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대나무가 만나서 맑은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 동화약품 절묘한 브랜드 선택


지죽상합(紙竹相合).’ 종이와 대나무가 서로 합쳤다는 뜻으로 읽는다. 경제 용어로 하이브리드(hybrid)란 이를 두고 말함이다. 지죽상합 뒤에 오는 말이 그렇다. ‘생기청풍(生氣淸風)’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쯤 되면 새로운 가치 창조가 된다. 하여 ‘부채’가 된 것 아닌가. 이 물건을 손에 쥐면 누군들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랴. 몇 달 전인가. 인터넷에 접속해 어찌어찌 하다가 보니 ‘까스 활명수’로 아주 유명한 기업 동화약품(주) 홈페이지에 내 마음 나도 모르지만, 어쨌든 닿게 되었다.

그때 처음 알았던 글귀다. <시전(詩傳)>에 나온다고 한다. ‘지죽상합 생기청풍(紙竹相合 生氣淸風)’이란 엄청난 글귀가….

그때부터 시전(詩傳)인 <시경(詩經>이란 고전의 숲을 뒤적였다. 찾았으나 결과는 헤맨 꼴이다. 출처가 어디인지를 파악하지 못해서다. 무식한 결과다. 실로 부끄럽다.

그래서다. 한편 묻고 싶다. 있기는 있는 글귀인가? 국내 최고의 마케팅 전략가이자 30년 동안 마케터로 일관된 삶을 살아온 김훈철 작가의 <롱런 마케팅>이란 좋은 책이 있다. 그 중 한 페이지를 엿보자. 이렇게 써 있다.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성장이 멈추는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 비즈니스 미션은 스스로 변화에 맞게 재정의함으로써 새로운 비즈니스 미션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비즈니스 비전을 보다 굳건히 하는 것이다.

한국 최고(最古)의 회사는 어디일까? 바로 동화약품이다. 1897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지속 가능 경영의 연구 대상이다. 부채표 활명수는 한국 최고의 브랜드이자 최장수 상품이다.

부채표란 ‘시경’에서 나오는 지죽상합 생기청풍(紙竹相合 生氣淸風 : 종이와 대나무가 만나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에서 유래한다. 활명수는 노화에 도움이 되는 생약 성분을 서양 의학과 접목시킨 새로운 약이다. (22쪽, <롱런 마케팅>, 김훈철 지음, 다산북스 펴냄)

홈페이지에 있는 부채표(그림 참조)를 보자. 이는 죽선(竹扇)이다. 그러면서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선(摺扇)의 기능이 보인다. 이 부채를 두고 옛 사람은 말하길 “가을바람이 불면서 네 얼굴을 보지 못하는구나” 하며 탄식했는가 하면 “겨울에는 숨었다가 여름에는 다시 나오니, 스스로 나아갈(進) 때와 물러설(退) 때를 아는 것 같도다”라고 했다.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에 비기어 표현한 절창이니 동화약품의 절묘한 의인화 수법이다.

중국 민속 문학 연구에 조예가 깊다는 저우위치(周鈺奇)는 <부채의 운치>(산지니)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부채는 여유를 만들어 위장병을 치료하고 바람을 일으켜 가슴을 시원하게 하며, 몸 밖의 묵은 때를 벗기고 마음속에 오묘한 기운을 흐르게 한다. (28쪽, <부채의 운치>, 저우위치 지음, 박승미 옮김, 산지니 펴냄)

마치 ‘까스 활명수’를 가리켜 말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부채표’ 그림이 선풍기나 에어컨을 디자인한 것보다 훨씬 정서적이니 좋다. 과연 제칠 만하다.

한자학 최고 권위자인 고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1910~2006)는 <시경(詩經)>은 ‘단지 노래를 부르는 것만 아니라 악기로 연주했다’(<주술의 사상>)는 데 주목한 바 있다. 시라카와 교수에 따르면 ‘소아’가 일반 귀족 사회의 노래라면 ‘대아’는 중앙 정부, 국가에 관계된 왕조나 호족에 관한 가요라고 한다. 대아(大雅) 탕지십(湯之什) 억(抑)에는 이런 글귀가 홀연 등장한다.

투아이도 보지이리
(投我以桃, 報之以李). (대아 역)

(상대가 먼저) 복숭아를 던져주니, (곧) 나도 자두로 보답했다, 라는 식의 노래다. 여기서 상대는 보스(임금)를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백성을 말하니 경영으로 비유하자면 사장과 사원의 관계로 보아도 무방하다. 참고로 다산 정약용이 지은 <역주 시경강의>를 보자. 이렇게 풀어 적고 있다.

임금인 너는 덕을 닦아/선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라/너의 거동을 깨끗이 하고 삼가며/위의에 허물이 없게 하라/속이지 않고 해치지 않으면/법도가 되지 않음이 드물리라/나에게 복숭아를 던져오면/오얏으로 보답하게 마련일세/저 양이 새끼인데 뿔을 찾는다면/실로 어린 새끼를 망치는 것일세. (112쪽, <역주 시경강의5>, 정약용 지음, 실시학사 경학연구회 역주, 사암 펴냄)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렇게 역주한 바다.

‘그대를 본떠 덕을 닦게 하면 착하고 아름답게 될 것이니/그대의 행동을 잘 삼가서 거동에 잘못 없기 바라네/어긋남이 없고 남을 해치는 일이 없으면 본받게 될 것이니/내게 복숭아를 던져 주면 그것에 대하여 오얏으로 갚는다 하였네/어린 양을 보고 뿔이 있다는 것 같은 말은 정말로 젊은이들을 속이려는 것이네.’(598~599쪽, <시경>, 명문당)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피터 드러커(1909~2005) 박사는 이렇게 말한 바다. 결코 시적이지는 않다. 직설적이라 가슴이 아플 것이다.

경영자가 정직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실성과 성실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중략) 품성은 사람들을 기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특히 부하직원들은 몇 주만 지나면 상사가 정직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챈다. (중략) 부하직원에게 기꺼이 모범을 보이고,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절대 최고경영자로 임명되어서는 안 된다. (15~16쪽, <피터 드러커 경영 바이블>, 청림출판 펴냄)

새끼 양(신입사원)에게서 뿔(돈벌이)을 찾는다면 10년이 아니라 1년도 못 가서
경영 부실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시경이나 경영 바이블 모두, 정치나 경영이나 리더십의 근간은 정직함이라는 품성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편다. 시경이 제시하는 도리(桃李)의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사장으로서 도리(道理)를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하 직원에게 복숭아를 숨기지 말고 먼저 던져라. 그러면 최고경영자가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자두가 창고에 더 많이 쌓이지 않을까. 국내 최고의 장수기업 동화약품 창업자 정신이 10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퇴색되지 않는 이유에는 어떻게 하면 부하직원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 같은 이의 품성이 소나무 잣나무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양이 새끼(신입사원)인데 뿔(돈벌이)을 찾는다면 실로 어린 새끼를 망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100년이 아니라 10년, 10년이 아니라 1년도 못 가서 경영 부실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심상훈 브랜드매니지먼트사 HNC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