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하고 있는 이른바 ‘초이노믹스’가 경기부양 효과를 거두고 있다. 경제 심리가 살아나면서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고 있고, 그 덕분에 여당은 민심의 가늠자인 ‘7.30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문제는 그것이 반짝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임금 및 투자 증대를 통해 자금을 가계로 흘려보내는 등 경제 선순환의 마중물이 돼야 하는 주요 대기업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까닭이다.

한국경제의 쌍두마차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실적이 꺾이고 있고 한때 글로벌 조선 1위 업체였던 현대중공업은 사상 최악의 ‘어닝쇼크(기대치보다 실적이 나쁘게 나오는 것)’를 맞았다. 또한, 10대 그룹 총수 중 절반이 병원이나 감옥 신세를 지고 있어 ‘초이노믹스’에 적극적으로 화답할 이들도 몇 명 없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정부가 기대왔던 ‘비빌 언덕’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재계의 맏형 삼성부터 전전긍긍

“시장을 호령하던 선두 기업들이 왜 어느 날 갑자기 시장에서 낙오되고 잊혀지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지난 20일 삼성그룹 사장단 수요회의에 초청된 김한얼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는 이날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들을 대상으로 ‘가치혁신과 지속성장 전략’이라는 강연을 진행했다. 1등이었던 기업이 왜 몰락하게 되는가에 대한 내용이 강연의 골자다.

이날의 강연은 삼성그룹이 느끼고 있는 현재의 위기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올해 상반기 실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우선 그룹의 큰형님으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부진했고, 그 여파가 수직계열화를 이루고 있는 여타 전자계열사들에까지 미친 형국이다. 삼성물산이나 삼성중공업 비전자계열사들이 나름 분전했지만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이 발표된 지난달 30일 증권가는 충격에 빠졌다. 2분기 영업이익이 7조1900억원에 불과했기 때문. 이는 지난해 같은 분기(9조5300억원)보다는 24.6%, 전 분기(8조4900억원)보다는 15.2% 하락한 수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사전 집계한 애널리스트 평균 전망치의 하한선인 7조5600억원에도 크게 못 미치는, 그야말로 ‘어닝쇼크’를 기록한 것이다. 이 같은 실적 저하에는 원화강세에 따른 환차손(환율변동에 따른 손해)과 함께 그룹 전체의 먹거리로 꼽히는 스마트폰 사업의 수익성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2분기 삼성전자 모바일(IM) 부문의 영업이익은 4조4200억원으로 비수기라는 1분기보다 31%나 줄어들었다.

스마트폰 사업이 부진하자 부품공급사인 삼성SDI와 삼성전기 등 전자계열사들의 실적도 동반 하락했다. 스마트폰 배터리를 공급하는 삼성SDI는 2분기에 고작 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카메라모듈을 공급하는 삼성전기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0% 감소한 21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문제는 향후 전망도 결코 밝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의 스마트폰 부문에서는 샤오미를 앞세운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고, 웨어러블 기기 부문은 애플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IT기업들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신제품이 출시되는 3분기에는 조금 나아지지 않겠냐”고 애써 자위한 삼성전자조차 “글로벌 시장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하반기에도 실적개선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전망할 정도다. 삼성전자의 회복 없이는 여타 전자계열사들의 회복도 어불성설이다.

급기야 삼성전자는 ‘전가의 보도’인 비상경영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출장비와 불필요한 야근, 잔업을 줄였고 연월차 소진을 강조, 불필요한 경비를 최대한 없앴다. 아직까지는 가시화되지 않았지만 조직 재편과 인력 재배치 등 구조조정 얘기까지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아쉬운 점은 이를 진두지휘할 총수의 부재다. ‘삼성의 모든 것’이라고 불릴 만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병환으로 자리를 비운 지 100일이 넘은 상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 미래전략실이 총동원된 상태지만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최 부총리의 경제 살리기 의지에 재계의 맏형인 삼성그룹이 쌍수 들고 동참하기 어려운 이유다.

'秋鬪 시작되나' 노사문제까지 발목 잡아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다. 주력사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환율하락의 벽을 넘지 못하고 2분기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2분기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줄어들며 외형과 실리를 둘 다 잃은 것. 현대자동차는 올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1.9%, 13.3% 감소한 22조7500억원의 매출과 2조9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기아자동차의 실적은 더 나빴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8.1% 감소한 12조500억원을, 영업이익은 31.7%나 줄어든 7700억원을 기록했다. 앞서 증권가에서도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2분기 실적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긴 했지만 그보다도 훨씬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실적 부진은 환율 탓이 크다. 상반기 경영실적을 발표하며 올해 하반기 부정적인 전망을 내비친 것도 이를 방증한다. 실제로 올해 6월 말 기준 달러-원 환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0원 가까이 폭락했다. 달러-원 환율이 10원 하락할 경우, 국내 자동차 업계의 매출이 4200억원 감소한다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의 보고서를 감안할 때 환율 하락이 현대차그룹의 실적악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대차그룹도 하반기에 실적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환율 문제가 여전히 상존한 데다 미국,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또한,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 유럽 시장의 더딘 회복, 중국 시장 성장 둔화 등이 겹쳐 발생하고 있는 점도 현대차그룹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큰 부담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노사관계다. 6월 3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올해 임금협상에 들어간 현대자동차 노사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는 노조 요구안을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해마다 임단협(임금·단체협약)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최근 노조가 실시한 파업 찬반투표에서 찬성률이 70%에 달하면서 파업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현대자동차는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1994년과 2009~2011년 등 총 4년을 제외하곤 매년 파업을 단행한 바 있다.

실적 악화와 노사문제에 시달리는 또 하나의 그룹이 있다. 바로 현대중공업 그룹이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2분기에 무려 1조1000억원이 넘는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2.1%나 줄었으며 당기순이익도 적자전환했다. 1조원대에 달하는 분기 손실은 재계 전체를 놓고 봐도 찾아보기 어렵다. 말 그대로 ‘어닝쇼크’를 기록한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실적 악화의 원인으로 해양플랜트 부문에서의 예기치 못한 부진을 꼽았다. 불황기에 저가수주했던 프로젝트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이상 하반기에도 가파른 실적 상승은 요원해 보인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비상경영체제에 전격 돌입한 상태다. 수익성 위주의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적자공사 수주를 금지하는 등 대안들을 마련했다. 그러나 쉬이 타결되지 않는 임단협이 발목을 잡고 있다. 1995년부터 19년째 무파업을 기록 중인 현대중공업이지만 실적이 바닥을 친 올해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경제 살리기는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워진 셈이다.

 
 
▲ [자료=각 그룹]

손들고 화답할 총수가 없다

총수가 구속 상태에 있어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 살리기 몸짓에 화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과감한 의사 결정이 필수불가결한 글로벌 경쟁 상황 속에서 총수의 부재는 해당 그룹에 장기적인 경영전략과 투자집행 부재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재계 3위인 SK그룹이 대표적인 예다. 사실 올해 상반기 SK그룹의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상반기 시가총액도 10대 그룹 중 가장 많이 늘어났다. 문제는 그것이 SK하이닉스의 대대적인 실적 상승에 기인한 ‘착시효과’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1조8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1분기(1조600억원)에 이어진 호실적으로 반기 영업이익 2조원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같은 기간 매출도 지난해 상반기보다 14.2% 늘어난 7조6700억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호실적은 주력 제품인 반도체 D램과 낸드플래시 판매 증가에 따른 것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의 2분기 평균가격이 지난 분기보다 각각 5%, 19%씩 하락했지만 SK하이닉스의 출하량은 오히려 19%, 54% 늘었다.

그러나 SK하이닉스를 제외한 주요 계열사들은 대부분 뒷걸음질쳤다. SK이노베이션은 2분기에 16조4900억원의 매출과 50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석유사업에서 정제마진 악화와 환율 급락에 따른 재고평가 손실을 본 것과 화학사업에서 파라자일렌 마진 축소의 직격탄을 맞은 영향이 컸다. 같은 기간 SK텔레콤도 55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제자리걸음 했다.

실적 악화보다 더욱 큰 문제는 총수의 공백으로 인해 전망마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사업에서 마진 회복이 힘들 전망이고 SK텔레콤도 성숙 단계에 접어든 통신시장의 특성을 감안할 때, 실적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룹의 성장 정체를 극복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사업구조 개편이 필요한데 이를 이끌 총수의 부재가 뼈아프다. 실제로 최태원 회장의 구속 이후 SK그룹은 이렇다 할 투자나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지 못해 왔다. SK E&S와 SK텔레콤이 각각 추진하던 STX에너지, ADT캡스 M&A는 모두 중간에 포기됐고 SK이노베이션의 호주 석유사업 거점 확보를 위한 현지 유류공급업체 UP 인수건도 불발에 그쳤다. ‘내실 경영’이라는 이름 아래 안정적인 경영을 펼치겠다고 나선 SK그룹이 경제 살리기 움직임에 동참하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이재현 회장이 구속 및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CJ그룹의 경우 2분기까지의 실적 자체는 매우 좋았다. CJ제일제당의 경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69%, 54.65% 증가한 2조8300억원의 매출과 12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CJ대한통운도 1조1200억원의 매출(7.9% 증가)과 400억원의 영업이익(85.4% 증가)을 올렸다.

그러나 총수의 재가가 필요한 대규모 투자의 경우 하나씩 중단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달 24일에는 인천 굴업도 관광단지 내 골프장 건설계획을 전면 백지화했고, 6월에는 동부산 관광단지 영상 테마파크 사업도 포기했다. 두 사업 모두 2009년부터 그룹 차원에서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었으나 총수의 부재로 결국 손을 떼기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올해 착공하려던 경기도 광주시 대규모 수도권택배허브터미널 사업도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최근 포기 또는 연기된 사업들 모두 노동 집약적인 내수사업으로 고용창출 및 경기부양 차원에서 큰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됐던 것들이다. 최경환 경제팀으로서는 아쉬움이 크게 남을 수밖에 없다.

효성그룹의 경우 조석래 회장이 분식회계 혐의로 불구속 기소, 지난해 6월부터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 중인 조 회장은 최근 암 진단을 받고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다. 효성그룹의 주력회사인 ㈜효성의 경우 올해 2분기 각각 3조1100억원의 매출과 19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7.4%, 9.2% 떨어졌다. 더욱 큰 문제는 영업이익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4.24%에 달했던 ㈜효성의 영업이익률은 올해 상반기 2.33%까지 떨어졌다. 조 회장의 공백에 자식들의 법정 싸움까지 겹친 상태라 투자 및 향후 사업 계획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의 위기상황과 관련해 한 재계 관계자는 “최경환 부총리의 말대로 경제 살리기에 동참하려 하지만 사실상 여력이 별로 없는 상황”이라며 “마른 수건을 아무리 쥐어짜 봤자 불만만 더 나오지 않겠냐”며 아쉬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