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의 벼룩시장(flea market)에서 젊은 여성들이 중고물품 거래를 위해 흥정하고 있다. [사진=이미화 기자]

일단 구입을 했다면, 이제 그 제품은 중고로 취급된다. 그러나 중고가 됐다고 해서 값어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요즘 유통 시장에서 새롭게 급부상하고 있는 거래의 장이 바로 중고거래 장터, 일명 ‘플리마켓(Flea Market:벼룩시장)’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고물’, 남에게는 ‘보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중고물품 거래가 지난 몇 년 사이 더욱 성황이다. 고물가 시대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으며, 스마트한 소비자가 늘어남에 따라 관련 시장도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온라인은 물론 모바일 거래가 활발해짐에 따라 이용이 편리한 온라인 중고거래 역시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중고상품의 희소성을 활용해 원래 가격보다 더 비싼 값에 파는 경우도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만 활발하게 성황을 이루던 중고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한몫했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그동안 자동차, 패션, 명품 등이 중고시장에서 인기였다면 최근에는 아웃도어 관련 등산용품, 육아용품 등 그 대상 또한 광범위해졌다. 아울러 젊은 층에서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중고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 있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이제는 중고가 소비자들 간의 소통의 장이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중고시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바뀌었다. 그동안 선진국을 중심으로 중고물품을 사고파는 플리마켓이 최근 몇 년 사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온라인 마켓에는 중고물품만 따로 판매하는 카테고리가 생성됐으며 홍대, 이태원, 대학로 등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곳을 중심으로 ‘플리마켓’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중고 물건을 매개로 정기적인 의사소통의 장이 마련되기도 한다. 즉,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중고시장은 일본, 미주, 유럽 등에서는 이미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대중화된 문화다. 그래서인지 명품은 물론이고 깊은 역사가 밴 제품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중고시장이다.

중고시장의 일환으로 불리는 벼룩시장의 유래는 본래 유럽의 야시장(野市場)으로, 오래된 물건이나 중고용품을 직접 사고파는 장소를 지칭했다. 야시장이 벼룩시장으로 불리는 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먼저 벼룩시장에 내놓는 물건 대부분이 중고물품들이라, 이런 물건에는 벼룩이 들끓기 마련이었기 때문에 벼룩시장으로 불렸다. 프랑스 파리에는 시에서 일정한 자리를 할당받는 ‘정규 벼룩’과 ‘무허가 벼룩’들이 한쪽 귀퉁이에서 각자의 물건을 내놓고 파는데, 경찰이 단속을 나오면 감쪽같이 없어졌다가 경찰이 가고 나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벼룩이 튀는 것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 외에도 벼룩시장의 유래에 대한 설은 다양하지만, 유럽인의 근검절약 정신과 하나의 문화를 상징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특히 전문가들은 ‘중고라도 손을 봐서 쓰면 새것과 다름이 없다’는 이들의 검소한 생활자세가 유럽을 오늘날의 선진국으로 만든 원동력이라고 분석한다.

국내 중고시장 규모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지난 2009년 통계청이 온라인을 제외한 중고시장의 규모가 4조1272억원이라고 발표한 것이 유일하다. 거래 단위금액이 크고 수요와 공급이 활발한 중고 자동차의 경우, 거래 대수는 신차 시장의 두 배를 넘어섰고 지난해 시장 규모는 30조원을 돌파했다. 온라인 시장에서 중고물품의 거래 규모가 큰 곳 중 하나인 ‘중고나라’는 최근 1년간 230만 명이 새로 가입해 7월 초 기준 회원수 1248만 명을 넘었다. 이곳에서는 전자제품, 의류, 육아용품, 가구, 자동차, 산업용품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품이 등록되어 있다.

특히 최근 레저 활동 수요가 많아지면서 관련 제품의 거래가 활발하며, 신제품 수요가 많았던 육아시장에도 ‘새것 같은 중고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중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자연스럽고 보편화되면서 오히려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유통의 장으로 통하고 있다. 아울러 가구나 홈오디오와 같은 음향기기 등은 ‘엔틱’이라는 이름을 달고 새것보다도 가치 있는 잇 아이템(IT ITEM)으로 통하기도 한다.

온라인마켓, 중고제품 인기 고공행진

국내 중고 거래시장 규모는 10조원가량으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온라인 거래가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온라인 중고 거래의 인기가 높아지자 온라인 마켓 역시 관련 카테고리를 새롭게 생성하면서 소비자와 판매자가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먼저 올해 상반기(2014년 1월~5월) 기준 옥션 중고장터는 전년 대비 매출이 20% 신장했으며, 이 중 모바일 거래 비중은 전년(5%)에 비해 무려 6배 급증한 30%에 달했다.

옥션 관계자에 따르면 고물가로 인해 중고상품 거래가 늘고, 중고거래가 많은 IT와 패션상품의 신제품 주기가 짧아짐에 따라 거래 물량 역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타 중고거래 플랫폼과 비교해 경매 거래가 많은 옥션 중고장터 특성상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경매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 이용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모바일 중고장터에서는 IT/디지털기기, 육아용품, 레저용품 등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옥션 중고장터에는 지난 1일 신규 등록 상품만 약 500여 개가 올라왔다. 입찰자가 가장 많은 제품은 오메가 금통시계로 입찰자는 17명이며, 현재 판매가는 99만원이다. 이 외에도 마쓰이 HK-501 W 여성 골프클럽 풀세트(50만3000원), DELL Latitude E4300 노트북(14만8000원)도 각각 14명, 6명으로 입찰자 수가 많았다. 현재 중고거래 가격이 가장 높은 제품은 포크레인 02 삼성MX3A으로 580만원이다.

옥션 김영은 모바일팀장은 “경기불황과 알뜰쇼핑의 영향으로 중고매매 시장이 점차 성장하고 있다”며 “이는 고가의 레저용품부터 액세서리, 장식품 등 취급 물품들이 다양하고 새것과 같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11번가는 2012년 2월, 중고상품 전문관인 ‘중고스트리트’를 오픈했다. 리퍼, 전시, 스크래치 상품을 한데 모은 전문관으로 다양한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디지털기기와 가전, 명품 잡화, 유아용품, 도서 등을 갖췄다. 11번가 관계자는 “고물가시대에 점점 위축되는 소비 트렌드에 따라 온라인 쇼핑업체로서 발 빠르게 관련 수요가 있음을 파악, 공급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중고스트리트 등록 판매자 수는 3000여 명이며, 판매물품은 100만여 개에 육박한다. 특히 중고상품의 경우 2012년 전년 대비 55% 성장했으며, 이후 68%, 올해 1분기에는 70% 성장을 기록하며 꾸준히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중고스트리트 내 구매 트렌드에도 변화가 있다. 보통 중고상품은 노트북, 휴대폰, TV, 냉장고, 세탁기 등 디지털 기기를 중심으로 거래됐지만 최근 중고 명품의 거래량이 증가하고 있다. 누군가가 사용했던 중고상품 위주의 거래에서 리퍼, 전시, 스크래치 등 다양한 상품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아울러 레저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아웃도어 시장의 꾸준한 성장으로 헬스기구, 자전거 등 레저 관련 중고상품의 거래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또 블랙리스트 제도 및 스마트폰의 보급 확대로 인해 중고 스마트폰의 거래 역시 증가하고 있다.

11번가 관계자는 “새 상품 대비 가격이 저렴하고, A/S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고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일부 소비자층에서만 이뤄졌던 구매가 대중적으로 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온라인 중고 거래가 늘어남에 따라 피해사례 역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더치트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신고된 사기 건수는 1만7000여 건이다. 이는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하반기까지 합치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12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1만8000여 건, 2만5000여 건이었다.

피해액도 개인 평균 30만~35만원 안팎으로 지난해 전체 피해 금액은 약 77억원이다. 2012년 66억원에 비해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로, 특히 개인간의 거래 시에 더욱 주의를 요해야 한다는 게 관계자의 조언이다. 피해 품목은 휴대폰과 주변기기가 지난 3년간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이어 상품권, 패션, 유아동, 출산용품순이었다.

중고 트렌드의 진화 “1위는 서적, 아동용품 수요 급부상”

옥션의 조사에 따르면 10~60대까지 중고시장에서 가장 많이 찾는 제품 1위는 ‘서적’이었다. 관계자는 “서적의 경우 오래전부터 중고시장이 형성돼 있는 상태이고, 가격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알라딘은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중고 서적을 판매하는 곳이다. 할인율은 도서마다 다르지만, 신간이거나 베스트셀러인 경우에는 정가의 50% 이상에 판매되는 경우도 있다. 통상적으로는 정가의 30~40% 선에서 구매 가능하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알라딘 마케팅팀 김성동 팀장은 “신간 중에서 인기가 많았던 책들이 중고로도 인기가 많다”며 “베스트셀러의 경우 새 책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알라딘에 따르면 연령별로  35~45세 사이의 회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남성(40%) 보다 여성(60%)이 약간 더 많이 이용한다. 지역에 따라 대학교 근처에 있는 신촌점과 건대점은 대학생들이, 아파트가 밀집한 분당은 주부 고객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업계 관계자는 “책의 경우 문제가 있는 상품이 거의 없으며, 거래액이 크지 않아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찾는 중고 제품 중 하나”라며 “특히 새 학기가 시작될 때면 새책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의 중고책을 찾는 학생들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엄마들이 온라인으로 손쉽게 육아용품을 중고로 거래할 수 있는 ‘맘스다이어리’에 따르면 월평균 4000여 명이 이용하고 1만 개 이상의 상품이 등록되고 있으며, 거래완료는 약 30%에 이른다. 거래액은 월 기준 1억5000만~2억원가량이다. 온라인 중고시장은 스마트폰 사용자 증가와 더불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개설로 인해 거래량이 기존에서 3배 이상 증가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거래량이 많은 제품은 유아의류, 출산용품 등이다. 맘스다이어리 관계자는 “특히 유아의류의 경우 아이가 금방 크기 때문에 몇 번 입히지 못하고 중고시장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유모차는 예전엔 고가의 수입 제품이 시장에 많이 나왔지만, 최근 차선책으로 사용 가능한 휴대형 또는 절충형 제품이 인기”라고 말했다. 제품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유모차의 경우 약 1년간 사용했을 때 신제품 대비 평균 50~60%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중고 육아용품 시장이 커지는 이유에 대해 관계자는 “육아용품은 대부분 사용기간이 길지 않다”며 “짧으면 3개월, 길어도 3년을 넘지 못하는 제품이 많아 중고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고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고 있으며, 스마트폰에서 손쉽게 서핑하듯 제품들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을 육아용품 관련 중고시장이 커지고 있는 이유로 꼽았다.

‘가격불문’ 중고시장, ‘엔틱’이라 부른다

중고라고 해서 더 저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고이기 때문에 더 비싼 중고가 있다고 하니 시장에서는 이들을 ‘엔틱’이라고 부른다.

방배동에 위치한 ‘논현물물중고명가’ 하상수 대표는 “엔틱 가구는 수요가 많으면 금액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게 일반적”이라며 “소품의 경우 1000만원 단위까지 다양하며, 국내에 한두 개 있는 제품은 판매보다 경매로 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 고객은 40~60대 중산층이 가장 많다. 대부분이 유럽에서 들여온 고급 중고 가구라서 가격은 일반 국내제품과 비교해 높은 편이다. 10만원대에서 시작해 1000만원대까지 다양하게 취급하고 있으며 백만원 단위의 가구 거래 빈도가 가장 많다. 고급 중고 가구를 취급하는 곳은 강남 서초에만 10여 개 매장이 밀집해 있다.

이태원에는 90년대 후반부터 엔틱가구거리가 형성됐다. 현재 80여 개 매장이 운영 중이며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거리인 만큼, 이곳을 찾는 연령대도 20대 후반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가구거리에서 매장을 운영 중인 A씨는 “유럽에서 건너온 100년이 넘은 장인들이 만든 가구를 볼 수 있는 곳”이라며 “지난 5월에는 엔틱 벼룩시장을 열었는데, 아시아에서 유럽의 엔틱가구로 벼룩시장을 여는 곳은 거의 없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대부분 50년 이상된 골동품이 많기 때문에 만들어진 당시와 지금 가격을 정확히 비교할 순 없지만, 역사적 가치가 커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라는 게 관계자의 귀띔이다.

우리가 여전히 된장국을 좋아하듯이, 옛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빈티지 오디오 역시 인기다. 은퇴 후에 경제력을 갖춘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고가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으며, 금액이 커 거래 빈도가 많은 편은 아니다.

인기가 많은 제품인 ‘매킨토시 275’는 약 50년 전에 만들어진 제품으로,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당시 400만원 정도였다. 지금은 600만~7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마란츠 7’의 경우에도 7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출시 당시 가격은 300만원 정도로 2배 이상에 판매되고 있는 셈이다.

업계 전문가는 “엔틱 소품의 경우 부르는 게 값이기 때문에 수요가 많을수록 가격은 더 올라가기 마련”이라며 “특히 오래된 물건의 가치에 중점을 두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중고라는 인식보다는 하나의 문화를 사고판다는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