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오감 자극 퓨전요리도 성공시대… 한식 콘텐츠 수출 해외매장 추진

변화를 쫓는 이들은 트렌드를 발 빠르게 포착한다. 남들 보다 앞서 나가는 비결은 멀리 있지 않다. 꾸준한 관심이 그 시대의 트렌드에 걸맞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낳고, 우연한 기회에 사업의 발판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원하는 일에 입문해서도 공부와 연구를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춘다면 길은 여러 갈래로 뚫리게 된다. 새로운 길에 나서 인생 2막을 개척하는 시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일찌감치 새 인생의 지평을 열 수 있는 것.

다만 과거의 경험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한 밑거름으로 작용하므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고급 한정식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기호(50) 대표는 이 모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정보에 밝으며, 꾸준히 관심사를 탐색한다. 김 대표가 젊은 시절 종사했던 일을 접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비결도 여기에 있다. <편집자 주>

김기호 대표는 한정식 전문점 ‘초록바구니’의 대표이사 겸 셰프다. 처음 외식업에 뛰어든 시기는 13년 전으로 음식점 창업 경험이나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다. 1998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백석동 허허벌판에 ‘풀잎사랑’이라는 상호로 음식점을 오픈하기 전까지 김 대표는 지금과 전혀 다른 인생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무역업 실패 계기 외식사업 새 승부

김 대표의 첫 직장은 포항제철이었다. 이곳에서 5년을 일한 뒤 그만두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무역에 관심이 많아 외국에서 무역학을 공부한 김 대표는 한국에 돌아온 뒤 수출에 뜻을 두고 무역업을 시작했다.

무역 대리업을 하기도 했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으나 먹고 살기에 지장이 없는 수입을 유지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 김 대표의 무역업도 위기를 맞았다. 외환 위기가 터진 후 환율이 오르자 수입업체가 타격을 입는 시기였다.

공교롭게도 김 대표의 회사는 외환 위기 발발 직전 주력 사업을 수출에서 수입으로 전환했다. 외환 위기와 함께 고가에 수입한 물품들의 재고량이 증가했다. 막심한 손해를 입은 김 대표는 빚과 함께 1000만 원의 현금 만을 남기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가장 왕성하고 가장 고민이 많다는 30대 후반에 맛본 실패는 김 대표를 주저앉히지는 못했다. 평소 한식에 관심이 많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던 김 대표를 늘 곁에서 지켜봐왔던 아내가 하루는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점 사업을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김 대표는 접대가 많은 무역업을 하면서 외국의 유명 음식점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김 대표는 음식점에 들를 때마다 음식과 고객 서비스 등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고 평소에 된장찌개 등 웰빙음식쪽으로 요리하기를 좋아했다. 따라서 자신이 오랫동안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음식업으로 새 출발을 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당시 가진 돈으로 음식점을 여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우선 가게 자리부터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한달정도를 돌아다닌 끝에 보증금 600만원에 월세 50만~60만원하는 가게를 찾았다. 주변 유동인구가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적은 돈으로 출발하니 감수할수 밖에 없었다.

사업장을 임대한 후 김 대표는 5일간 어떤 음식점을 경영할지 고민했다. 김 대표는 “어차피 가게 주변에 유동 인구가 없으니 고급 식당을 차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래서 떠오른 것이 채식이었다”라고 말했다. 채식 요리를 코스로 선보이기로 한 것. 한정식을 코스 요리로 내어놓는 식당이 거의 없었던 시기였다. 음식점 이름도 신선한 채식을 연상케하는 ‘풀잎사랑’으로 지었다.

풀잎사랑은 비빔밥, 된장찌개 등 단품 요리와 함께 채식 요리를 1만 원, 1만5000원, 2만 원 가격대의 코스로 팔았다. 처음 매장을 열고 보름간은 매출이 거의 없었다. 비빔밥 한 그릇도 못 팔고 가게 문을 닫은 날도 있었다.

심지어 김 대표는 손님이 한 명도 방문하지 않은 날에는 아침에 준비한 재료를 저녁에 그대로 내다 버리기도 했다. 김 대표는 “당시에는 사업자보다 소비자의 마인드가 강했다”며 “고객에게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내놓고 싶었다”고 밝혔다. 보통 2~3일에 한 번씩 음식 재료를 구하러 직접 시장에 나갔다.

그렇게 해서 첫 달에는 장사 매출이 100만 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후로는 가게 매출이 신기할 정도로 계속해서 오름세를 탔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아이디어와 본인의 사업 수완이 좋아서 손님이 늘어났다는 생각에 김 대표 스스로 자만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근처에 일산에서 유일한 성당이 있었는데, 단체 고객 중 성당 신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했기에 매출이 올랐던 것이다.

고급 식당답게 직원 서비스에 최선을 다했으며 실내 분위기 또한 차분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점도 고객을 끌어 모으는데 한 몫 했다. 또 김 대표는 외국에 있는 한식당의 취약점을 보완하려고 애썼다. 긴 테이블이 늘어서 있어 고객이 많은 시간에는 소란스럽고 북적대는 외국 내 한식당 분위기를 벗어나 정갈한 느낌을 살리는 내부 인테리어에 주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에 월 매출이 100만 원에 불과했던 풀잎사랑은 40개월째에 월 매출 3500만 원을 기록했다. 장사가 잘 되는 12월에는 6000만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못다 핀 교육자의 꿈… 컨설팅 사업 인도

김 대표는 애초에 교육자의 꿈을 품고 있었다. 다독의 습관을 가졌을 뿐 아니라 매일 신문을 4부씩 꼼꼼히 챙겨보는 김 대표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관심이 많다. 처음 풀잎사랑을 창업했을 때에도 가게 경영을 아내와 함께하며 새벽에는 학원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을 정도로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았다.

풀잎사랑이 어느 정도 매출 성과를 올리자 김 대표는 다시 교육에 뜻을 품게 됐고 자신이 식당을 창업한 경험과 여러 가지 서적을 통해 얻은 정보를 토대로 컨설팅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풀잎사랑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일산의 한 빌딩 8층에 사무실을 얻었다. 그러나 막상 컨설팅업을 시작하려니 관련 정보가 부족했고, 당시 중학교에 들어가는 첫째 자녀를 비롯해 두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걱정 또한 앞섰다.

그리하여 이미 풀잎사랑을 통해 외식업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던 김 대표는 컨설팅업을 포기하고 지금의 ‘초록바구니’ 브랜드를 론칭 했다. 초록바구니를 창업한 김 대표는 또 다른 변화를 꾀했다.

육류와 어류를 포함해 한식에 새로운 요리 기법을 접목한 퓨전 한식 코스를 선보인 것. 이때부터 김 대표는 직접 한식 요리 연구 비법을 담은 책을 쓰기 시작했다. <자연한식 레시피>와 <분자요리의 첫걸음>은 여기서 탄생했다.

그의 요리 연구도 다양한 방법으로 행해졌다. 화학조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자연식 위주의 한식을 약 10가지의 코스로 선보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줬다. 산채비빔밥, 해물된장찌개 등 몸에 좋은 한식 요리가 대부분이었다. 분자요리라는 생소한 분야에도 도전했다.

김 대표는 “가게 근처에 사법연수원이 있어 연수원생들이 많이 왔다”고 말한다. 교수나 사법연수원생, 의사 등의 고객층이 고급 한정식에 대해 높은 수요를 형성했던 것이다. 김 대표가 운이 좋았기에 장사가 잘 됐다고 설명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갑작스럽게 가게를 옮겨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장사가 잘 되자 건물 임대인이 임대료를 계속 올려달라고 요구해 왔기 때문. 가게를 찾는 손님이 늘자 주차 공간이 부족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김 대표는 지금의 초록바구니가 위치한 이촌동에 2009년 가게 터를 옮겼다.

김 대표는 “가게를 옮긴 후로도 13년째 내가 개발한 요리를 찾는 단골고객이 있다”며 “처음 가게를 찾는 고객의 재방문율이 30% 정도만 되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매출이 꾸준히 올라 초록바구니는 현재 5000만~6000만 원 가량의 월 매출을 기록 중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 미국 뉴욕과 호주 시드니에 각각 초록바구니의 점포를 하나씩 내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김대표는 외국 땅에서 현지인들이 한국음식점을 여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
본인이 개발한 코스요리를 스탠더드화 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차별화된 메뉴는 시장에서 나온다”

김 대표는 음식점 경영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시장을 직접 가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주일에 4번 이상 시장에 가서 직접 음식 재료를 고르는 김 대표는 “유통업체가 납품하는 재료만 받게 되면 타 업체와 같은 가격에 같은 품질의 재료로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 말한다.

시장에 나가 직접 다양한 식재료들을 살펴보는 것이 차별화된 메뉴를 만드는 기본 요건이라는 뜻이다. 다양한 재료는 색다른 메뉴를 개발하는 소스로 작용한다.

김 대표에게는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남다른 도전 의식이 있다. 그만큼 초록바구니의 한정식 코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양식과 달리 코스 요리가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한식 분야에 본인이 개발한 코스 요리를 스탠더드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죽이나 샐러드 등 코스 요리의 메뉴를 바꿔보며 고객의 반응을 살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대표는 “쉽지 않겠지만 향후 10~20년 안에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한식의 세계화는 흔히 전문가들이 주창하는 한식 세계화와 다르다. 많은 이들이 세계화를 위한 한식을 개발해 외국인들에게 선보였지만 아직까지 한식은 일식에 비해 현지인들에게 대중화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이태리 음식 전문점, 프랑스 음식 전문점 등을 경영하는 이들이 대부분 한국인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한식의 세계화는 곧 “외국 땅에서 현지인들이 한국 음식점을 여는 시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코스 요리가 발달한 국가에서 정형화된 한식 코스가 어필할 수 있다는 전망은 이 같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 밖에도 김 대표는 단순히 반찬 가짓수만 늘리는 것보다 음식을 소비하는 이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푸드 스타일링’에 노력을 기울인다. 초록바구니의 음식은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다는 평이 나오는 까닭이다.

요즘 김 대표는 과거의 꿈이었던 컨설팅을 부업으로 삼고 있다. 김 대표와 같이 음식점 창업을 원하거나, 한식 메뉴 개발을 원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아는 정보를 토대로 상담을 해 주고 대가를 지불받는다. 현재까지 5건의 컨설팅을 제공했으며, 앞으로도 고객 수를 늘려갈 예정이다.

또한 김 대표에게는 제3의 목표가 있다. 당장 올 해에도 요리 연구에 관한 책을 내기 위해 준비 중인 그는 콘텐츠의 생산 면에서도 앞서가는 견해를 보인다. E-BOOK(전자책)용 콘텐츠를 생산, 영상까지 가미해 다양화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또 과거 종사했던 무역업의 노하우를 살려 한식 요리와 관련된 콘텐츠를 외국에 수출하는 길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계획대로 경험과 흥미, 노력이 삼박자를 갖춰 그에게 인생 3막을 열어줄지 기대되는 바이다.

분자요리서 길찾은 초록바구니 경쟁력

김 대표는 초록바구니에서 선보이는 한식에 분자요리법을 접목시켰다. 분자요리란 음식의 질감과 조직, 요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새로운 맛과 질감을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1988년 프랑스에서 개발됐으며 스페인의 엘불리 레스토랑이 전 세계적으로 분자 요리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분자요리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분자요리의 첫걸음>에서 “원재료의 맛의 최대치를 찾아내 화학적인 과정을 반영시켜 이상적인 요리를 만드는 것이 분자요리의 핵심”이라고 표현했다. 음식의 자체 수분이 빠져나가지 않으면서 재료가 물과 직접 접촉하지 않아 영양 손실을 줄이는 특징이 있다.

초록바구니의 요리 중 대표적인 분자요리는 청양고추 아이스크림이다. 청양고추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매운 맛을 내지만, 함께 곁들여 먹는 호두과자가 혀를 자극하는 매운맛의 통증을 정화시켜 준다. 공기떡도 주목 받는 메뉴다. 입 안에서 공기처럼 녹아 없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백가혜 기자 lit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