대재해로 외부기관의 안전감사가 빈번하다 보니 서류와 시스템으로 갖춰지는 안전관리는 과도하리만큼 체계적으로 유지·관리되고 있었다. 문제는 실행력이었다. 안전은 매뉴얼과 시스템으로 관리될 수 있지만, 매뉴얼과 시스템 자체가 안전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4단계로 구성된 대대적인 실행력강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첫 번째 단계는 몰라서 다치는 경우를 제거하는 것이다. 흔히 현장의 안전사고는 경험이 적고 미숙한 작업자들에게서 발생한다. 안전전문가들에 의하면 산업현장의 안전사고는 불안전한 행동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 90%고, 불안전한 상태에 의해 발생하는 것은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불안전한 행동의 주체는 작업자 자신이다. 작업자 누구도 위험한 행동을 스스로 자초하지는 않는다. 위험한 행동의 대부분은 그 행동이 위험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취해진다. 그래서 작업자들이 위험한 작업을 알게 하기 위해 A사는 우선 기 완료되어 있었던 공정위험성 평가를 대대적으로 재실시했다. 과거 안전관리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공정위험성 평가를 이번에는 작업자들이 직접 참여해 안전관리자들의 지원을 받으며 실시하도록 했다. 또한, 작업자 전체에 공통으로 실시되던 안전교육을 직종별, 작업별로 재편성했다. 해당되는 작업에서의 위험요인을 인지하는 데 집중하고, 작업별 안전점검표를 만들어 자신이 하는 작업에서의 위험요인을 도출하는 전사적 이벤트를 실시했다. 이를 ‘위험예지훈련’에 직접 활용했고 매 작업 시 마다 위험요인을 반복, 숙지할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 단계는 알면서 지키지 않는 경우를 제거하는 것이다. 안전한 작업을 위한 규정과 절차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지킬 수 없는 기준이 남발되면서 이를 지키지 않는 작업자의 의식을 문제로 여기는 안전관리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중량물을 들어올리고 이동시키는 작업은 고위험 작업으로 밀폐작업, 화기작업, 고소작업 등과 함께 산업현장에서 집중관리하는 항목이다. A사에서도 ‘안전작업허가제’를 적용하여 중량물 작업은 반드시 안전관리자의 책임하에 현장에서 작업안전을 체크한 뒤 작업을 허가해 주도록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 내 워낙 많은 중량물을 다루다 보니 하루 최대 80여건의 안전작업허가서를 발행해야 했다. 80여건의 작업을 일일이 현장확인을 통해 안전여부를 확인하는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연히 서류상에서 작업리스트를 확인하고 결재하는 형식상의 허가제 운영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를 150톤 이상의 중량물에만 적용해 일일 최대 10건을 넘지 않도록 하자는 개선방안을 제시하자, A사 안전관리자들은 1톤의 중량물이 떨어져도 사람이 다치는 일이라며 결사반대했다. 하지만 형식적인 80건보다 10건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안전담당임원의 의지로 추진했다. 이후 성과는 놀라웠다. 150톤 이상의 중량물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도록 훈련된 작업자들은 10톤, 2톤짜리 중량물 또한 위험요인을 확인해가며 다루게 됐던 것이다. 안전작업허가제의 개선과 함께 작업자 상호간에 불안전행동을 상호 관찰하고 고쳐주는 안전두레, 안전패트롤의 합리적 재설계 등을 지킬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정해진 기준이 지켜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세 번째 단계는 작업의 위험요인을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개선활동을 하는 것이다. 작업의 위험요인을 인지시키고 안전한 작업을 위한 원칙을 지키도록 한다는 것은, 현장의 위험요인을 그대로 두고 조심하고 회피하는 것과 같다. 중대재해가 빈번한 사업장이었던 만큼 적지 않은 투자와 함께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개선활동은 연중 계속되고 있었지만, 작업자들이 참여하는 작지만 피부에 닿는 개선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협력업체 직원은 개선활동을 강제로 시킬 수 없고, 작업자 스스로 관심도 없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하지만 안전은 협력업체와 모기업을 따지지 않고 강제성을 띄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안전교육시간을 활용해 그동안 발생한 안전사고 사례와 함께 스스로 다치지 않기 위한 개선의 필요성과 유사동종 업계의 현장개선사례들을 전달하면서 작업자들의 참여가 시작됐다. 여기저기서 안전발판을 만들고, 안전표식을 만들고, 안전보조구의 제작, 비산방지, 작업받침대 등 사소하지만 작업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소중한 개선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지막 단계는 안전개선활동을 확산하고 이를 지속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A사는 각 협력업체별로 안전관리체계를 구조화하고, 교육을 통해 협력업체의 경영자를 포함한 현장소장 및 관리자들의 안전관리 역량을 강화시켰다. 더불어 A사에서는 정기적인 사내 안전감사체계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불과 10개월간의 프로젝트를 통해 A사는 매년 13건 이상 발생하던 중대재해를 “Zero”화 시키고, 이를 3년 넘도록 유지할 수 있었다. 산업현장의 안전을 위해 아직도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안전인프라가 더 잘 갖춰질 필요가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사고와 재해는 투자만으로 막아지지 않는다. 사고는 실천을 통해 예방된다. A사의 사례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도입되어 있는 활동들을 서로 일관성 있게 재구성하고, 실천하고 실행될 수 있도록 작업자 중심으로 눈높이만 바꿔도 당장 재해율을 낮추고 중대재해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프로젝트 종료 후 고생한 팀원들에게 필자가 한 이야기가 있다. “여러분이 정말 보람을 느껴도 좋은 일은 재해율을 낮췄다는 숫자로서의 성과가 아니다. 여러분은 지난 1년 동안 13명의 가장을 안전하게 지켜줬고, 13가족의 눈물을 막아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