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내 나이 육십. 아이들 키우고 뒷바라지 하느라 그동안 모은 재산은 거의 다 써버렸고 늘 빠듯한 살림 탓에 개인연금은 가입할 엄두도 못 냈다. 자식이 내 노후를 책임져 줄 입장도 아닌데 앞으로 노후 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집(땅)을 팔기는 싫고…. 걱정이 앞선다.”

은퇴를 했거나 은퇴 시기가 다가올 무렵 별다른 노후 대책을 세워놓지 못한 사람들의 한숨 섞인 말이다. 노년층의 경우 집이나 땅 같은 부동산이 재산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갖고 있는 집이나 농지를 담보로 평생 생활비를 받는 주택연금과 농지연금이 최근 노년기 ‘재테크’ 수단으로 급부상했다.


정부 보증 역모기지 주택연금 증가세

주택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주택연금 가입자가 크게 늘고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 2월 주택연금 신규가입은 168건, 보증공급액은 2028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가입은 44%, 보증공급액은 22%가 각각 증가한 수치다. 하루 평균 가입건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 4.7건에서 올해 8.4건으로 79%나 증가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측은 “주택연금이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노후준비 수단이라는 인식 확산과 함께 신뢰가 높아지면서 가입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주택연금은 집을 담보로 사망 시까지 매월 일정액을 연금방식으로 받는 정부보증 역모기지론이다. 집은 있으나 소득이 부족한 고령자의 노후 대비책으로 적합하다. 평생 거주를 보장받으면서 연금도 평생 보장받는 유일한 연금제도다.

가입 대상은 주택 소유자(가입자)와 배우자의 나이가 모두 만 60세 이상이며 9억 원 이하의 주택만 대상이 된다. 부부 모두 주택을 1채만 소유하고 실제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

연금수령액은 연령과 주택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데 나이가 많을수록, 주택 가격이 높을수록 월지급금이 많아진다. 주택연금 대출금리는 현재 3개월 CD금리에 약 1.1%의 가산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현재 금리는 약 4.4% 수준. 은행의 우량고객에 대한 신용대출 금리보다도 낮을 뿐 아니라 국가가 공적 보증함으로써 연금 지급이 중단될 우려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또 등록세, 교육세, 농특세 등의 면제와 더불어 재산세 25% 감면의 세제 혜택도 주어진다. 주택연금 종료 시에는 주택 처분 가격과 비교해 남은 부분을 가입자(상속자)에게 돌려준다. 3억 원짜리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이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월 100만 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손성동 연구실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택을 상속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주택연금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주택연금 가입으로 주택 소유주가 바뀜에 따라 느끼는 상실감 역시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주택연금은 수령액이 상당하고 상속으로 인한 가족 간 불화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편안한 노년을 보내기 위한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아직까지 자녀에게 집을 물려주는 걸 선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전만큼 집값 상승률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주택연금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고령 농업인의 희망 ‘농지연금’

경기도 포천에서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김대수(69) 할아버지.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 부모가 노후에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지난 1월 농지연금에 가입했다. 3596㎡의 농지를 담보로 매달 50만8720원을 받는다. 김 할아버지는 “늙어서 자식들한테 손 내밀기 싫거든. 아름다운 노후를 보낼 수 있어 좋고 자식들도 기뻐하더라”고 말했다.

마땅한 소득이 없던 박완수(가명·77) 할아버지도 지난해부터 농지연금 제도가 시행되기를 학수고대했다. 올 초부터는 1만3676㎡의 농지를 담보 삼아 한 달 177만8760원씩 받고 있다. 박 할아버지는 “이제 내가 죽어도 연금으로 아내가 먹고 사는 데는 걱정이 없을 것 같아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은 농민은 농지가 있어도 마땅한 소득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농민들을 위해 땅을 활용한 연금도 등장했다. 논과 밭을 담보로 노후 자금을 평생 받을 수 있는 농지연금이 올해 처음 시작된 것.

고령 농업인이 소유한 농지를 담보로 제공하고 노후생활 안정자금을 매월 연금방식으로 지급받는 역모기지론으로, 가입자와 배우자 모두 평생 보장된다. 특히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금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자녀의 부양비만으로는 생활자금이 부족한 이들에게 적합한 상품이다.

가입 자격은 부부 모두 만 65세 이상이고 영농 경력 5년 이상에 소유한 농지의 총면적이 3만m2 이하인 농업인이다. 농지연금은 생존하는 동안 매월 지급받는 종신형 지급방식과 일정 기간 매달 지급받는 기간형 지급방식이 있다. 기간형 지급방식의 경우 기간을 5년과 10년, 15년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배우자가 승계를 받게 되면 남은 기간 동안만 수급이 가능하다.

이제 80일을 막 넘었지만 가입자가 500명이 훌쩍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고령화 추세 속에서 농지연금이 각광받고 있는 것은 연금을 받으면서 농지소유권을 갖고 직접 농사를 짓거나 임대함으로써 추가소득까지 올릴 수 있기 때문이란 게 한국농어촌공사 측의 설명. 나이가 많고, 농지가 비쌀수록 연금액이 늘어나는데, 70세 농민이 공시지가 기준으로 2억 원짜리 땅을 맡기면 매달 77만 원 정도를 받게 된다.

농촌 노후해결사 농지연금 Q & A

■연금 수급 중에 농지 가격이 떨어지면 추가로 담보를 제공해야 하나?
농지연금 제도는 농지 가격이 떨어져도 약정 시 정한 월지급금을 평생 동안 지급함으로써 고령 농업인의 노후생활 안정을 기여하는데 목적이 있다. 월지급금은 이미 농지 가격 하락 위험을 감안해 설계됐으므로 가입자는 이에 대해 추가로 담보농지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

■가입자 사망 시 배우자가 연금을 계속 받으려면 어떻게 하나?
농지연금은 부부 모두 평생 지급을 보장하도록 설계돼 가입자가 사망하더라도 배우자는 사망할 때까지 동일한 금액의 월지급금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가입자 사망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배우자 명의로 담보농지의 소유권을 전부 이전하고 농지연금채무인수를 완료해야 한다.

■가입자 사망 시 배우자가 아닌 상속인에게 담보농지 소유권이 이전된다면?
농지연금은 가입자 사망 시 배우자가 소유권 이전등기 및 농지연금 채무인수를 완료하면 농지연금을 계속 받을 수 있는 부부보장형 연금제도다. 그러나 연금수급자가 사망하면 배우자가 아닌 자녀 등에게 담보농지의 소유권이 이전된 경우 배우자에게 농지연금이 지급되지 않으며 농지연금 약정은 해지된다.

■연금 수급 중에 소유농지의 총면적이 3만㎡를 넘으면?
연금 가입이 제한된다. 단, 농지연금 가입 후에는 가입자 소유 농지의 총면적이 3만㎡를 초과하더라도 월지급금이 중단되거나 약정이 해지되지는 않는다. 추가로 연금에 가입하고자 할 경우에도 소유 농지 총면적이 3만㎡를 초과하면 가입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가입할 수 없다.

■목돈이 필요한 경우 일시에 월지급금을 받을 수 있나?
월지급금을 일시에 받을 수 없으며 중도 인출할 수도 없다. 초기에 많은 돈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는 일정기간 동안만 월지급금이 지급되는 기간형 농지연금을 이용할 수 있다.

전희진 기자 hsmil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