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조폐공사라고 하면 ‘돈’만 찍어내는 ‘돈 공장’이라고 간단히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생산하는 제품은 은행권(지폐), 주화(동전)를 비롯해 우표, 전자여권, 상품권, 수표, 주민등록증, 훈장, 기념메달 등 총 650종이 넘습니다. 최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기리는 기념주화도 만들었습니다. 참, 순금순도 99.99% 골드바도 조폐공사에서 만듭니다. 신기하죠?”

한국조폐공사 내에서 실제로 돈을 만드는 곳은 바로 ‘화폐본부’다.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돈을 만들어내니 누구나 부러워할 만하다. 지난 9월 3일, 경상북도 경산시 화폐본부에서 추석을 앞두고 신권발행에 여념이 없는 박성현 본부장(56)을 만나 돈 제조 책임자의 애환을 들어봤다.

박 본부장은 1986년 5월에 입사해 만 28년째 근무하고 있는 조폐공사 베테랑이다. 주로 대전에 위치한 본부와 경산 화폐본부를 오가며 인력관리팀, 보안제품사업부, 공공사업처, 경영평가실 등 여러 부서를 두루 거쳐 지난 6월 1일 화폐본부장에 발탁됐다. 박 본부장은 “돈이 품고 있는, 보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주목해 달라”며 돈에 얽힌 얘기를 풀어나갔다.

“지폐는 예술과 기술의 집합체”

박 본부장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투명 필름지에 담긴 지폐들을 만지작거렸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을 보는 돈이지만,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조를 방지하는 20여 가지의 첨단기술이 이 작고 얇은 종이에 심어져 있거든요. 사람들은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지폐에는 해, 달, 나무를 비롯해 선인들의 예술작품이 치밀하게 어우러져 있어 미(美)적으로도 매우 아름답죠.”

사람들은 대체로 숫자에만 신경을 쓰지만 사실 지폐는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첨단 기술과 예술을 가득 품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박 본부장은 1000원, 5000원, 1만원, 5만원 이렇게 총 4종류의 지폐 중 5만원권을 가장 사랑한단다. 그런데 단순히 고액권이어서 좋아하고 아낀다는 뜻은 아니라고. “5만원권은  디자인이 아름답고 또한 지폐 중 가장 많은 노력이 투입된 제품이기도 하지요.”

5만원권 앞면에 새겨진 신사임당의 얼굴은 화폐 발행을 위해 새로 제작한 영정이다. 표준 영정은 강릉시 오죽헌에 있지만 신사임당 생존 당시인 16세기의 두발과 복식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라 영정을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영정 옆엔 신사임당의 작품 ‘묵포도도’와 ‘초충도수병의 가지그림’이 그려졌다. 뒷면은 조선 중기의 대표 문인화 ‘월매도’와 ‘풍죽도’로 구성됐다.

“위조 방지를 위한 보안 기술은 그보다 더 예술입니다.” 5만원권의 경우, 앞면 왼쪽에 세로로 새겨진 ‘띠형 홀로그램’, 빛에 비춰 보면 숨겨져 있는 신사임당 초상이 보이는 ‘숨은그림’, 빛 방향에 따라 숫자의 색이 변하는 ‘색변환잉크’, ‘형광잉크&은사’ 등 20여개의 위조방지 장치가 적용됐다.

하지만 박 본부장에게 5만원권이 마냥 좋기만한 존재는 아니다. “2007년 1월 고액권인 5만원권을 발행한 후 전체 지폐 발행량이 절반 수준으로 확 떨어졌습니다. 조폐공사 입장에서는 전체 사업량이 줄어드는 요인인 5만원이 밉기도 하죠.” 게다가 다른 지폐보다 불량률이 높단다. 그는 “위조 방지를 위한 보안요소가 많이 투입되고, 가로 크기도 조금 크다보니 불량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2년 말 기준 불량률은 1000원권 3%, 5000원권 5% 수준인 반면 5만원권은 8%에 육박한다. 또한, 지폐 제작 시간도 1000원권에 비해 2배 정도 더 소요된다. 5만원권 발행으로 인해 화폐 사업량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조폐공사의 사업 축소 및 신사업 개발 등 조직 내 변화도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됐을 정도다.

“변화와 혁신, 조폐공사의 과제”

그는 화폐본부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본부를 대표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늘 어깨가 무겁다는 얘기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가 본부장이 된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으로는 업무를 수행할 때 거시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지금까지는 본부나 상사의 지시를 검토·수행하거나 상황보고를 위한 자료를 만드는 일을 했다면 이제는 결정자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직접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본부장은 “예전엔 조폐공사에서 돈을 발행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경제가 멈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물화폐의 영향력이 막강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면서 “과거에는 내수경제의 활성화 정도를 알아보는 척도가 화폐유통량일 정도로 경제와 화폐 발행량이 밀접한 관계를 띠고 있었지만 이제는 카드, 모바일 등 결제수단이 다변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조폐공사에서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사업이 ‘TSM(Trusted Service Manager)’이다. 조폐공사에 따르면 TSM은 모바일 결제 시 통신사와 금융회사를 연결해주는 사업이라고 한다. 실제로 공사 내에서 TSM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박 본부장은 “모바일 결제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보안문제 때문”이라며 “조폐공사는 위·변조 방지 등 보안기술을 갖췄기 때문에 통신사와 금융사 양쪽 모두가 신뢰하는 중심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불량률 제로, 무결점 화폐 발행 목표”

박 본부장은 “지난주 추석 ‘대목’을 준비하느라 많이 바빴습니다”라며 “한국은행에서 이번 추석 때 추석자금으로 15조원을 풀었고 또 명절 때 수요가 늘어나는 상품권의 90%를 우리가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민족 명절인 설, 추석과 국민 소비가 늘어나는 여름 휴가철은 1년 중 조폐공사가 가장 바쁜 ‘성수기’다.  이 기간에는 화폐 공급량을 맞추기 위해 주말도 반납하고 일을 해야 한다.

그래도 그는 ‘자부심’ 때문에 일이 즐겁다. 세계 220여개 국가 중 돈을 만드는 기관을 가진 나라가 40~50여개국, 그 중에서 한국처럼 제지공장, 지폐·주화공장 및 부속품 등 전체 공정을 가진 곳은 한국, 미국 등 5개국 정도다.

본부장으로서 그의 목표는 ‘무결점의 완벽한 품질 구현’이다. 화폐본부의 연간 생산량은 지폐기준 6억~6억5000만장에 육박한다.

그는 “본부장으로 있는 동안 결함이 없는 제품, 100% 완벽한 품질의 제품만을 생산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불량률을 줄인다는 것은 원가를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조폐공사의 기본업무지만, 100% 완벽을 추구해야 하는 일이기에 화폐본부장이라는 자리의 막중함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