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모하메드 알마디 사빅 부회장(왼쪽에서 세번째), 모사에드 알오할리 사빅 부사장(왼쪽에서 네번째) 등이 SK종합화학 울산CLX넥슬렌 공장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봤다. 사진=SK그룹 제공

사례 1(기술+원료): A사는 어떤 원료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기업이고 이를 판매할 유통망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원료를 재가공해 완제품을 만드는 기술은 없다. B사는 해당 원료로 완제품을 만드는 독자적인 기술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원료 수급에 문제가 있어 기술을 썩히고 있다. 두 회사는 서로의 장점을 담은 합작법인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합작법인에 A사가 원료를 값싸게 공급하고 B사의 기술을 이용해 세계적 수준의 완제품을 만든 뒤, 이를 다시 A사의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는 것이다. 각자의 한계 때문에 경쟁력이 약했던 두 회사는 현재 합작법인을 통해 글로벌 1위 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

사례 2(기술+기술): A사는 글로벌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는 사업의 원천기술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기술을 해당 사업에 알맞게 변형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B사는 관련 사업의 세계 1위 부품 공급업체이고 사업 경험도 매우 풍부하다. 하지만 미래 먹거리를 위한 원천기술은 보유하고 있지 않아 미래가 어둡다. 두 기업은 손잡고 합작법인을 만들었다. A사의 원천기술과 B사의 부품 및 경험을 동시에 갖춘 합작법인은 출범 2년 만에 관련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사례 3(기술+인프라): A사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자사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진출해야 하는 시장에 들어가기에는 부담이 크다. B사는 A사가 진출하고 싶어하는 시장의 국영기업이다. 국가로부터 해당 지역의 개발과 경제 부흥이라는 목표를 부여받았지만 자사의 힘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두 기업이 힘을 모아 만든 합작법인을 통해 A사는 염원하던 시장에서 잘 다져진 인프라를 바탕으로 손쉽게 판로를 개척할 수 있었고 B사도 목적했던 바를 이룰 수 있었다.

 

대세로 부상한 ‘글로벌 파트너링’

합작법인을 통해 각자가 지닌 단점을 넘어서고 장점은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글로벌 파트너링’이 인기를 끌고 있다. 글로벌 파트너링은 신성장사업을 찾는 기업들 가운데 기술이나 자본, 인프라 등을 갖춘 곳끼리 궁합을 맞춰 서로의 목적에 맞는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경영기법이다. 투자 및 시장 진입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데다 시너지 효과를 통해 ‘1+1=∞’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불확실성이 대두되는 요즘 특히 각광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글로벌 파트너링은 리스크를 줄이고 불확실성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지닌다”며 “전략적 이해관계가 일치한 기업끼리는 충분히 윈윈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글로벌 리더 중에는 여전히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업 확장을 선호하는 곳도 존재한다. 리스크를 상쇄할 만큼의 자본과 시장지배력이 있는 기업들에는 빠른 결과를 낼 수 있는 데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업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는 M&A가 번거로운 합작법인보다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구글이나 애플처럼 필요할 때마다 M&A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기업들엔 글로벌 파트너링을 통한 합작법인 설립이 훨씬 알맞다.

글로벌 파트너링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목적이 같으면 분야와 관계없이 손잡을 수 있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의 기업과도 부담 없는 협력이 가능하다. ▲실패를 통한 리스크를 대폭 덜어낼 수 있다. ▲단숨에 글로벌 수위 업체로 도약할 수 있다. ▲서로의 강점을 더해 추가 부담 없이 신수종사업에 진출할 수 있다. ▲처음 진출하는 사업일지라도 상호 협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글로벌 파트너링을 세계 어떤 기업보다 잘 활용하는 곳이 있다. 바로 SK그룹이다. 한때 내수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던 SK그룹은 글로벌 파트너링을 통해 수출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SK그룹은 ‘기술+원료’, ‘기술+기술’, ‘기술+시장’ 등 다양한 형태의 글로벌 파트너링으로 세계 곳곳에서 성과를 거두며 글로벌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고급 기술에 값싼 원료가 더해져

SK그룹의 글로벌 파트너링 사례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SK종합화학이 글로벌 석유화학회사 사빅과 지난 5월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사빅은 ‘산업의 쌀’인 에틸렌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기업이다. 그러나 사빅은 에틸렌을 재가공해 얻을 수 있는 고성능 폴리에틸렌 생산기술은 보유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빅은 고가 폴리에틸렌 시장을 경쟁사인 다우케미칼과 엑슨모빌에 고스란히 내줘야 했다.

이런 고민을 알고 있던 SK는 사빅에 러브콜을 보냈다. SK종합화학은 고성능 폴리에틸렌 제품인 ‘넥슬렌’을 일괄 생산할 수 있는 독자적인 기술을 갖고 있었다. 넥슬렌은 SK가 2010년 말 100% 독자 기술로 개발한 고성능 폴리에틸렌을 지칭하는 브랜드다. 그러나 SK종합화학은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글로벌 기업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고 고성능 폴리에틸렌의 원료를 고가에 수입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두 회사의 합작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 됐다. 사빅은 SK종합화학과의 합작으로 고성능 폴리에틸렌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고 SK종합화학은 시장 확대와 원가경쟁력 강화, 투자금 확보가 가능해져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두 회사가 설립한 합작법인은 SK종합화학이 올 초 울산에 준공한 넥슬렌 공장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에 2공장을 건설하는 등 글로벌 생산기지도 계속 확대할 계획이다.

 

기술과 기술이 만나 신사업 강화

SK이노베이션이 독일 자동차 부품회사인 콘티넨탈과 손잡고 글로벌 전기자동차 배터리 시장 공략에 나선 것도 글로벌 파트너링의 주요 사례다. SK이노베이션과 콘티넨탈이 각각 51%, 49%의 지분을 출자해 만든 ‘SK-콘티넨탈 이모션’이 그 주인공이다.

SK이노베이션은 세계 정상급의 분리막 기술을 갖고 있지만 전기차 배터리 제조 능력은 다소 부족했다. 글로벌 1, 2위를 다투는 삼성SDI, LG화학은 물론이고 해외 배터리 업체들과 비교해도 늘 짧은 업력이 발목을 잡았다. 콘티넨탈과의 합작을 결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콘티넨탈은 현재 46개국에 17만여 명의 직원을 두고 지난해 335억유로(약 46조원)의 매출을 올린 글로벌 3위 규모의 자동차부품 공급업체다. 탁월한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갖췄고 자동차사업 분야에서 많은 사업 경험과 축적된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미래 먹거리로 불리는 전기차의 배터리를 만드는 기술은 갖고 있지 않다.

SK이노베이션과 콘티넨탈은 합작법인 SK-콘티넨탈 이모션을 설립해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배터리 팩 시스템을 생산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만든 배터리 셀과 파우치를 콘티넨탈의 배터리관리시스템(BMS)과 결합, 완성도 있는 제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실제로 SK-콘티넨탈 이모션은 설립 1년도 안 된 지난해 6월 시장조사기관 내비간트리서치가 선정한 세계 주요 11개 자동차용 2차전지 업체에서 경쟁자 그룹에 편성되는 등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최대 시장에 무사 안착

중국 최대 석유 국영기업 시노펙과 SK종합화학이 힘을 합쳐 만든 에틸렌 생산공장 ‘시노펙-SK 페트로케미칼’도 글로벌 파트너링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합작 당시 SK그룹은 ‘제2의 SK’를 중국에 건설한다는 계획에 따라 중국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글로벌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의 에너지화학시장 진출에 성공할 경우, SK그룹의 글로벌 사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적 특성상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이는 쉽사리 진출하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했다.

시노펙-SK 페트로케미칼이 위치한 후베이성 우한시는 중국 정부가 경제개발과 내수시장 성장의 거점으로 삼은 지역이다. 국영기업인 시노펙은 정부로부터 내륙개발이라는 과제를 부여받은 데다 안정적인 에틸렌 공급처도 확보할 필요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런 시노펙에 기술과 자본력을 동시에 갖춘 SK그룹은 안성맞춤인 상대였다. SK종합화학이 2004년 연산 6만 톤 규모의 상하이 용제공장을 공동 설립하고 2013년 2월 충칭의 창쇼우 경제기술개발구에 부탄디올 플랜드를 함께 만들었던 오랜 동반자였기에 시노펙의 선택은 어찌 보면 당연히 느껴질 정도였다.

SK종합화학과 시노펙이 합작해 만든 시노펙-SK 페트로케미칼은 올해 초 상업화에 돌입했다. 지난해 4분기 물성 테스트와 시험생산을 거쳐 최근 판매에 나선 것이다. 연간 에틸렌 80만 톤, 폴리에틸렌(PE) 60만 톤, 폴리프로필렌(PP) 40만 톤 등 총 250만 톤 규모의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 전망이 밝다.

▲ 울산CLX에 위치한 넥슬렌공장 전경. 사진=SK그룹 제공

최태원 회장 ‘신뢰’에 바탕

물론 글로벌 파트너링이 만능은 아니다. 양사 간 경영 목적이 다르거나 이익 추구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합작법인 자체가 무산되기 쉽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두 기업이 해당 합작법인을 통한 향후 전략을 다르게 잡을 경우 결별의 길을 걷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에 대해 장세진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파트너와 함께하는 일이라 의사결정 및 협력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둘 중 하나가 저질체력을 갖고 있거나 서로 취향이 다르다면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글로벌 파트너링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몇 년간 SK그룹의 글로벌 파트너링 행보에 그 해법이 잘 드러나 있다. 바로 파트너와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SK그룹이 추진하는 글로벌 파트너링은 서로의 강점을 최적으로 조합해 시너지를 내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여타 경우와 동일하다. 그러나 파트너와 서로 신뢰를 쌓기 위해 사전노력을 오랫동안 기울여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 협력의 ‘질’이 다르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는 덕분에 협력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것도 SK그룹 글로벌 파트너링만의 특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JX에너지와 협력해 세운 파라자일렌 생산공장 ‘울산아로마틱스’다. 물론 울산아로마틱스도 양사의 이익을 반영해 설립한 합작법인이다. 울산아로마틱스를 통해 JX에너지는 남아도는 파라자일렌 생산 원료를 처리할 수 있고 SK그룹은 중국 및 중동에 수출하기 위한 원료를 근거리에서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양사의 글로벌 파트너링에는 또 다른 배경이 존재했다. SK그룹은 2011년 3월 동일본지진 당시 수급에 차질이 생긴 JX에너지를 위해 원유를 대신 구매해주고 석유제품을 거래처와 일본 내에 공급해주면서 일본이 에너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비즈니스 측면 외에도 SK그룹이 보여준 ‘인도주의적 조치’가 양사의 글로벌 파트너링을 순탄하게 진행할 수 있게 해준 셈이다.

SK그룹의 성공적인 글로벌 파트너링에는 상대 기업 또는 국가와의 신뢰감을 위해 쏟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평가다.

이는 SK종합화학과 사빅의 합작 배경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2004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사빅의 모하메드 알마디 부회장을 만난 이후 꾸준히 교분을 맺어온 최 회장은 2011년 중동을 다시 방문해 전략적 제휴를 위한 큰 틀에 합의했다. 최 회장의 재판으로 생긴 공백 때문에 구체적 협상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때 두 사람의 끈끈한 관계가 큰 도움이 됐다는 지적이다. 마찬가지로 한중수교 이후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합작이라는 성과를 거둔 시노펙과의 관계 설정도 7년 동안 공을 들이며 동반자 구축에 대한 열의를 전달한 최 회장의 공이 컸다는 해석이다.

지난해 SK그룹의 수출액은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전체 매출액의 절반을 넘어섰다. 한때 내수기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있던 SK그룹이 명실상부한 ‘수출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제 SK그룹은 ‘그룹가치 300조원’이라는 또 하나의 목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최 회장의 글로벌 파트너링이 새로운 목표를 향한 SK그룹의 도약을 성공하게 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