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8898r-2

(8만 시간 공모전 에세이 부문 대상 수상작)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

1.나의 과거와 현재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성장을 지속하던 70년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했다.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젊은 시절 나 역시 정신없이 일을 했다. 그러다가 나이가 40이 되었던 해다. 문득 내가 벌써 40이 되었구나 하며 세월의 빠름을 느꼈다.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직장생활은 딱 50까지만 하고 이후에는 다른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일만 하다가 생을 마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수명이 60대에 머무르고 있을 때다.

50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는 딱히 정하지 않았다. 다만 목표를 그렇게 정한 것이다. 그리고 40부터 50까지의 10년 동안을 은퇴를 하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삼았다. 준비를 하는 동안 내가 할 일에 대한 윤곽이 서서히 들어 날 것으로 믿었다. 우선 재정적 자립을 위해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불필요한 경비 지출을 줄이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열심히 저축을 했다.

인문학 책을 두루 섭렵하며 나보다 먼저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추적했다. 그중 두 사람이 나의 인생 롤 모델로 떠올랐다. 한 사람은 펜실바니아대학교수를 역임한 후 버먼트주로 이주하여 생을 마친 스코트 니어링이다. 그는 하루의 반나절은 일을 하고 나머지 반나절은 명상과 독서로 소일했다. 그리고 100세가 되던 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세상을 떠났다. 또 한 사람은 죽음의 5단계 설을 제기한 정신과 전문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이다. 호스피스운동을 선도했으며 평생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그녀의 삶을 헌신했다.

인문학과 함께 실용적인 학문도 공부했다. 예를 들면 목조건축과 커피 그리고 와인 등이다. 이러한 것들이 내가 그려가고 있던 은퇴이후의 구상에 도움을 될 것으로 생각했다. 아울러 틈틈이 시간을 내어 평소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공부도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재직 중 열심히 전시회를 다녔다. 이렇게 다닌 전시회 횟수가 어림잡아 1천 번이 넘는다. 퇴근이후 과외시간을 이용하여 대학원에서 미술이론과 미술사 공부도 병행했다.

부부가 같은 취미활동을 했으면 해서 아내와 사물놀이를 3년간 배웠다. 이웃에 살던 성당 교우로부터 미국 컨트리 음악을 함께 연주하자는 제의를 받고 콘트라베이스 레슨도 받았다. 그 후 그와 함께 밴드를 결성해서 지금까지 10여 년간 정기적으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2.미래의 모습과 구체적인 계획

아이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만 어른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물론 어렸을 적에는 알고 있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내면 깊숙이 가라앉고 남들이 원하는 걸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사는 것이다. 임종의 순간에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았으면 모르되 남들이 원했던 삶을 살았더라면 그것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국립암센터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6개월 간 받은 바 있는데 임종의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 후회를 했던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달랐다. 흔히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건 돈을 많이 벌었으면, 큰 집으로 이사를 갔으면 또는 높은 지위에 올랐으면 하는 거지만 죽어가는 사람이 원했던 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미루었던 그들의 소박한 희망이었다. 은퇴는 일에서 손을 놓는 게 아니고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50세가 되었지만 은퇴를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직 대학에 다니고 있었으며 독립을 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나는 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사표를 제출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검소한 생활을 하면 밥은 먹고 살 것 같았다.

신문지상에선 은퇴자금이 7억, 또는 10억이 필요하다고 해서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는데 그건 금융회사에서 자기 상품을 팔기위한 마케팅의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은퇴이후 부부의 생활비를 2백만 원으로 예상하면 목돈이 그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지만 목돈을 마련하기 보다는 생활비에 상당하는 현금흐름을 창출하면 된다. 은퇴 시까지 경제활동을 한 사람이라면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을 이용하여 어느 정도의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은퇴 후 국민연금을 통해 매월 1백만 원의 현금을 받고 있다.

직장을 그만 둔 후 나는 한 동안 국립현대미술관 도서관을 다니며 내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미술공부를 계속했다. 아울러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기여할 것은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지역 라디오 방송인 분당FM에서 진행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방송경험은 없었지만 대학 재학 시 학비를 버느라고 음악다방에서 DJ를 한 경력이 있어 무사히 통과했다.

처음 2년 간은 분당지역의 문화예술 동호인들을 초청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청취자들에게 들려주려고 노력했다. 중앙방송처럼 화려한 쇼는 없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충분했다. 그 다음에는 눈이 보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이 프로를 진행하며 시각장애인을 위해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 후 개포동에 있는 하상점자도서관을 찾아갔다. 4년 전 일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낭독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직장에 사표를 낸 후 얼마 되지 않아 집 가까이에 아트센터가 개관을 했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으며 모두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선발이 되었다. 봉사자들은 3개월 간 봉사에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으며 알게 되었지만 봉사자들의 스펙은 훌륭했다. 전직 외교관도 있고 대학교수도 있었으며 방송작가로 30여 년간 활동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에게 주어진 일들은 너무 단순했다. 봉투를 접는다거나 규정을 가제한다든가 로비에서 손님들을 안내하는 일 등이었다.

물론 이런 일들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은 사회에서 쌓은 경력을 활용하여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원했다. 예를 들어 외교관을 역임했던 분에게 생활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거나 그 지역의 문화에 대한 강의를 부탁했다면 그는 훌륭히 해 냈을 것이다. 방송작가로 활동했던 분에게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 지 글쓰기 대한 강좌를 의뢰했더라면 아마 열정을 갖고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자원봉사자들 중 많은 숫자가 그만 두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비교적 나이든 분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노인 한 분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거와 같다는 얘기가 있다. 이처럼 나이든 분들이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이러한 지혜를 우리는 잘 활용해야 한다. 미국의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활동을 경제적으로 환산해보니 연간 3천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3백조 원이 넘는 금액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엔 아직 자원봉사자의 인식이 부족해선지 자원봉사활동이 그네들처럼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연히 보도를 통해 영국의 U3A란 시니어대학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U3A란 University of The 3rd Age의 약자다. 은퇴를 한 시니어들의 대학인 것이다. 노후에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가는 많은 은퇴자들의 고민이다. 이곳에서는 자기가 지닌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고 자신은 또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가 있다. 그 대가로 내는 학비는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서 연간 12만 원정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적은 돈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가? 영국 런던에 있는 U3A의 경우 상근하는 교직원이 4명인데 전원 자원봉사자들이다. 강의를 하는 교수들도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다. 학생들이 내는 학비는 건물임대료를 내거나 소모품 등을 구입하는데 쓰일 뿐이다. 이곳에서는 1,600명의 학생이 등록되어 있으며 강좌는 140개에 이른다고 한다.

나는 영국의 U3A의 예를 들어 카페를 운영하는 자원봉사자에게 당신도 교수가 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가 펄쩍 뛰었다. 자기는 학력도 변변치 못하고 아는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카페 운영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강의를 당신이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아닌가 하고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건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아마 그가 강의를 한다면 그의 경험이 비슷한 업종을 창업하려는 분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3.미래의 꿈을 위한 실천

나의 지식이 어떤 사람에게 필요하고 또 다른 사람의 지식은 나에게 필요하다. 이것이 U3A의 교육원리다. 즉 내가 아는 것을 가르치고 내가 모르는 것은 남들에게 배운다는 것이다. 얼마나 단순하지만 멋진 생각인가. 나는 U3A에 대한 자료를 보며 쾌재를 불렀다.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을 찾은 것이다. 아트센터에서 자원봉사를 그만 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맡긴다면 아마 훌륭히 해낼 것이다.

분당지역에서 방송을 진행하며 알게 된 인맥들, 그리고 자원봉사를 원하는 분들을 활용하면 강의를 진행할 사람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준비했던 것을 활용하면 몇 꼭지 정도의 강좌는 나도 할 수 있다. 주위에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많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설에도 있지만 생리적 욕구가 해결된 사람은 학습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소는 어떻게 구할 것인가? 분당에는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공기업이 여럿 있다. 그리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교회도 있다. 물론 사기업도 많다. 이들의 유휴공간을 활용하면 될 것이다. 요즘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사회 공헌에도 애쓰고 있으므로 장소를 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내가 초대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분당지역의 동호인 연합회 사랑방클럽에선 지역의 교회 및 병원 등과 자매 결연을 맺고 유휴공간을 서로 빌려주고 있다. 인근 지역의 기관장에게 타진을 해보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한다. 가르칠 사람도 있고 배울 사람도 있으며 장소도 있다. 이젠 이것을 조직해 주기만 하면 된다.

최근 나는 학교 사무국 역할을 할 장소를 하나 매입했다. 분당에 있는 29평짜리 오피스텔이다. 우선은 이곳을 활용하여 강좌를 열고 점차 과목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1주 1회 강의를 연다면 이곳에서도 20여 개의 강좌를 개설할 수 있다. 또한 하우스콘서트와 같은 작은 음악회를 열거나 아마추어 화가의 그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도 이용할 것이다. 시니어들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 해도 나는 행복하다.

백만기 eggtree@daum.net

공모전 주관 국민연금공단. 주최 보건복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