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는 그날 상상조차 못했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될지를. 호기심 많던 이 호모에렉투스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훔쳐 건네준 ‘장물’ 말고, 제 손으로 직접 불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썰미가 좋은 그는 마른 나무가 난데없이 불 붙는 것을 보고는 나뭇가지들을 마찰한 끝에 불씨를 얻는 데 성공했다. K씨는 반복실험을 통해 마침내 안정적인 발화법을 구했다. 이날은 인류가 번개나 화재로 불타는 나뭇가지를 발견하면 허겁지겁 동굴로 가져와 사용한 지 40만 년 뒤였다.

그날 이후 인간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K씨의 후손들은 더는 철새처럼 떠돌지 않고 한곳에서 ‘죽음의 겨울’을 견딜 수 있게 됐다. 모닥불에 고기를 익혀 먹게 되면서 수명이 늘었고, 익힌 고기를 장기 보관할 수 있게 되자 무리가 머리를 맞대고 뭔가 궁리할 여유도 생겼다. 여자들은 진흙 그릇을 불에 구워 단단한 토기를 만들었고,남자들은 수렵과 채집 외에 경작과 사육에 나섰다.

점차 농경에 의한 잉여생산물이 축적되자 무리 속에 역할이 분화되고 지위의 높낮이가 생겼다. 정착된 집단 내 갈등을 조정하려고 규칙이 생기고 계급이 나타나고 원시종교가 틀을 잡았으며 문명과 문화가 성장했다. 광물을 불에 녹여 만든 칼과 화살촉과 창으로 부족들은 덩치를 키워 부족국가를 형성했다. 불은 이렇게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키워냈다.

호모에렉투스 K씨를 떠올린 것은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의 <새로운 디지털 시대>를 읽고 나서였다. 그의 책을 보니 인터넷은 불과 닮았다. 특히 그가 강조하는 ‘인터넷 연결성’은 인류에게 전과 확연히 다른 디지털 시대(The New Digital Age)를 불러올 것이었다.

에릭 슈미트는 “인터넷은 인류가 만들어 놓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미 국방부도 1969년 敵(적) 공격에 의해 통신망에 연결된 통제 컴퓨터들이 파괴되더라도 다른 경로로 정보 교환이 가능한 알파넷(ARPANET)이 구축됐을 때, K씨처럼 그 발명의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알파넷은 인터넷으로 진화했고, 인터넷은 이미 '통신도구' 수준을 넘어섰다.

호모에렉투스 K씨의 후예 에릭 슈미트가 상상한다. 언젠가 인류는 인터넷을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 뉴욕의 직장인은 무인자동차로 출근하고 홀로그램으로 회의에 참석한다. 콩고의 어부는 스마트폰으로 시장 수요를 파악해 판매량을 가늠하면서 필요한 만큼만 고기를 잡아 값비싼 냉장비용을 아낀다. 중동의 소수민족은 ‘가상국가 체제’를 만들어 온라인상에서 국가를 세운다. 반체제 인사는 ‘인터넷 망명’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활보하며, 독재자는 국민의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강력한 감시체제를 구축한다.

휴대폰이 알아서 질병을 진단한 후 의사와 약속을 잡아준다. 학교에서는 성교육보다 보안교육이 먼저다. 평판에 관한 보험이 유행하고, 지문ㆍ사진ㆍDNA 판독결과 등을 일컫는 ‘바이오메트릭’ 정보를 활용해 사람들을 집중 감시하는 업그레이드된 경찰국가가 탄생할 수 있다. 테러리스트 해커가 세상을 위협하며, 가상 대학살과 가상 괴롭힘도 기승을 부린다.

국가나 기득권층의 권력은 개인에게로 이양되고, 영웅은 사라진다. 온라인상 정보가 넘쳐나면서 지난날의 사소한 잘못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국가의 부정이나 체제의 불합리에 반대하는 개인들이 가상세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일상화되고 누구나 반체제 인사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소수의 정의로운 인물이 혁명의 선봉에 섰지만 앞으로는 체제에 분노를 느끼는 수많은 개인이 각자 일어설 수 있게 된다. 전반적으로 시대는 국가보다 개인의 손에 더 많은 권력을 쥐어주는 흐름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잡음이나 갈등은 어마어마하다.

요즘 인터넷상에는 외국처럼 코딩교육을 도입하겠다는 정부발표에 반대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물론 우려되는 요소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움직임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일까. 에릭 슈미트는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맞아 "당신은 혁신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고 묻는다. 그가 말하는 시점은 불과 11년 뒤다. <이코노믹리뷰 편집인.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