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대한항공)

유럽 재정 위기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탈리아는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와 참 닮은꼴이 많은 나라입니다. 독재자가 통치한 경험이 있고 다혈질적인 국민성에 4계절을 누리는 날씨, 반도를 통해 3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것까지 비슷하죠. 로마가 1000년 역사를 갖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조선왕조 500년이 있죠. 그 만큼 사람이 살기에 좋은 지역이라는 얘기죠.

나폴리.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나폴리를 2000년 방문했을 때 느꼈던 실망감이 떠오르네요. 마치 청계천 뒷골목처럼 낡은 주거지역에 위치했던 4성급 호텔. 낭만을 꿈꾸던 그림 속의 풍경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곧바로 떠오른 것은 우리의 남해안 한려수도와 제주도였습니다.

낭떠러지 비탈에 사람 하나 겨우 오르기도 힘든 가파른 계단을 거쳐야 올라갈 수 있는 이탈리아의 집. 그 모습과 대조되는 잘 닦인 해안도로, 바다와 산, 농경지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우리 자연이 몇 배는 더 가치 있어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50+> 얘기로 돌아가 보죠. 얼마 전 제주도 출신 한 기업체 임원으로부터 제주도로 이주하는 은퇴자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산 좋고 물 좋은 제주도가 노인들 살기에 아주 좋아 그곳에 둥지를 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일리 있는 얘기로 들리더군요. 우선 당장 집값이 싸더군요. 예를 들어 서울의 30평대 아파트 전세금이 2억~3억원 정도 한다는 점을 가정하면 전세금 차이로 제주도에서의 생활비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더군요.

제주도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한다는 노형동 기준으로 봐도 요즘 지은 새 아파트는 30~40평대가 2억원대 중반에 거래되고 전세 시세는 1억5000만원 안팎입니다.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는 전세 5000만~6000만원대. 15평대는 2000만원에도 전세 물건을 구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제주도에 천주교 신도가 늘고 있다더군요. 타지에 와서 살면 같이 생활할 이웃이 중요한데 천주교회에서 같이 골프도 치고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동연배를 만날 수 있어 그렇다는 겁니다. 주로 월급쟁이 출신 은퇴자들이 많다네요.” 그 임원이 한 말입니다. 궁금증이 발동해 천주교 제주도교구청에 전화를 했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2009년에 비해 약 500여명 신도가 늘었다고 합니다.

제주도는 무려 300km에 달하는 올레길이 있습니다. 2007년 기자 출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만든 이 길은 관광명소가 된 지 오랩니다. 실제로 18개 코스에 코스당 15km에 달하는 올레길을 모두 도는데 노인 걸음으로 하면 1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여기에 각종 문화유산과 해수욕장, 동굴 등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갖고 있는 곳이 제주도입니다.

노인들이 쉽게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질병 때문입니다. 언제 어떤 응급상황이 올지 모르다보니 ‘귀농’이나 ‘전원생활’을 그야말로 꿈으로만 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주도도 의료 서비스가 낙후한 지역 중 한 곳이었죠. 하지만 지난 2009년 3월 제주대학병원이 최첨단시설로 준공돼 의료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300병상에 머물던 입원실도 530병상으로 배 가까이 늘렸고 수술실도 4개에서 11개로 확대됐습니다. 무려 1500억원이 투자됐다고 합니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걱정은 덜은 셈이죠.

제주도민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도 노후를 보내는데 보탬이 됩니다. 주요 항공사는 제주도민에게 항공료를 상시 10~20% 할인해주고 있습니다. 저가항공사인 제주항공은 특정 시간대를 정해 30%대의 할인율을 적용하며 최고 60%까지 깎아주기도 합니다.


골프장 할인 혜택은 제주도만의 혜택 중 혜택입니다. 주말만 피하면 웬만한 골프장의 제주도민 그린피는 5만원 정도이며 명문 골프장의 경우에도 10만원을 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보통시민이 골프를 즐기기에는 비용이 너무 비싸지만 제주도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마음껏 골프 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얘깁니다. 천주교회에 골프동호회가 있어서 비슷한 연령대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다고 합니다.

노후에 대비해 제주도에 투자를 고려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제주도는 특별법에 의해 특별자치도의 지위를 인정받아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지난 3월부터 투자이민제도가 시작돼 50만달러 이상을 투자한 외국인이 5년 이상 거주하면 영주권을 줍니다.

이 덕분에 라온리조트의 경우 지난 3개월간 108건에 536억원의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했습니다. 주로 중국인이라고 하더군요. 이러다보니 외지인의 부동산 투자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2010년 기준 외지인의 투자 필지 수는 두 배로 늘어났고 투자면적으로도 52.4%가 늘어났습니다. 그렇다고 큰돈이 들어가는 투자는 아닙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비하면 비교적 토지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아예 제주도에 전원주택을 지어서 사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전직 총리 출신 어르신은 제주도에 집을 짓고 1년의 절반은 제주도에서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제주도는 관광 산업 등 서비스 산업이 중심이기 때문에 혹 제2의 일자리나 창업을 생각한다면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주도가 노인이 살기에 적합하다는 것은 통계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통계청이 지난 달 발표한 ‘100세 이상 고령자 조사 집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100세 이상 고령자가 가장 많이 사는 도시는 제주도로 무려 58명에 달해 2위인 경기 고양시의 38명을 멀찌감치 따돌렸습니다.

물론 그 분들의 상당수는 제주도에서 나서 자라고 늙어가는 경우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거주한다면 장수의 복을 누리지 않겠습니까. 은퇴를 앞두고 있는 분이라면 부부 단둘이서 제주도 이주를 생각하면서 제주여행을 떠나보시면 어떨까요.

조영훈 기자 dubbcho@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