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영동

‘신상털기’란 주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한 사람의 프라이버시(사생활)에 해당하는 신상정보를 사이버공간에 무차별 노출시키는 행위로 개인 인격에 대한 사이버테러라 할 수 있다.

신상털기는 사회적 규범에 벗어난 행동을 한 사람의 잘못된 행위를 응징하고 바로잡기 위해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의 의식보다는 단지 재미나 호기심으로 변질되어 본연의 의미가 퇴색된다. 결국 신상털기는 사람 간의 불신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반사회적 행위를 응징하려는 본래의 의도 대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05년 6월 지하철에 애완견을 데리고 탑승한 한 여성이 개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그냥 내렸다. 이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사람이 이 동영상을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면서 문제의 동영상과 글은 수많은 웹사이트로 퍼져나갔고, 미국 유력신문 워싱턴포스트(WP)는 ‘개똥녀(Dog Poop Girl)’ 사건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사회규범의 위반에 대한 영구한 ‘디지털 낙인’으로 묘사했다.

수많은 악플에 시달린 당사자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음이 알려지자, 개똥녀가 인터넷 마녀사냥의 피해자인지, 아니면 공중도덕을 무시한 파렴치한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 대한 사회적 비판에서 시작된 개똥녀 논란은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익명성을 무기로 한 악플러들의 냄비근성에 대한 비판으로 종결됐다.

한국 네티즌의 신상털기 ‘집단적 광기’를 전 세계에 알리게 된 계기는 2012년 7월 런던 올림픽이다. 런던 올림픽에서 유난히 한국선수들에 대한 오심 논란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수영의 박태환 선수가 부정 출발로 결승진출이 좌절됐다가 번복된 것을 비롯해 유도 조준호, 펜싱 신아람 선수가 모두 석연치 않은 판정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우리 네티즌은 곧바로 관련 심판과 상대 선수에게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을 가했다. 펜싱 신아람 선수의 상대였던 독일 선수의 페이스북에 비아냥성 글과 욕설을 퍼부었다. 심지어 그의 과거 누드사진까지 나돌았다. 오스트리아인 심판의 신상도 털었다. 네티즌은 축구대표팀 박주영 선수의 옐로카드를 유도한 스위스 선수의 페이스북에도 비난과 욕설을 남겼다. 이 일로 그는 트위터에 “한국인을 때리고 싶다”는 글을 올린 것이 화근이 돼 결국 팀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우리 네티즌의 정의감은 너무 충만하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기질이 기괴하게 왜곡된 형태로 사이버공간에서 표출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이용자의 67%가 신상털기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응답했다. 신상털기 참여 경험자 중 95% 이상은 인터넷을 통해 신상정보를 찾아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인터넷을 통해 별 다른 어려움 없이 다른 사람들의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이렇게 접근가능한 개인정보로 신상털기가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신상털기에서 상대의 프라이버시는 사회정의 실현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거의 묵살되기 일쑤다. 따라서 자신의 행위에 따르는 책임문제는 익명성과 비대면성 속에서 실종되고, 결과의 정당성만 강조하면서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은 무시된다.

신상털기를 당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도 전에 익명의 사람들로부터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는 당혹감과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널리 퍼졌다는 사실에 창피해하고 수치스러움에 주의가 집중된다. 죄책감을 수반하기에 앞서 압박감ㆍ불안감ㆍ우울감 등 정서적 불안이 엄습해 개인의 능력으로 대처하거나 견디기 곤란한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이것이 심해지면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고 인지적 혼란을 야기하며, 삶에 대한 무의미감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선 같은 신상털기인 데도 사뭇 다른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다. 육군 28사단 윤일병 사망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이 낱낱이 파헤쳐졌다. 부대 내에서 함께 간식을 먹는 사진에서부터 일부 가해자들의 개인사진까지 버젓이 올라와 있고 가혹행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모 병장은 얼굴과 실명은 물론 생년월일과 출생지, 심지어 출신학교까지 공개됐다. 윤 일병을 죽음에까지 몰아넣은 가해자들이 인터넷에선 개인정보가 유출된 피해자로 바뀐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심하다는 이야기도 나올 법한데 대다수 시민들의 공분(公憤)에 묻히는 분위기다. 폭행·추행, 집요한 괴롭힘으로 극도의 잔인성을 보여준 가해자들에게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집단적 의식이 불법적 신상털기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