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본 교류전 외도장전초 어린이 그림전 현장

제주의 색(色)으로 물든 신화의 공간을 그린 제주아이들

1만8천 신들의 섬 제주. 오랜 세월 제주의 선조들은 1만8천 신들에게 생활 대소사의 위안을 얻으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제주 신화는 조선시대 유학과 외세종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 오랜 생활의 규범이었다. 순수한 자연을 넘어 시대정신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제주신화의 가능성을 초등학교 학생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현장을 찾았다.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진짜 핫한 공간 제주 신화의 방으로 들어가 보자.

지금 제주도는 세대전승이 화두다. 제주 4.3과 제주해녀, 제주어 나아가 제주신화까지 모두 세대전승이 이루어져야 할 아이콘들이다. 이런 아이콘들이 다음 세대까지 제대로 전승되어질 때 제주인들의 역사는 살아 있다 할 수 있겠다. 자아가 없는, 역사의식이 실종된 민족은 민족혼이 사망한 유랑민족의 다름 아니다.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일본 돗토리(鳥取)현 요나고(米子)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제주·일본신화미술교류전이 세대전승의 주인공이다. 이번 교류전은 많은 신화를 안고 사는 두 도시가 신화라는 컨텐츠로 뭉친 자리였다. 연령을 초월한 미술가들이 제주-일본의 신화를 컨텐츠로 세대전승을 외친 것이다.

미즈키시게루로드에 꽃핀 `제주신화 만화가`의 주인공은 누구

주목되는 것은 제주와 일본의 아이들이 그린 신화의 세계가 요나고시 인근 사카이미나토(境港)시 시민교류관에서 전시됐다는 점이다. 사카이미나토는 '게게게노 키타로'로 유명한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번 어린이 그림전에는 제주 외도·장전초 학생 작품 28점을 포함 80여점이 전시되었다. 일본 아이들은 '바다의 신 용의 이야기', '인연의 신 토끼 이야기'를, 제주 아이들은 '거인으로 그려지는 제주섬 이야기' '외할머니처럼 가까운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제각기 상상력의 마당으로 이끌어 내 반가웠다. 이번 어린이 그림전은 사카이미나토시 전시가 끝난 뒤 돗토리현 남부초 지역에서도 순회전을 이어간다고 한다. 눈알 캐릭터 등 만화에 등장하는 요괴들의 동상이 거리 전역에 설치되어 유명한 공간이 사카이미나토 미즈키시게루로드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외도나 장전초 학생 중 제주 신화를 만화로 그려내 세상을 빛내줄 제주판 미즈키시게루가 탄생할까. 이번 어린이 미술전을 통해 다소 무거운 장르일 수 있는 신화를 아이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즈키시게루로드 요괴캐릭터 베스트컷

제주문화포럼 "제주신화에 존재하는 막대한 창조적 에너지는 제주 문화의 힘"초등학생들의 활약과 함께 어른 작가들 또한 제주신화 창조성의 근원인 자청비, 설문대할망 등이 회화, 조각의 장르로 표현되어졌다. 그 주인공들은 요나고를 중심으로 오사카, 사카이미나토, 이즈모, 돗토리시 등에서 활동하는 일본작가 43명과 제주에서 직접 일본을 방문한 강술생, 김연숙, 송창훈, 홍진숙씨 등 15명이 다. 일본에서 요나고와 이즈모에 이르는 지역은 일본 최초의 역사서라는 '고사기'(古事記)의 배경이 된 곳으로 '일본 신화의 무대'라 불리는 지역이다. 신화의 오리진은 다르지만 작품 속에서 표현된 신들의 세상은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존재임에 틀림없다. "신의 나라끼리 나누는 작가들의 연대"인 이번 행사가 끝나고 김세지 제주문화포럼 원장은 "문화는 소통에서 오는 품격의 산물이고 조형으로 형상화 되어질 때 시간적 의미가 있다. 우리는 그 품격을 전승하고 나누려는 노력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이번 교류전도 그런 사람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축적된 문화를 조형화,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려는 밑받침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전했다. 7월 25일부터 시작되는 `생명의 숨, 신화의 방`은 강요배 화가, 김연숙화가, 유종욱 조각가 등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민속학자 문무병선생, 철학자 하순애, 미술평론가 김유정 선생 등이 출연. 전통문화에 대한 철학적 조형성을 오감으로 만날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초공본, 이공본, 삼공본, 문전본, 할망본, 칠성본, 천지왕본, 세경본까지 다양한 신화의 형상들이 등장할 11월 제주신화전이 벌써 기대된다.

사카이미나토시 요괴마을

'신화의 기억을 나누다', 두 지역의 뿌리는 섬

제주가 1만8천 신들의 섬으로 자리매김 한 이유는 역사적 배경의 오리진인 억압과 자연적 배경에 기인한 척박함에서 오는 질곡의 대표적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척박함과 억압의 공간에서 긴 시간을 지혜롭게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제주신화였다. 조선시대를 거쳐 유교에 의해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자리매김해 온 신당은 백성들의 힐링의 공간 다름 아니다. 이런 공간에서 전승되어져 내려온 수많은 신화들은 제주도민이 조형적이고 예술적이라는 반증이다.

제주문화포럼 역시 그 후예에 걸맞게 2005년부터 제주신화전을 열어왔고 2009년부터 시작된 제주·일본 신화 교류전을 통해 제주-일본의 민간단체와 예술가들을 주축으로 두 지역을 번갈아 오가며 교류해 오고 있으니 세대전승의 현장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나누는 양국 신화의 교류는 기억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계속 전승되질 것 같다.

제주신화가 계승되어야 하는 이유, "신화는 민족의 애착을 드러내는 아이콘"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아이콘이 제주역사, 제주 문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제주역사, 제주문화에서 제주신화는 중심축이다. 그 이유는 신화 속에 해당 민족이 흘린 아픔과 눈물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제주·일본신화미술교류전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양국 화단에서 신화를 미술 작품에 표현해온 작가가 드물고 평단의 반응도 미온적이지만 특정 작가나 단체가 신화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면 인정할만하다.

신화는 지역 정신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신화를 알아가는 것은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고 현재의 삶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일이다. 신화를 통해 '나'를 발견하고 만나는 일이라 여행의 소재로도 의미가 있다. 지진과 태풍을 삶 속에서 끼고 사는 양국 원주민들이라 신에 대한 기억은 일상에서도 힐링의 힘으로 작용되고 있다. 마음의 고향인 신화를 현대적 정신으로 재해석하고 계승하는 일, 이번 교류전을 시도하는 제주도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이다. 이런 공간 제주도의 문화를 읽기 위해 보물섬 제주를 여행하고 무형의 공간 `생명의 숨, 신화의 방`을 만나보는 일, 그것이 '진짜 여행'이다.

사진제공 : 제주문화포럼 제주-일본 신화교류전 사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