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아내 이윤숙 대안공간 눈 대표는 조각가였고, 남편 김정집 눈 갤러리 관장은 경영학을 전공한 미술인이었다. 부부는 함께 여행을 다니고 같은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고 같은 꿈을 꿨다. 운영하던 학원사업을 접고 대대로 살아오던 집을 개조해 갤러리를 만들고 이웃집 담벼락에 그림을 그렸다. 낙후했던 동네가 커다란 갤러리가 됐고 부부는 더욱 행복해졌다.

대안공간 눈은 행궁동 내 법정동 중 하나인 북수동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미술관으로 담쟁이덩굴로 뒤덮은 입구는 새하얀 건물과 어우러져 아기자기한 느낌을 자아낸다.

“어서오세요. 그런데 어쩌나 오늘 벼르고 별러서 오랜만에 공간을 바꿔보려고 짐을 죄다 끄집어냈더니 너무 어수선하네요. 그래도 어서 들어와요.” 백발의 짧은 단발을 하고 수수한 개량한복 차림의 이윤숙(52)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이한다. 하던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이것저것 주섬주섬 옮기고 치우더니 카페처럼 보이는 공간으로 안내했다.

“원래 이곳은 카페랑 사무실, 아트숍을 겸해 사용하고 있는데 짐도 너무 많고 공간을 다용도로 사용하다 보니까 정신도 없어서 정리 좀 하려고 했어요. 여기 앉아요.”

40년 살던 주거 공간 헐고 세운 갤러리
커다란 나무탁자 쪽에 자리를 권했다. 내부를 둘러보니 각종 그림과 예술적 감각이 물씬 풍기는 조각품,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간 예술가들이 주거나 가져다 놓은 것, 제가 작업한 것들이예요. 이 탁자도 우리가 직접 만들었고 여기 있는 의자들은 재활용하기 위해서 버려진 것들을 가져왔어요. 보세요. 모양이 다 제각각이잖아요. 호호.”

우리가 앉은 옆 테이블에서는 막 점심식사를 마친 김정집(56) 눈 갤러리 관장이 테이블을 조용히 정리하고 있었다. 역시 희끗한 머리에 편안한 개량한복 차림이었다.
대안공간 눈은 지난 2005년 4월에 개관했다. 40여년 넘게 주거공간으로 사용하던 곳을 개조해 대지 90여 평에 20여 평 규모의 제1전시실과 10여 평의 제2전시실, 작은 윈도우 전시실과 북마켓, 10여 평의 아트숍 겸 카페, 30여 평의 야외전시공간으로 꾸몄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이 집은 저희 시아버님이 손수 지으셨어요. 토목기사셨는데 이 집을 짓다가 돌아가셨죠. 결혼해서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기도 했어요. 집이 어려울 때 세를 놓기도 했는데 어머님 돌아가시고 개조해 지금 같은 공간이 된 것입니다.”

‘조화로운 삶’ 감명 받고 부부의 삶 전환
이윤숙 대표와 김정집 관장은 수원 토박이다. 아내와 남편은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다. 성신여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니던 이윤숙씨가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미술학원을 김정집씨가 인수하면서였다. 남편은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미술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고 조예가 깊었다.

“남편이 조건 없이 작업실을 빌려줬어요. 고등학교 때 미술부 활동을 했던 남편은 대학진학도 미술과를 하고 싶었으나 집안 형편상 그리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열심히 하는 후배들을 보면 돕고 싶어 했고 저도 도움을 받았던 거예요. 그렇게 가까워졌고 1988년도에 결혼을 했죠.”

두 사람은 결혼 후 수원 장안사거리 부근에서 입시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입시학원이다 보니 돈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벌 수 있었다. 남편은 학원 경영을 주로 담당했고 아내는 미술학원과 대학원 등지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틈틈이 개인전도 준비했다.

미술이라는 공감대가 있어서였을까. 남들은 ‘결혼은 현실’이라며 아웅다웅 싸웠지만 이들의 결혼생활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물론 냉혹한 현실 앞에 힘든 시간도 겪었다. 아내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님을 모시면서 학원 일에 집안일까지 해야 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 부부는 지치지 않았다. 늘 함께 하면서 끊임없이 대화를 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마흔 살이 되던 1999년 부부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우연히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가 쓴 <조화로운 삶>이란 책을 읽게 됐어요.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이렇게 살자고 이야기했고 자연과 호흡하면서 작업도 하고 봉사하면서 살자고 다짐하게 됐죠.”

집을 개조해 갤러리를 만들자고 한 건 남편의 제안이었다. 지역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돈을 벌어 가족이 생활하기에 부족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역을 위해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오던 터였다. 평소 부부는 수원 지역 발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들은 자주 배낭여행을 다녔는데 인도와 네팔, 히말라야 그런 곳을 다니면 늘 자신들이 살고 있는 수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좋은 곳을 보면 수원은 더 좋아질 수 있는데 왜 발전이 안 될까 항상 안타까워했습니다. 실제로 IMF이후 수원시내엔 개인 화랑이 한 개도 없을 정도로 문화예술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갤러리를 만들어서 어려운 후배 작가들이 비빌 언덕도 만들어주고 이 지역 주민들에게도 예술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자고 했어요.”

부부는 결심 직후 바로 집을 비우기 위해 시골로 이사를 감행했다. 화성 봉담으로 거처를 옮긴 뒤 원래 살던 집은 개보수를 시작했다. “처음에 이곳을 전시공간으로 꾸민다고 했을 때 동네 어르신들이 여기에 투자하지 말라고 많이 말리셨어요. 한때 이곳이 화성 성역화사업으로 민속촌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금방 헐리게 될 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거였죠. 그렇지만 우리 부부의 생각은 달랐어요. 판에 박힌 개발로 박제 같은 민속촌이 들어서는 것보다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면서 지역을 활성화 할 수 있는 그림이 보였거든요.”

마을 벽화 그리고 예술동네 만들기 8년째
북수동에 눈 갤러리 문을 연 후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지금까지 눈갤러리를 거쳐 간 작가들만 해도 약 140~150명 정도가 된다.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때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해외 유학을 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려고 했다. 문화향유자인 지역주민들 중엔 해외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꽤 많다. 특히 문화재보호법 등 개발제한에 묶여 있는 수원 행궁동은 60~70년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정도도 정체되고 낙후했다.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없는 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해주고 싶었다.

두 번째 원칙은 오랫동안 활동을 했지만 큰 빛을 못보고 고민에 빠진 작가들에게 자신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전시회를 열었다. 세 번째로는 예술활동을 하다가 결혼, 출산, 취업 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경력단절 된 예술가들이 다시 활동을 재개하는 무대로도 활용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작가들이 거쳐 갔고 다양한 작품들을 고루 전시할 수 있었다. 전시관은 철저히 무료로 운영된다. 작가들에게 전시관을 대관도 무료로 해주고 전시회도 무료로 운영한다.

작가들이 많이 모여 들면서 부부는 작가들이 지역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2009년 화성 안에 있는 철거예정 건물을 작가들의 창작공간으로 내주는 행궁동레지던시를 시작했고 2010년엔 전 세계 아티스트들을 모아 국제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작가들은 행궁동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직접 만나 대화하면서 골목 곳곳에 주민들을 주체로 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해보고 싶은 일 할 때 모두가 행복해
대안공간 눈은 지난 2010년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 ‘행궁동 사람들’을 개최하며 기획전시 ‘2010년을 사는 화성담장사람들’ 생활예술프로젝트 ‘동네방네 골목전시장’ ‘주민 솜씨전 및 마침 보람잔치’ 등도 진행했다. 2011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골목길 GMD-행궁동을 걷다’를 개최했는데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대안공간 눈은 지난해 11월 제6회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과거엔 완전히 회색도시에 주민들의 표정도 불만이 가득해 보였는데 마을이 변하기 시작하자 주민들의 표정도 밝아지기 시작하더라구요. 지금은 동네 전체가 밝아졌죠. 이사가려는 사람도 많아졌는데 이젠 주민들은 물론 외부 사람들도 동참하기 위해 마을을 찾고 있어요. 예전에 흉흉했는데 이젠 화기애애한 마을이 됐어요.”

올해는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 행궁동 사람들 2012을 진행하고 지난해부터 마을기업 ‘행궁솜씨’를 설립해 작가들과 지역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작업과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도 어른신솜씨발굴 프로젝트를 비롯해 내년도 행궁동에서 치러질 세계생태교통페스트벌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생태교통페스티벌이 내년 9월 행궁동에서 열리는데요. 차가 없이 한 달 동안 축제로 재밌게 풀어가는 행사입니다. 축제를 위해 마을안내소를 만들고 현재는 수원천 매향동 다리밑 갤러리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마을 어르신들이 저만 보면 행복하게 해줘서 고마워라고 한다”며 “너무 보람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행복한 인생2막을 보낼 수 있는 비결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 동안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해서 그걸 통해서 나눌 수 있는 삶, 배워서 남 줄 수 있는 삶을 살아보는 것도 또 다른 인생의 즐거움과 묘미를 준답니다.” 부부의 미소가 훨씬 건강하고 밝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50+ 성공노트

자본금 미술학원을 운영하면서 모아둔 자금을 활용했다. 갤러리를 내며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을 버렸기 때문에 돈을 벌어 갤러리에 투자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아껴가며 아름다운 공간과 동네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현재까지 쓴 비용은 현금으로 약 2억원. 일을 하면서 후원회와 정부기관들의 지원 등으로 더 큰 사업을 할 수 있었다. 빚도 졌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을 만들어낸 지금 마음만큼은 부자다.

준비과정 및 기간 이 부부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건 아내 이윤숙 대표의 나이 40세 때였다. 갤러리를 내기 위해 학원이나 교육기관을 다니며 배운 건 없다. 이윤숙씨는 원래 조각가여서 계속 예술 활동을 해왔고 남편 역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지역 예술가들과 교류가 많은 편이었다. 그들은 인도와 네팔 등 틈틈이 여러 국가들을 여행하며 수원의 문제를 고민했다. 또 부부가 함께 독서를 했는데 그들의 행동에 결정적이 영향을 미친 책이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이었다.

성공노하우 역할분담을 현명하게 했다. 남편과 아내란 고정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각자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했다. 다소 내성적이고 나서기를 싫어하는 김정집 관장은 갤러리 내부의 업무를 주로 담당했고 말도 잘하고 설득을 잘 하는 이윤숙 대표는 대외업무를 주로 맡았다. 마을주민과 예술가 설득은 물론 관을 상대하는 일과 대외기관과 함께 사업시 협의하는 부분은 그녀의 몫이었다. 두 사람은 진정 자신들이 행복해 할 수 있는 일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해 하다 보니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조언한다.

김은경 기자 keki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