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응시원서에 ‘30년 이후의 본인의 미래 모습 또는 포부’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많은 응시자가 “회사의 사장이 되겠다”는 답을 한다고 한다. 결국, 직장인의 꿈이자 최종 목표가 회사의 사장(CEO)을 꿈꾼다는 이야기다. 사장이 되면 은퇴 이후에 모든 걱정 없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K사장에게 물었다. “은퇴 준비는 잘 돼 있나요?” “은퇴자산은 잘 축적해 놓으셨나요?” 이 질문에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은퇴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볼 때 소득도 일반 직장인에 비해 높고 퇴직금도 많이 책정돼 있어서 일반 직장인에 비해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음에도 정작 노후를 위해 준비한 자금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이다.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은퇴 이후 희망소득으로 평균 월 500만~1000만원이란 답이 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은퇴준비 상황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 이유는 재직 중에는 은퇴준비를 하지 못하다가 퇴직이 임박해서야 뒤늦게 준비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장 임기가 2년밖에 남지 않은 K사장은 은퇴 이후가 불안해서 급한 마음에 친구의 소개로 은퇴컨설팅을 받게 됐다. 그동안 소득은 아내에게 일임을 하다 보니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던 차에 상담과정에서 전체 재산 현황을 파악하게 됐고 그 결과, 은퇴자산이라고는 거주부동산과 금융자산 일부가 전부인 것을 알게 됐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부동산도 대형 평형의 주택이라서 조만간 은퇴를 했을 경우 유동화(현금화)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문제였다.

K사장은 주변에서 볼 때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지만,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정작 본인의 은퇴 이후 삶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까지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그저 먼 미래 이야기로 여기고, ‘어떻게든 되겠지’하며 늘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K사장이 이렇게 된 것은 ‘소득관리’에만 집중하고, ‘지출 및 자산관리’에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소득이 높아도 최고세율 및 4대 보험까지 공제하고 나면, 체감소득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소득이 언제 중단될지도 모른 채 자녀교육에 많은 지출을 한 것이 문제였다. 자녀교육에 남달랐던 아내 탓에 자녀 2명을 유학 보내고, 수입의 대부분을 유학경비로 지출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퇴직이 임박한 상태에서 남은 재산이라고는 일부의 금융자산과 퇴직금이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재취업이 안 된다고 했을 경우, 자녀의 결혼 지원을 위해 보유 부동산의 다운사이징은 불가피하다. 최악의 상황엔 은퇴생활비 마련을 위해 주택연금까지 고려해야 할 듯하다.

K사장은 “일찍부터 노후를 위해 소득 중 일부를 은퇴자산으로 연금저축(펀드)과 개인연금 등에 적립을 했다면, 지금보다 여유로운 노후의 삶을 계획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고 한다. 은퇴설계는 인생에 있어 미래에 발생하게 될 일을 미리 생각해보고, 현재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합리적으로 조정해가는 과정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풍족한 노후를 보장할 수는 없지만, 막연한 미래의 삶을 보다 체계적으로 준비해가며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은퇴 이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돈=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닌 만큼, 돈 이외에 건강 및 사회활동의 비재무적인 부분까지도 미리 미리 점검해보고 준비해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꽃(청춘)보다 아름다운 단풍(노후)과 같은 삶을 원한다면 은퇴설계를 통해 종합적인 점검을 받아보길 권유하고 싶다.

 

이경호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