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프리미엄 과자의 기세가 주춤하다. 고급화 ·고품질 제품의 일환으로 롯데제과와 오리온, 해태제과 등 제과업체 ‘빅 3’를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선보였지만 출시 2년여 만에 상승세가 시들하다. 프리미엄 과자는 일반 과자에 비해 20~30% 정도 가격이 비싸지만 고급 원료를 사용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 지난해 국내 과자시장을 뒤흔들었다.

지난 7월1일 ‘오픈 프라이스(판매업체 자율 가격표시) 제도’ 시행으로 가격 부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데다 품질 좋은 먹을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급증하는 등 주변 여건이 더 나아졌음에도 올해는 상황이 좀 다르다. 프리미엄 과자의 성장은 그저 ‘반짝’ 인기에 그치는 것일까.

프리미엄 과자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상승세가 시들하다. 이제는 특정계층 공략, 기능성 중심으로 가야 성공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성장세 주춤 고민

국내 과자시장은 껌, 캔디, 초콜릿, 비스킷, 파이, 스낵 등 건과류와 바, 콘, 컵 등 빙과 분야로 구분된다. 건과 분야는 약 2조 원, 빙과 분야는 1조 원 정도의 시장 규모로 파악되며 전체 과자시장은 매년 5%씩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 성장이 어느 정도 정체된 상황을 맞아 국내 제과회사들은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 시점에 다다랐다. 특히 2008년 9월 멜라민 파동 이후, 과자에 대한 소비가 급격히 감소한 영향이 컸다. 이를 돌파하기 위한 특단의 전략을 모색해야만 했다. 그 고민의 산물이 프리미엄 웰빙 과자다.

먹을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과 관심이 급증한 분위기에서 프리미엄 과자는 원료 차별화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나왔다. 이전까지 당연시 여겨졌던 식품 첨가물과 같은 인공 원료를 배제하고 유기농·친환경 천연 성분, 우리 농산물 등 품질 좋은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건강과 안전성에 초점을 맞췄다. 또 함유되는 원료 수도 줄였다.

프리미엄 과자의 붐을 일으킨 주인공은 오리온이다. 2008년 2월, ‘과자로 영양을 설계하다’라는 콘셉트로 맛과 영양이 뛰어난 ‘닥터유’를 선보였다. 서울대 가정의학과 유태우 박사와 공동 연구를 통해 한국인에 맞는 영양을 설계, 개발했다.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가공식품도 건강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 제품은 출시 1년 만에 총 매출 500억 원을 올렸으며 2년간 1000억 원을 돌파, 단숨에 오리온의 주력 브랜드이자 파워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오리온이 히트를 치자, 경쟁 업체들도 새로운 프리미엄 과자를 속속 내놓았다.

롯데제과는 밀가루가 아닌 국내산 쌀을 사용하고 합성착향료와 알레르기 유발 등 유해 성분을 첨가하지 않은 ‘마더스 핑거’를 내놓았다. 엄마의 손길과 정성을 담아 믿고 먹을 수 있는 간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해태제과도 웰빙 식재료에 중점을 둔 ‘슈퍼푸드 클럽’을 출시했다. 미국의 영양학 박사가 장수 국가들의 식단을 연구해 찾아낸 14가지 공통 식품을 넣었다.

이에 따라 프리미엄 과자는 ‘안심하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과자’의 이미지로 부각됐으며 일반 과자에 비해 높은 수익을 창출할 뿐 아니라 가격 인상에 대한 거부감도 덜해 제과업계의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지난해에는 저출산·고령화, 자녀 중심의 소비 확대,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소비자 욕구 증가 등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업계가 프리미엄 과자 판매에 더욱 집중했다. 그 결과, 2008년 말부터 닥친 미국발 금융 위기로 국내 경기가 위축됐음에도 제과업계의 지난해 성적은 높았다.

업계에 따르면 오리온, 롯데제과, 크라운제과, 해태제과 등 국내 과자시장 ‘빅 4’ 회사가 거둔 2009년 건과 매출은 약 2조11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조9800억 원과 비교해 약 6%(약 1300억원) 증가한 실적으로 프리미엄 과자의 활약에 힘입어 성장세를 이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잠시 ‘쨍 하고 해 뜬 날’이었던 것일까. 현재 프리미엄 과자의 기상도는 ‘흐림’이다. 프리미엄 과자의 원조로 통하는 오리온의 행보는 가벼운 편이다. 닥터유와 뒤이어 출시한 ‘마켓오’를 포함한 두 프리미엄 과자 브랜드의 2009년 매출액은 약 1000억 원. 올해도 월 90억~100억 원 정도를 올리며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다소 높은 수준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향후 ‘新 특화 제품 시장’ 성장 전망

반면 롯데제과의 마더스핑거는 선전은 하고 있으나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 해태제과의 슈퍼푸드클럽도 시중의 판매대에서 잘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기존 자사 제품들과의 뚜렷한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 아니냐”고 평가했다.

업계는 우선 프리미엄 과자 시장이 이미 성숙기에 진입하고 있는 점을 한 요인으로 꼽았다. 이제 일반 과자도 프리미엄 과자와 같이 좋은 재료 사용, 성분 최소화 등은 기본이 되면서 ‘프리미엄’이 너무 흔해져 매력이 더 이상 소비자에게 어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산 쌀을 사용한 롯데제과의 프리미엄 과자 ‘마더스 핑거’.


롯데제과 홍보실 안성근 과장은 “프리미엄 마케팅은 소비자들에게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프리미엄 과자가 가격만 비싸지, 일반과자와 다를 게 뭐 있냐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회사마다 너도나도 프리미엄을 외치고 있어 식상한 전략이 돼 버렸다는 설명. 프리미엄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특화 제품’이라고 칭하는 것이 더 알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서 과자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소비자 니즈에 맞게 특정 계층을 공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젊은 여성층이 과자시장의 뜨거운 타깃으로 급부상한 점을 예로 들었다.

안 과장은 “일본의 트렌드처럼 한국의 젊은 여성들도 내 몸에 맞게 적당량을 먹는 식문화를 추구한다”며 “과자시장의 주 고객이 기존의 아이들에서 여대생과 직장여성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제과는 최근 2030세대 커리어우먼의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맞춤 비스킷 ‘비밀’을 출시해 이 같은 흐름에 부응하고 있다.

해태제과도 한층 업그레이드된 신제품을 준비 중이다. 이 회사 홍보팀 강종호 파트장은 “다이어트를 위한 저칼로리 등 프리미엄 과자는 뚜렷한 콘셉트로 철저한 기능성 중심으로 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리온도 닥터유 키즈 제품 3종을 포함해 청소년기 필요 영양을 강화한 ‘튀기지 않은 도넛’, 20대 여성층을 타깃으로 한 바 제품 등 다양한 프리미엄 제품군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프리미엄에서 더 나아간 새로운 형태, 차별화된 ‘새로운 특화 제품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업계도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으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희진 기자 hsmil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