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코노믹리뷰 이미화기자]

1980년대 ‘맥가이버’를 기억하는가. 동명의 미국 드라마 주인공이다.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에, 순발력 넘치는 만능 해결사로 그에게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맥가이버가 서울 평창동에 떴다. 미드 속 젊은 외모는 아니지만 꽁지머리 휘날리며 작은 체구에 다부진 맷집을 자랑하는 이 남자. 온 동네를 누비며 박학다식함과 뛰어난 손재주를 뽐내는 이승덕(50)씨가 주인공이다. 인생 2막에 진짜 맥가이버로 변신한 그의 인기는 이 일대에서 대단하다. 오늘도 힘차게 출동하는 2012년 ‘평창동 맥가이버’ 그 실체를 규명해 보자.

맥가이버. 고치고 분해하고 만드는 걸 좋아해 어려서부터 붙여진 별명이다. 성인이 돼 회사에 다니면서도 이씨의 맥가이버 습성은 계속됐다. 건설 분야에 근무하며 지역의 공장 설계, 건물 내·외부를 꾸미는 작업 등 뭔가 손기술이 들어가는 일들은 모두 그가 도맡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결정적 사건이 발생했다. 10여년 전쯤, 일본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 접한 ‘토털 생활 서비스’ 사업에 확 눈을 떴던 것이다. 자신의 손재주 적성을 살릴 수 있는 데다 크게 번창하는 사업성까지 목격하니, 국내에서도 앞으로 상당한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씨는 그후 10년간의 회사 생활에 미련없이 마침표를 찍고 마흔 여덟에 제2 인생 개척에 나섰다. 도대체 토털 생활 서비스 사업이 뭐기에…. 주변에선 잘 다니고 있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반대하는 지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용기 백배했다. 그동안 독립적으로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일을 통해 온갖 경험을 해온 터였기에 새로운 세상과 맞닥뜨리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도전 의식을 자극했다고나 할까.

남다른 손재주 적성 살리고 사업성 확신해 창업 결심
이씨가 매료된 토털 생활 서비스는 집이나 상가, 오피스 등 생활에 필요한 간단한 수리에서부터 보수, 클리닝,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을 처리해 주는 서비스다. “일본에서는 ‘편리한 서비스’라고 해서 이삿짐센터까지 병행합니다. 손 하나 까딱않고 집안 일을 서비스 업체에 맡겨 모두 처리할 수 있죠. 한국에 돌아와 알아보니 토털 생활서비스 사업을 하는 곳이 몇 곳 있더라고요. 일본과 달리 이삿짐센터와는 분리된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청소 서비스 위주였고, 활성화 돼 있진 않았어요. 틈새시장을 공략하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지요.”

좋은 사업 아이템을 찾았다고 해서 무턱대고 회사를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그는 철저하게 ‘이중생활’에 들어갔다. 퇴근 후 저녁시간에는 생활서비스 관련 분야에 대한 이론 공부와 실습을 하루도 빼놓지 않았다. 남들은 직장 다니면서 배울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자신은 ‘독종’이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단다.

도배지, 철재와 같은 재료를 오차없이 정확히 잘라보고 못박기와 자재 조립, 리모델링 디자인 및 설계 등을 수없이 거듭하고 복습했다. 어떤 날은 늦은 밤에 용접 실습을 하다가 번쩍번쩍하는 불꽃에 놀란 이웃집 사람이 달려내려와 해댄 욕을 배불리 먹기도 했다. 건축·창업과 연관된 박람회는 죄다 찾아다니며 정보를 부지런히 입수하기도 했다.

‘평창동 맥가이버’를 찾는 고객 의뢰 전화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이승덕씨.


국내 토털 생활 서비스 시장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0년 사이 전문 업체들이 부쩍 늘어났고 청소 중심에서 벗어나 집, 오피스텔, 상가 매장, 카페 등 건물 내·외부를 포함해 눈에 보이는 영역을 다 아우르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었다. 사업 전망이 한층 밝아진 것이었다. 늘 불확실한 직장생활에 대해 고민을 떠안고 있던 그는 창업을 결심했다.

“정년이 점차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위의 조기 퇴직자들을 보는 게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과연 50대 이후 무엇을 하면서 즐겁게 먹고 살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죠. 그 해답이 바로 토털 생활 서비스였습니다.” 가족은 그동안 뭘 해도 이뤄냈던 강한 의지의 남편과 아버지의 결정을 이번에도 믿고 따랐다. 이씨는 “옆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가족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인지도·신뢰도 고려해 프랜차이즈 창업 선택
이씨는 개인 창업이 아닌 프랜차이즈 창업을 선택했다. 선정 업체는 ‘핸디페어’라는 회사였다. “직장에 다닐 때 인터넷에서 업체 검색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핸디페어의 지점들만 뜨는 거예요. 가맹점이 100여개 미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시간이 흐르고 2년쯤 뒤였나요? 다시 검색해 보니 가맹점 수가 300개로 늘었더군요. 그래서 이 회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확인 결과, 모체가 튼튼하다고 판단을 내린 그는 핸디페어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기로 결정했다. 가보지 않은 길을 홀로 헤치고 가는 것 보다는 든든한 누군가(프랜차이즈 업체)가 앞에서 당겨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인지도나 신뢰도 면에서도 개인 창업 브랜드에 비해 더 유리할 것으로 보였다. 실패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을 프랜차이즈 창업을 통해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씨는 핸디페어 본사와 바로 계약했다.

오랜 기간 충분한 사전 조사와 준비를 마친 끝에 그는 드디어 2010년 4월,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원하던 일을 그저 하루 빨리 하고 싶은 마음에 휴식기도 없이 곧바로 본사 교육장으로 달려갔다. 창업 이론을 비롯해 도배, 페인트, 공구 사용법 등 기초적인 기술 교육을 3주간 받았다. 창업할 점포도 구했다. 집에서 걸어 5분 거리인 평창동 한 골목에 36㎡(11평) 남짓한 사무실을 마련했다. 1400만원 이상의 자금이면 창업이 가능하다.

사무실 임대보증금이나 기계 및 자재 구입 비용에 따라 다르지만 이씨의 경우 기계 및 공구만 4000만~5000만원이 들었으며 총 1억원이 넘는 창업 비용이 들었다. “평창동 임대료가 비싼 편이에요. 이 분야 평균 창업 비용의 2배 정도가 더 든 셈이죠. 어차피 다른 곳에서 기계들을 가져 오면 기계 값을 또 지불해야 합니다. 아예 제 매장에 기계를 구비해 놓으면 기술자 인건비만 나가거든요.” 열흘간 점포 인테리어를 꾸미고 그해 6월, 이씨는 핸디페어 평창동점의 대표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주변인에게도 외우길 권하는 이승덕씨의 생활신조.


사무실 반경 2km ‘선택과 집중’ 고객신뢰 얻어
이씨에게 들어온 마수걸이 의뢰 건은 목욕탕 청소. 수입은 3만5000원이었지만 너무 꼼꼼히 잘 했다며 큰 만족을 표시한 첫 고객의 신뢰가 이어져 현재 최고의 고객이 됐단다. 초기에는 자신이 못하는 작업 의뢰도 많이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시간을 주십시오. 최대한 알아봐 드리고 가격도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대응했다. “소비자가 저를 초보자라고 인식하겠죠. 대신 정직한 마음으로 어필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의뢰했던 고객들도 역시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어요.”

현재 그가 하는 작업에는 인테리어, 리모델링, 수리, 보수, 도배, 창호 및 섀시 공사, 수전 배관, 보일러 시공 및 수리, 페인트·전기·조명·지붕·방수·마루 공사, 블라인드, 목공 작업, DIY 제작, 클리닝, 각종 철재공사 등 집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직원 1명을 두고 운영하며, 인력이 많이 필요할 때는 용역을 부른다. 전국 곳곳에서 의뢰가 들어오지만 이동 경비, A/S의 불편함 등을 고려해 평창동 사무실을 중심으로 반경 2Km까지만 집중한다는 것이 그의 전략이다.

의뢰가 들어오면 가능한 한 그날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보통 10여분 정도 걸리는 형광등 갈기, 2시간 소요되는 수도 교체 등과 같은 간단한 작업인 경우 하루에도 10건 이상씩 처리한다. 계절에 따라서도 주기가 있다. 봄부터 장마 전까지는 물 새는 것을 보수하거나 방충망 작업 등을 많이 하고 겨울에는 수도 해빙, 보일러 공사를 주로 한다. 가격대도 다양한 작업만큼이나 견적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형광등 갈기와 같이 간단한 서비스는 2만~3만원대예요. 만약 5명이 사흘 정도 일하면 15명의 품이 들고 재료값, 커피값, 이윤까지 총체적으로 포함해 계산해야 하죠. 몇 만원대에서 억대 공사까지 있습니다.” 그는 토털 생활 서비스의 달인 수준임에도 여전히 ‘열공’ 모드다. 기술력은 곧 자기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 생활 전반에 걸쳐 의뢰가 들어오므로 대부분의 관련 기술을 거의 익혀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프로 의식에서다. 그래야 고객에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주고 신뢰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입소문 마케팅 한몫…올해 10억원 매출 무난할 듯
인터뷰 중에도 서비스 의뢰 전화가 잇따랐다.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그에겐 단골 고객이 상당수라고. 코미디언, 영화배우 등 연예인 고객도 꽤 된다. 꿈을 향한 배움에 대한 열정, 하나둘씩 들어오는 작은 일을 열심히 내일처럼 한 정성, 꼼꼼한 손놀림, 한결같은 성실함이 고객과의 단단한 끈을 만들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사업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금방 끝나는 간단한 작업의 경우 비용도 안 받고 올 때가 많아요. 당장 받지 않은 1만원이 나중에 10만원짜리의 일로 들어오게 됩니다. 고객은 처음부터 비싼 서비스를 의뢰하지 않아요. 확실한 서비스 마인드와 신뢰가 다음 고객, 큰 공사 거리를 만드는 원동력이죠. 작업의 진행 과정을 전부 사진으로 찍어 프린트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건, 신뢰를 강화하는 남다른 저만의 비결이기도 합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3년째. 하루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단다. 장사가 잘 되니 돈도 많이 벌었겠다 싶었다. “올해 매출 목표요? 10억 원입니다. 지난해에는 다소 못 미쳤는데 올 2월부터 큰 공사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충분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월 평균 순수익이 700만원은 있어야 사업 유지가 된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점포 개설 뒤 3년 정도가 지나면 로열티 비용으로 본사에 내는 월 10만 원을 제외하면 발생되는 이익은 모두 가맹점주 몫이란다. 그는 토털 생활 서비스 사업의 미래를 밝게 내다봤다. 기존에는 설비 따로, 도배 따로 하루를 일 해도 몇 사람씩 불러야 하고 인건비도 개별적으로 나가는데 이 사업의 경우 한 사람이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객과 가맹점주 입장에서 모두 편리하다는 게 최대 장점이라고.

또 원스톱 서비스로 부가 서비스까지 제공하므로 비용 면에서도 훨씬 저렴하다고 했다. 2~3명으로도 사업 운영이 가능하며 1인 기업도 충분히 가능하다 점을 언급했다.
“이제는 못 하나를 박아도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갈수록 주택은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지어질 테니까요. 요즘 아내들은 남편이 못을 박지 못한다고 불평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콘크리트 강도가 훨씬 강해졌기 때문에 못이 튕겨 나가 박기 어려운 거죠. 타일 하나도 잘못 건드렸다가는 깨져서 전체에 금이 갈 수 있어요. 주택, 건축 관련 전문가가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몸은 고되지만 살면서 생기는 불편함을 고쳐 기쁨을 주는 일이 더없이 행복하다는 그. 지저분한 걸 깨끗하게, 멋있지 않은 걸 멋있게 바꿔놓았을 때 고객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취감이 최고로 치솟는단다. 물론 힘든 점도 있다. 서비스업에서 몸이 아픈 건 고객에게 핑계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물을 참고서라도 고객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또 갖가지 시공에 따르는 안전 문제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오늘도 이씨는 아침 일찍 전화를 받고 힘차게 출동한다. 그를 맞는 고객마다 반갑게 하는 말 “맥가이버 왔다.” 헌 집이 새 집 되는 평창동 맥가이버의 마법 같은 손기술은 마을 일대를 러브하우스의 물결로 만들어내고 있다.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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