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종점의 기적’이라는 게 있다. 지하철 종점에 가면, 거지의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다발이 나오고 맹인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는다는. ‘설정된 구걸인’을 빗대어 나온 말이다. 한국민속촌에서도 그 엇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민속촌 내 거지가 2명 있는데,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다. (분명 거지였는데) 그땐 아주 말쑥하게 바뀐다. 이들은 사실 ‘알바생’이다. 세간에 화제가 된 ‘거지알바’. 업무는 간단하다. 조용히 구걸하다 각설이 타령하고, 가끔 불려가서 곤장맞기 정도.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거지처럼’ 살면 된다.

거지알바 한 달째라는 김정원 씨(27)는 그간 10여 가지의 알바를 해본 ‘알바 베테랑’이다. 그러다 SNS를 통해 이 알바를 접했다. “재밌을 것 같았어요. 단순히 돈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거지역할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일이 진짜 재밌어요.”

물론 나름의 고충도 있다. “딱히 힘든 부분은 없지만 땅바닥에 계속 있으니 먼지를 많이 먹어요. 가끔 짓궂은 초등학생들이 괴롭히기도 하고요. 하하. 그런데 싸온 점심을 나눠주는 착한 친구들도 있죠.” 구걸로 얻은 돈은 알바생 몫이다. 정원 씨는 “그렇다고 구걸에 목숨 걸진 않는다”면서 “넉살 좋게 사람들과 대화하며 번 돈은 눈치껏 나눠주는 센스도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거지가 1명 더 있는데, 은근히 경쟁이 돼 좀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한 명 더 있는 거지’는 성대 씨(31). 역시 노가다부터 시작해 10가지가 넘는 알바를 해본 베테랑. 그는 “관광객 상대로 일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지원했다”면서 “일이 굉장히 편해 ‘꿀알바’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무척 재밌어서 놀러가는 느낌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구걸하며 돌아다니다가 피곤하면 땅에 누워 자면서 휴식을 취합니다. 가끔 제 구걸 바가지를 장남 삼아 털어 가시는 분들 계신데요, 진짜 거지는 아니지만 그럴 땐 정말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에요.”

둘은 모두 방송 일을 꿈꾼다. 배우가 꿈인 정원 씨는 “거지를 비롯해 앞으로 연기하게 될 캐릭터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성대 씨 또한 “거지 역할을 통해 얼굴에 ‘철판’을 제대로 깔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담력도 키우고 자신감도 충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지알바 한 번 하면요, 다른 일은 하기 싫을 수 있으니까 주의하셔야 해요. 수익이 목적이 아니라 즐기며 일하고 싶은 분에게 ‘강추’합니다.”

‘거지알바’는 2012년부터 모집하고 있다. 한국민속촌이 봄 축제인 ‘웰컴투조선’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민속촌 관계자는 “‘조선시대로의 시간여행’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관람객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은 캐릭터가 필요했다”면서 알바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정원 씨와 성대 씨는 축제기간인 4월 5일부터 6월 15일까지 일한다. 민속촌 관계자는 “급여는 여타 아르바이트와 비슷한 수준”이라면서 “특히 다른 캐릭터 아르바이트생과 달리 구걸을 통해 짭짤한 부수입도 올릴 수 있다”고 전했다. 유명세를 탄 후 경쟁률은 20 대 1정도. 향후 모집 일정은 미정이다. 민속촌 관계자는 “가을시즌에 진행될 예정인 ‘사극드라마축제’ 행사를 위해 별도로 거지알바 역할 선발이 진행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