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白晝)에 승객 476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을 포함해 29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됐다. 어느덧 참사가 발생한 지 4개월이 훌쩍 지났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정부의 역할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만약 이 같은 사건이 기업에서 발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 기업은 이미 사업을 접었거나 파산했을 것이다.

국내 위기관리 전문가 정용민 스트래지샐러드 대표는 “정부나 공공기관, 기업에서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무엇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키맨(Key Man)의 의지가 중요한데 세월호 참사 문제를 보면 대통령의 의중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기업은 위기상황에서 안하무인 격으로 대응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위기감이 있지만 정부는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다.

▲ 국내 위기관리 최고 전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가 위기관리 원리와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 = 노연주 기자

정용민 대표는 세월호 참사 문제 해결에 대해서 “대통령이 얼마 전 방한한 교황 정도의 의중과 자세만 보여줬어도 진작에 풀렸을 것”이라면서 “정보를 제대로 보고 받지 않거나 일부러 듣지 않고, 아니면 자기 고집대로 가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얼어 붙어 위기를 계속 방치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 대표는 과거 정부에서 제작한 위기관리 매뉴얼의 초안 작성에 참여한 바 있다.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위기관리 최고 전문가인 정 대표는 정부, 공공기관에도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지난 참여정부에서 문제의식을 받아들여 재난대응 매뉴얼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부의 재난대응 매뉴얼은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파기되거나 업데이트 등 관리가 되지 않아 유명무실화됐다. 정 대표는 지금도 4년째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과장 이상 진급자를 대상으로 언론대응 및 위기관리에 대해 강의해 오고 있다.

우리가 쉽게 홍보라고 알고 있는 PR의 정식 명칭은 ‘Public Relations’, 즉 기업이나 단체, 정부 기관 등에서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사업의 취지를 알리기 위한 일련의 활동을 일컫는다. 하지만 국내 PR은 보다 쉬운 대중 소통 수단으로 언론활동, 언론PR에만 국한된 측면이 있다. 특히 조직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대응 부분은 PR 파트에서 담당하지만 이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 등 선진국의 기업이나 기관, 단체 그리고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은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관리하고 대응하는 조직에 일을 맡기지만, 한국은 거의 모든 일을 변호사나 경험있는 측근에게 맡기기 일쑤다. 이런 국내의 상황 속에서 위기관리 전문 기업을 처음 세우고 이 분야를 개척하며 전문성과 노하우를 만들어온 사람이 바로 정용민 대표다.

대학에서 어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정 대표는 지도교수로부터 조직 위기관리 분야에 대한 전망을 듣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미국에서 기업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정 대표는 홍보대행사에서 외국 위기관리 서적을 국내 상황에 맞게 번역,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기업 내부에서의 경험이 필요하겠다고 판단해 4년간 유명 주류업체의 홍보팀장으로도 일했다. 이후에는 홍보대행사 부사장을 거쳐 2009년 지금의 ‘스트래티지샐러드’를 설립해 이슈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전문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정 대표는 지난 10여년간 80개 이상의 국내외 기업을 상대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진행했고 현재 1년 내내 코칭과 자문을 주는 주요기업이 15곳에 달한다. 현재는 이코노믹리뷰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위기관리 사례에 대한 분석과 의견을 제공하기도 한다.

▲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스트래티지샐러드’는 흔한 PR 대행사가 아니다. 정 대표는 “우리는 크라이시스(Crisis) 관리 기업”이라며 “다른 PR 대행사가 ‘위기관리도’ 진행한다면 우리는 ‘위기관리만’ 진행하는 전문 코칭기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평양냉면 집은 냉면만 팔고, 김밥00은 냉면도 파는데 맛과 질의 차이가 있지 않냐”고 비유했다.

제공하는 서비스로는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과 기업별 매뉴얼 작성, 내부 역할 분담 등을 교육하고 경영진을 대상으로 언론 트레이닝도 병행한다. 그리고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사안별 별도의 자문이 들어가고 사후에도 관련 이슈 모니터링을 통해 추가 관리가 계속된다.

업계에서는 여러 성공사례가 회자되지만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는 거의 없다. 당초 관련 정보를 철저히 공개하지 않는다는 고객과의 약속 때문이다. 하지만 한진해운 사례만큼은 몇 차례 보도됐다.  

정 대표는 “한진해운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척의 배를 운항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전임 최은영 회장이 계실 때 위기상황 진단과 매뉴얼 작성 의뢰가 들어와 자문을 해준 적이 있다”면서 “당시만 해도 일부 임원은 대형 컨테이너 선은 빠른 운항과 컨테이너 높이 때문에 해적의 타깃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20~30년 만에 한 번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대처해야 하냐는 반감이 존재했다”고 소개했다. 이어서 “하지만 작성된 매뉴얼로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에 납치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훈련된 대로 국방부, 외교부 등 관계부처와의 협업을 잘 진행했고 일사분란하게 대응해 위기를 해결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전문가의 눈으로 봤을 때 위기관리를 가장 잘하지 못하는 조직은 어디일까? 답변은 ‘국방부’였다. 정 대표는 “국방부는 긍정적인 홍보나 이미지 메이킹을 매우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위기상황 대처는 완전히 수준 이하”라며 “최근 일련의 사건을 보면 위기감지, 정보취합, 의사결정, 실행 등 모든 프로세스가 엉망”이라고 지적했다. “밖에서 보면 군은 거짓말만 하고 무언가 음모가 있는 조직으로 보인다”며 “자신들의 상황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스트래티지샐러드’는 따로 고객을 가리지 않는다. 불법단체와 범죄조직만 아니라면 누구나 다 위기 상황에서 할 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을 넘어 정부, 기관, 협회나 단체 등 모든 조직의 컨설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만 조직의 대표가 위기관리에 대한 의중이 얼마나 있는지와 실무 책임자가 조언을 따라할 의지가 없거나 너무 기술적 접근만 요구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런 조직과의 업무는 피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앞으로 위기관리 시장은 좀 더 구체화, 전문화되면서 계속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주요 기업은 세습 문제, 경영권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정부를 포함해 조직간 갈등도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에 기업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주주 같은 ‘이해 당사자’였지만, 앞으로는 고객, 언론, 규제기관 정부와 NGO, 노조, 지역주민, 커뮤니티 등 ‘관계 대상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향후 관련 분야의 경험을 갖추고 실제로 업무를 책임 있게 진행해 본 시니어급을 대거 영입할 계획이다. ‘스트래티지 샐러드’는 최근 신동규 전 두산그룹 상무와 박선향 전 행정자치부 정책홍보 담당자를 영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장기적으로 그룹사 임원, 정부기관 공무원 등 이해관계 업무 직접 경험자를 영입해 대형 로펌처럼 특성화된 전문가들의 조합형식으로 종합적인 협업을 진행하는 시스템을 변화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