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위한 세상을 향한 외침, 조직선 ‘왕따’ 취급 부당 해고까지
신변 보호·생계지원 등 보호책 마련 시급… 시민의식도 바뀌어야

내부고발자들은 말한다. 만약 당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부정과 부패, 비리를 목격해 놓고 아무런 일 없듯 넘어 갈 수 있겠는가.

잘못된 일을 알린 것뿐인데 세상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고. 이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배신자라는 낙인과 억울함 뿐이다. 올바르지 못한 시민의식은 한국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다. 어떤 회사원은 성공을 위해 오너 일가가 정치권 로비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비자금 관리 서류를 조작하기도 한다.

진실을 감추고 잘못을 눈감아야 한다고 부추기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시민의식. 대한민국 경제뿐 아니라 미래를 좀먹고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내부고발 문제를 심층 진단하고, 나름의 대책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1999년. 영화 ‘매트릭스’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감독을 맡은 워쇼스키 형제는 “눈에 보이는 것이 과연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졌고, 그동안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왔던 이성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영화의 줄거리에 수많은 철학적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하지만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이렇다. 우리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가상현실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선 누군가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잘못 된 일이지만 누군가에 의해 올바른 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조직에서 미치광이로 불린 그들

니체의 계보를 잇는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손꼽힌 미셀 푸코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을 통해 인간은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상위 계층이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원칙을 만들고, 이를 거역한 사람들은 처벌한다는 것. 정신병원이 처벌도구다. 원칙을 어겼을 때 미치광이로 규정해 격리시켰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사실로 믿게 교육한다.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한 사람들은 결국 최상위 계층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게 그의 논리다. 푸코는 “사회의 변화는 무조건 올바른 듯 보이는 이성의 실체를 점검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으려던 미치광이에 의해 시작된다”고 했다.

내부고발자. 우리는 그들을 ‘배신자’라고 부른다. 매트릭스에선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네오(키아노리브스)로, 미셀 푸코의 말대로라면 미치광이에 비유할 수 있다. 혹자는 내부고발자에게 “멀쩡한 회사에 잘 다닐 것이지 왜 그런 짓을 했을까”라고 물을 수 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어. 튀어봐야 손해지” 부정부패, 비리가 어디 한두 해 있던 일이냐고 비꼬면서 말이다.

사례1_ 잘 다니던 회사원, ‘긴급체포’ 되다

대한적십자사에 다니는 김용환(54)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어려운 업무 처리가 있으면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혈액을 관리하는 만큼 국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긍심도 컸다.

그런데 그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소송을 당한 전례가 있다. 긴급체포도 당했다. 2003년 7월19일. KBS ‘추적60분’을 통해 감염된 혈액이 유통되고 있다는 내용을 제보했기 때문이다.

에이즈에 감염된 혈액, A·B·C형 간염 등 시중에 유통되어선 안 될 혈액이 떠돌고 있다는 게 골자였다. 그동안 수혈사고가 몇 차례 있었지만 대한적십자사의 혈액 관리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알려지자 파장은 컸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김씨의 제보 내용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정상적인 직장생활은 불가능했다.

사례2_ 부당해고 당한 직원, 복직에 인생을 걸다

LG전자에서 근무했던 정국정(45)씨. 그는 내부고발자다. 본사와 하청업체간 검은 거래를 낱낱이 밝혀낸 주역이다. 그는 2000년 3월 해고된 이후 현재까지 복직에 목을 매고 있다.

자재팀에서 근무했던 그는 1996년 11월 감사팀에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부품가격으로 제품이 거래되고 있음을 제보했다. 실제 가격이 500만 원 가량인 부품을 2800만 원에 거래된 것을 확인, 본사와 하청업체 사이에 검은 커넥션이 형성돼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LG전자 감사팀은 그해 11~12월 한 달 간 강도 높은 감사를 실시했고, 관련자들을 처벌했다. 정씨의 제보가 사실로 인정된 셈이다. LG전자는 불필요하게 새어 나가던 예산을 줄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직장생활은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낮은 인사고과로 인해 승진 대상에서 매번 누락됐고, 직장상사로 부터 퇴직 권유를 받았다. 정씨는 퇴직을 거부했고, PC·전자메일 ID·개인사물함 등이 모두 회수당했다. 일은 주어지지 않았고, 복도에 별도로 마련된 책상에 근무를 하기도 했다.

정씨는 LG전자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20여개의 소송을 벌였고, 모두 승리했다. 2010년 2월 5일 고등법원은 복직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현재 LG전자는 판결에 불복, 대법원의 판결만이 남았다.

이처럼 내부고발자는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공익을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한 행동을 했는데 그들이 견뎌야할 세간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남은 것이라곤 ‘배신자’ ‘ 미치광이’라는 낙인과 억울함 뿐이다.

내부고발자에 의해 잘못된 것들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지만 잘못을 지적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내부의 문제를 외부에 알리는 것은 잘못인양 비춰지고 있는 사회 문화와 이를 수용하는 시민의식이 경제뿐 아니라 미래를 좀먹고 있다.

이들의 제보 내용은 감사원과 법원으로 부터 사실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잘못을 바로잡게 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각각의 조직은 어떤가.

대한적십자사의 경우 감염 혈액 문제가 발생한 이후 정부로 부터 혈액 관리를 위한 기금으로 3200억 원을 지원 받았고, 현재까지 혈액 감염 사고 등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LG전자는 납품 비리 근절로 인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기업 예산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여기에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만약 이들이 잘못된 사실을 보고도 눈을 감았다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것이다. 감염된 혈액은 현재까지 유통되고 LG전자의 납품 비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가능성이 높다.

이 둘의 내부고발로 인해 국민들은 제대로 된 혈액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고, LG전자는 불필요한 자금 지출을 줄이고 주주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다. 사례는 또 있다.

가짜 참기름이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는 것을 제보한 유종렬씨. 그는 동종업계의 눈 밖에 나 모든 것을 잃었다. 노숙자를 경험했고 현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식용유와 참기름을 섞어 팔던 관행이 그에 의해 바뀌었지만 신변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발생한 결과다. 그나마 김씨는 현재 대한적십자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준공공기관인 점이 인정돼 내부고발자 보호 제도의 도움을 받아 직장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민간 기업인 LG전자 출신 내부고발자 정씨와 유씨는 어떤가. 정씨는 2000년 부당해고 이후 현재까지 백수로 지내고 있다. 유씨도 노숙자로 전락한 이후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둘의 고발 내용 자체는 모두 사실로 인정받았지만 공공기관의 근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내부고발 보호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현행법상 공공기관 근무자의 내부고발은 부패를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인정 하지만 민간기업 근무자의 내부고발은 비리 신고로만 인정하고 있다. 개인의 비리를 밝힌 것은 공익 차원의 부패 방지와 거리가 멀다는 게 이유다.

‘부패방지법’에 따르면 보호 가능한 내부고발자를 공직자와 공공기관이 관계된 부패 행위를 제보하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국가권익위원회에 신고된 경우에만 민간영역의 내부고발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러나 이역시도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해당 기업에서 소송을 진행할 경우 손쓸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공익으로 봐야 할 것인가. 공익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전체의 이익, 공동의 이익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간기업의 내부고발도 공익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사회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을 뿐 아니라 해당 업체의 주주 등 다수의 이익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 회사 내부 비리는 기업 경쟁력,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삼성그룹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당시 해외 유명 매체들은 앞 다퉈 사건 내용을 보도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LG전자와 하청업체의 검은 거래를 제보한 정국정씨. 그는 영화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11년 동안 복직투쟁을 벌였고, 지난 2월5일 고등법원으로부터 복직 판결을 받았다.


공익 범위, 민간분야로 확대 필요

또 내부고발로 인해 다수의 시민이 수혜를 보는 경우는 민간기업에서 더욱 많이 일어난다. 비자금 조성, 협력업체 압박, 원가 부풀리기 등의 문제는 주주의 수익으로 직결되고 기업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비리 사고가 터졌다 하면 주가는 폭락하고, 직원의 사기 저하와 협력업체의 대금 납부 지연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공공기관, 민간기업 할 것 없이 내부고발 자체는 공익을 위한 일환에서 행한 일이란 얘기다. 국가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06년 민간부분 내부고발은 1536건으로 공직 관련 부패신고 89건에 비해 17배 이상이 많았다.

지난해 9월28일 미국의 <비즈니스위크>는 시카고대와 토론토대가 내부 비리가 터진 기업 230곳의 사례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기업의 부정행위 고발자 가운데 직원이 19.2%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고 보도했다.

직원은 외부인보다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내부 비리도 빨리, 그리고 많이 알 개연성이 높다. 두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의 비리는 시작된 지 평균 583일이 지난 뒤 드러났고 직원들은 평균보다 6개월 정도 빠른 398일 만에 비리 사실을 인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내부고발을 한 임직원 중 82%가 회사로부터 해고 압박을 받거나 사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등 불이익을 당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보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가 철저한 미국도 상황이 이런데 국내의 경우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불 보듯 뻔하다. 국내에서 공공부분을 포함해 민간부분의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장치가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민간부분의 내부고발자는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특별한 명분 없는 부당해고를 겪었다. 이들 대부분 복직을 위해 자신의 생활도 포기한다. 복직만이 자신의 행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령 다른 회사의 취직을 알아보기라도 할 요량이면 대부분 거절 당하기 일쑤다. 배신자를 받아 줄 회사는 없다는 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부고발자들은 대부분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다. 생계 걱정을 하며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생활이 힘들다. 내부고발 직후 직장에서 버림받은 전 LG전자 직원 정씨는 지난 2000년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병명은 불안신경증과 화병. 그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하소연했다.

앞서 말한 김씨도 극도의 정신불안과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고 했다. 법적 지원도 좋지만 잘못된 시민의식에 의해 사회에서 설자리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정씨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하다”며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익재단이나 공적자금이 투입된 단체의 상근·비상근 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매년 사랑의 열매 등 공익단체의 비리가 문제시 되고 있는데 양심선언을 한 내부고발자들이 그곳에 한 명씩만 있다고 했을 때 문제는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다음 호에는 내부고발자 보호제도에 대해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건전한 시민의식이 공정사회 만든다

내부고발자의 문제에서 변해야 할 부분은 명확하다. 법적·제도적 보호와 함께 내부고발자를 배신자가 아닌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선구자라는 시민의식이다. 김씨는 “국내에선 내부고발 이후 제보자의 신분 노출은 불가피하다”며 “내부고발자에 대한 평가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공익 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의 대표로 활동하며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부고발은 사회의 부조리를 막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이다. 사회로부터 외면 받기 보다는 칭찬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부고발자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연말연시가 되면 정부는 공정사회, 기업은 윤리경영을 하겠다며 거창한 계획들을 내놓는다. 철저한 감시를 통해 부패와 비리를 근절하겠다고 한다.

문제의 해답을 멀리서 찾기 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조직 내에서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식 변화와 그들의 중요성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공정사회와 윤리경영의 구호는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커 보인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