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야수》
- 토마스 뮐러 지음 - 김태희 옮김
- 황소자리 펴냄 - 1만3800원

범죄를 대할 때 사람들이 범하는 첫 번째 오류는
바로 ‘야수’를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턱없는 믿음이다.
하지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카인의 징표’를 새기고 다니는 건 아니다.

한 사람의 욕망이 일그러지는 결정적 계기는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과 연쇄살인범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계기는
바로 ‘소통의 가능성’이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해서 ‘나는 세 사람을 죽였다’라는 카인의 징표를 이마에 새기고 다니는 건 아니다. 루츠 라인슈트롬 역시 그랬다. 잘생긴 얼굴, 절제되고 위엄 있는 태도, 신중하면서 사려 깊은 단어 선택….”

토마스 뮐러는 1990년대에 독일에서 여자 두 명을 염산에 담가 죽여 ‘염산 살인마’로 유명한 루츠 라인슈트롬의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유럽에서 최초로 범죄수사에 심리학을 도입했으며 현재 오스트리아 경찰의 범죄심리부서를 이끌고 있는 세계적인 프로파일러이기도 한 이 책의 저자, 토마스 뮐러가 지금껏 무수한 범죄 현장을 뛰어다니며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은 범죄자와 알고 지내던 주변 사람들의 태도의 변화였다.

범인이 체포되면 처음에 그들은 한결같이 “그 친절한 사람이 그럴 리 없어. 얼마나 선하고 상냥했는데”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사람들의 말은 180도 달라졌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이 사람은 항상 뭔가 이상했거든.”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일반인들이 범죄를 대할 때 드러내는 첫 번째 오류가 숨겨져 있다. 바로 ‘야수’를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턱없는 믿음이다. 하지만 뮐러가 경고하듯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라고 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카인의 징표’를 새기고 다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 첫 번째 오류는 악이 매우 멀리 존재한다고 믿는 두 번째 오류를 자연스럽게 동반한다. 하지만 구타당하고 사기당하고 강간당하고 기만당하고 살해당한 사람들은 (그가 말을 할 수 있는 상태라면) 대부분 가해자 이름을 댈 수 있을 정도이다. 이 때문에 뮐러는 독자들에게 ‘적은 너의 집 그늘 아래 있다!’는 수단의 속담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리고 지은이는 바로 이 같은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프로파일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살인범은 고급 차량을 소유한 30대 중반의 호남형일 것이다.’ 범인 체포와 자백에 프로파일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프로파일러란 말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게 됐다. 일반인들이 들여다볼 수 없는 범인의 병적 심리와 행동 매커니즘을 찾아내는 프로파일링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생각하듯 프로파일러란 범죄수사의 주체가 아니라 그저 조력자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 최고의 프로파일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저자에게 기자들은 ‘야수’들의 세계는 어떠한 곳이냐고 종종 묻는다고 한다. 수많은 흉악범들을 직접 만나보았으므로 이제 뮐러 자신이 ‘야수’들의 머릿속을 훤히 꿰뚫고 있을 것이라 단정하는 기자들에게 뮐러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자신은 야수들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고. “대체 내가 어떻게 아홉 살 먹은 아이의 머리를 곤죽이 되도록 내리치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다만 자신은 한 사람의 행동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 유사한 범행을 이미 저질렀던 사람과 비교하고 그 속에서 범죄자의 욕망을 읽어내려 노력할 뿐이라고.

즉 수사를 통해 범인을 직접 잡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들의 행동 속에 숨겨진 욕망을 읽고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진짜 원인’을 탐색하는 것이야말로 프로파일러가 맡아야 할 임무라는 것이다.

1982년 대학 재학 중에 자신의 오토바이 번호판을 압수하려던 경찰관과 흥미로운 사건을 겪은 이후 뮐러는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는 일에 흥미를 느껴 경찰학교에 들어간다. 이후 경찰에서 노숙자, 알코올중독자, 매춘부, 소소한 범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대학에서 다시 심리학을 공부하며 본격적인 프로파일러의 길을 걷게 된다.

오스트리아 경찰의 보안국 근무를 거쳐 미국 FBI 행동과학부에서 공부하던 시절, 저자는 마치 흡혈 진드기가 사슴피를 빨듯 치열하게 범죄 현장의 정보를 흡수했다.

다른 사람의 서류를 빌려 그들이 퇴근한 후 사무실에 남아 읽었고, 끔찍하게 난자된 사체 사진들을 입수하기 위해 자신이 입고 있던 이탈리아산 명품 양복을 기꺼이 헌납할 정도였다.

범죄심리학 창안자이자 영화 《양들의 침묵》의 실제 모델인 로버트 레슬러를 만난 것도 이때였다. FBI에서 두 사람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사건을 탐색하고, 희대의 연쇄살인범들과 지속적인 면담을 하며 이론 체계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나아가 범죄 수사에 참여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공조를 이루어 프로파일링 기법을 더욱 단단하고 풍성하게 발전시켜 왔다.

저자는 전 세계 범죄 현장을 돌아보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경악하곤 했지만, 수많은 사건 현장을 분석한 결과 한 사람의 욕망이 일그러지는 결정적 계기는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 준다. 그가 이 책에서 들려주는 한 남자의 이야기처럼.

회사에 모든 걸 바쳤음에도 점점 거세게 몰아치는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된 중년 남자. 사람들의 냉소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불안과 스트레스는 그를 폭발 직전의 상태까지 몰아갔고, 마침내 그는 이해받지 못하는 세상과 단절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갈림길에서 한 사람은 시청에 난입해 폭탄을 터뜨리고, 다른 사람은 마지막 순간 눈물을 흘리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왜 두 사람은 다른 선택을 했을까?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계기는 바로 ‘소통의 가능성’이었다. 비록 실낱같은 희망일지라도, 그 빛을 찾느냐 아니냐에 따라 평범한 한 개인의 삶은 정반대의 국면으로 갈릴 수 있다고 뮐러는 강조한다.

나아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버려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양산하는 현대사회야말로 우리 안의 야수 본능을 일깨우는 주범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주변부로 밀려난 채 무력해진 무수한 사람들이 폭력적인 환상 속으로 도피하고, 그곳에서 블랙홀처럼 비대해진 욕망은 소통이 봉쇄되는 순간 야수의 모습으로 돌변하게 된다고. 현대사회를 향한 이 같은 반성적 성찰이야말로 책을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범죄심리학 분야의 전문가가 쓴 논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염산살인마’ 라인슈트롬과의 긴장감 넘치는 면담 장면과 저자가 범죄심리학자로서 이제껏 겪은 경험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되는 책의 구성은 마치 스릴러 소설을 읽듯이 연쇄살인범들의 발자국을 따라 악의 심연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간 사람들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이형구 기자 ninele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