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도처에서 수입차 외적들이 창궐해 우리 영토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시바삐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이옵니다.”

“그렇다면 그랜저 장군에게 디젤 갑옷을 하사하니 속히 외적을 소탕하고 평안을 되찾아오라. 그랜저 장군은 이미 30년째 중원 평정의 경험이 있고, 최근에 하사한 하이브리드 갑옷을 활용하면 장수 시험에서도 외적들을 무찌르고 당당히 1위를 수성(守城)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현실을 과거라는 거울에 비춘 것일 뿐이다. 지난해 수입차 비중이 전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무려 13%를 차지하는 등 매년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며 진군가를 부르고 있다. 수입차 열풍의 진원지는 단연, 대형 디젤 세단이다. 국내 고객 입장에서는 그동안 가솔린 차량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저렴한 연료비, 높은 연비에 탁월한 가속력까지 갖추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덜덜거린다’는 디젤차의 상식을 파괴하는 정숙성과 승차감까지 보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디젤 엔진 개발이 늦었던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 원망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2001년 정부가 환경문제 등을 이유로 유럽 허용치보다 5~25배 이상 배출가스 기준을 높게 책정해 디젤 엔진 개발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했던 유럽은 100년이 넘는 노하우를 바탕으로 강력한 디젤 엔진을 장착해 세계 자동차 시장을 평정해나갔다.

안방 사수를 위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다급히 기존 중대형 세단 모델에 디젤 심장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이다. 쉐보레 말리부 디젤이 출시하자마자 올해 목표치 3000대를 완판했고 결국 국내 시장 80%를 차지하던 현대차마저 가장 자신 있는 모델, 그랜저의 디젤 모델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랜저는 전 국민이 추억 하나쯤 있을 만큼 오랫동안 최고급 세단의 명성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지금에서야 현대가(家) 큰형 자리를 에쿠스에 내주고 모든 총애와 지원은 제네시스에 양보했지만 그랜저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고급 세단의 대명사다. 1986년 아시안게임의 축포처럼 탄생한 그랜저는 30년 동안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업그레이드를 지속하고 연료 면에서도 가솔린에서 출발해 LPG, 하이브리드까지 추가하며 올해 1분기 국산, 수입차를 통틀어 판매 1위를 차지하는 등 식지 않는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그랜저가 수입차 열풍을 잠재우기 위한 강력한 대항마 역할을 부여받았다. 말리부가 GM의 계열사 독일 오펠의 디젤 엔진을 장착하고, 출시 일정을 앞당긴 르노삼성의 SM5는 유럽 명차 브랜드에서 검증받은 르노 디젤 엔진을 그대로 장착한 것이라면 그랜저는 현대차가 자체 개발한 엔진을 장착했다. 이 엔진은 이미 싼타페 등 SUV 모델에서 쓰고 있는 엔진을 승용차에 맞게 새롭게 튜닝해 202마력을 발휘하면서도 유로6 배기가스 기준에도 부합한다. 또한 편의 및 안전사양도 그동안 유럽 명차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다양한 첨단기술을 대거 반영했다.

지난 2일, 인천 송도와 영종도를 잇는 160km 시승 결과는 “설마?”가 “과연!”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수입차를 직접 겨냥했다는 현대차 측의 설명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명차들을 두루 경험한 자동차 전문기자들조차 처음에는 “아무래도 갭(gap)이 있지 않겠느냐”는 반응이었지만 시승을 마치고 나서는 “생각보다 훨씬 좋다. 경쟁력이 있다. 많이 팔리겠다” 등의 칭찬 모드로 바뀌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차가 사고를 제대로 쳤다”는 호평까지 나왔다. 디젤차 특유의 소음과 진동 면에서는 ‘감히’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을 압도한다는 평가까지 들렸다. 다만 세단 차량의 특성상 억대가 넘어가는 스포츠 쿠페 모델에 비해 폭발적인 드라이빙, 코너링 면에서는 다소 아쉬웠지만 그만큼 극단적인 운전을 할 기회는 단언컨대 일반 운전자들에게는 없고,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