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전차군단’의 파워가 매섭다. FIFA 랭킹 2위 독일 ‘전차군단’이 강력한 우승후보 브라질 ‘삼바축구’를 7대1로 초토화한 뒤 아르헨티나 ‘탱고축구’와 벼랑 끝 결승에서 만났다.

힘과 높이를 앞세워 거침없이 질주하는 독일 ‘전차(戰車)군단’과 달리 대한민국 ‘전차(電車)군단’은 요즘 내리막길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느라 정신이 없다.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 실적이 어닝쇼크 수준으로 떨어진 데 이어 현대차도 영업이익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를 쌍끌이로 이끌어온 삼성전자·현대차의 고전이 왠지 심상치 않아 보인다. 2분기 영업이익 7조2000억원(잠정)으로 2년 만에 분기 영업이익이 8조원 밑으로 떨어진 삼성전자. 그리고 지난해 3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수익이 감소한 데 이어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가량 하락한 현대차의 고민은 그대로 닮은 꼴이다. 스마트폰 판매 부진과 원화 강세에 따른 수출 타격 등 열악한 환경 또한 저조한 실적을 부추긴 요인으로 꼽힌다.

스마트폰 고성장시대가 저물어가면서 실적부진의 늪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는 삼성전자는 요즘 중저가 휴대전화 시장에서 샤오미, 레노버 같은 중국 휴대폰 제조업체들의 협공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중국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무서운 기세로 글로벌 시장을 향해 치고 올라오고 있다. 저가(低價) 경쟁력뿐 아니라 기술력에서도 이미 일류 수준에 들어섰기에 이들의 행보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더욱이 중국 휴대폰 제조업체가 무려 수백 개에 달한다니 그저 섬뜩할 뿐이다. 우리의 자화상은 어떤가. 삼성전자, LG전자에 이어 알짜배기 3위를 고수해온 팬택은 요즘 ‘법정관리’라는 저승사자가 들이닥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준우 팬택 사장이 지난 10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에 채권단이 제시한 1800억원의 출자전환을 받아들여 달라며 읍소하는 모습이 자꾸 아른거린다.

대한민국의 휴대폰 제조완성업체는 팬택과 삼성전자, LG전자 등 단 3개에 불과하다. 그런점에서 팬택은 대한민국 ‘전차군단’에 막내로 합류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LG 양강만으로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는 것은 사실 힘에 부친다. 게다가 팬택은 덩치가 작기 때문에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하기에 적합하다. 팬택의 부재는 다른 무엇보다 휴대폰 제조업체간 견제와 균형을 위한 최소한의 구도인 ‘3각체제’자체가 와해된다는 점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팬택은 그동안 ‘끊김없는 금속 테두리’ 디자인의 스마트폰을 세계 최초로 출시한 데 이어 지난해 9월에는 생체인식 기술의 상용화에 성공하는 등 독자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아왔다. 국내 최초 후면(後面) 터치와 세계 최초 모션 인식 기능 또한 팬택의 기술력이 빚어낸 ‘작품’으로 꼽힌다.

하지만 팬택은 올봄에 약 2개월간의 이통 3사 영업정지라는 외부 악재를 만나 국내 매출 급감이라는 직격탄을 맞고야 말았다. 그 와중에도 2분기 해외수출 물량이 국내 월 판매량의 두 배가 넘는 50만 대를 기록한 것은 팬택 특유의 저력과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팬택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단순한 시장논리를 뛰어넘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팬택 브랜드뿐 아니라 협력업체 연쇄도산 등 후폭풍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승적 차원에서 팬택에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

이통 3사의 출자전환을 위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그들에게 영업정지 기간을 상쇄할 수 있도록 2개월 정도 시간적 여유를 더 주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채권단이 이통 3사에 각각 출자전환 부담액을 절반 정도로 줄여줌으로써 이들에게 영업정지에 따른 책임을 지우면서도 부담은 다소 덜어주는 절묘한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팬택 구하기’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해법찾기에 실패한다면 자칫 한 회사가 도산하는 차원을 넘어 벤처신화의 몰락, IT강국의 쇠락을 알리는 ‘조종(弔鐘)’이 될 수도 있다.

독일 ‘전차군단’에선 월드컵 최다 16골을 기록한 클로제의 존재가 단연 돋보인다. 클로제는 19세 때 명문 유소년클럽에서 퇴짜를 맞고 조기축구팀 수준의 독일 7부리그 선수로 뛸 정도로 평범한 청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축구를 향한 열정은 그를 지칠 줄 모르는 연습벌레로 거듭나게 했고, 마침내 21세에 1부리그로 스카우트되면서 새로운 인생역전이 시작됐다.

팬택이 ‘제2의 클로제’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다만, 선수 한 명이야 유능한 스카우터가 챙기면 그만이지만 팬택과 같은 중견기업이 회생하려면 무수히 많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기업에 유리한 기업여건하에서 장장 23년을 버티며 수차례의 워크아웃을 경험한 팬택이 이번 위기에도 살아남는다면 그건 바로 ‘신화의 부활(復活)’이다. 신화를 죽이느냐 다시 살려내느냐 여부는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이통 3사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