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제작비만 몇 십, 몇 백억을 들이고, 스케일도 크며 볼거리도 화려한 영화들이 영화관을 점령한다. 이러한 영화들을 모양새도 좋고 육감을 자극하는 피자나 햄버거에 비교할 수 있다면, 영화 ‘김씨표류기’는 그저 쌀밥 같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단내가 나와 곱씹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그 쌀밥 말이다.

영화 속에는 두 명의 김씨가 등장한다. 한 명은 한강에서 자살하기 위해 뛰어내렸다가 웬 섬으로 흘러가 고립된 남자 김씨(정재영 분), 또 다른 이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집 안에 갇혀버린 여자 김씨(정려원 분)다.

남자, 자신이 떠밀려 온 섬 건너편의 63빌딩과 수많은 건물들을 바라본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여자친구에게도 차여 포기하려 했던 세상이다. 모래밭에 help라는 단어를 쓴 채 아무리 소리를 쳐도 어느 하나 남자의 구조요청을 듣는 이가 없다. 지독한 군중 속의 고독이다.

여자, 자신을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는 인터넷 세계를 헤엄친다. 인터넷은 그녀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다. 그 밖에 유일한 취미는 창문을 열고 달을 찍는 일이다. 그녀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달을 찍는 이유는, 달에는 아무도 없고, 아무도 없으면, 외롭지 않으니까’이다.

섬에서 다시 죽을 마음을 먹던 남자는 한 가지를 깨닫는다.

‘여기서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죽음에서 자유로워진 그는 온전히 고립된 자신의 섬에서 살아가보기로 한다. 이번에는 세상이 자신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외면한다. 쓸 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 섬을 뒤지던 그는 오리배 한 척을 발견한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오리 품속의 미운오리새끼’라고 말한다. 그의 모래밭에는 이제 help가 아닌 hello가 쓰인다.

한편 방 안에 있는 카메라를 통해 바깥세상을 보던 여자는 우연히 남자의 hello를 발견한다. 왠지 모를 호기심에 그녀는 밤마다 집에서 몰래 나와 남자 쪽 강가를 향해 쪽지 담긴 유리병을 던진다. 물결이 일으킨 작은 일렁임이 남자에게로 향한다.

쪽지를 받아든 남자 또한 누군지 모르는 여자를 향해 모래밭에 편지를 쓴다.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킨 둘. 그러나 결국 남자와 여자, 각각의 김씨는 소통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 '김씨표류기'의 한 장면. 영화 '김씨표류기'의 한 장면.

 

그러던 어느 날 거센 폭풍우가 도시와 섬을 뒤덮는다. 남자는 자신이 이뤄온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을 품어주던 오리배를 끝내 놓친다. 그만의 고독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조금씩 자신만의 세상에서 나오는 여자 김씨와 남자 김씨. 둘 이야기의 결말은 영화에서 확인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