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으로 근무하는 리지위엔은 유창한 한국어 때문에 종종 한국 유학생 혹은 조선족으로 오해받곤 한다. 리지위엔은 장쑤 지역에서 나고 자란 한족이다. 한국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녀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은 대학교 때 열심히 배운 덕분이다. 그렇다고 대학교 때 전공이 한국어도 아니고 행정학이다.

공무원이 되기를 원해서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지만 영 흥미를 갖지 못하던 차에 엄마가 즐겨 보던 한국 TV 드라마를 함께 보다가 한국어에 흥미를 가졌다. 같은 대학 내에 있는 한국어학과에 청강을 문의했다. 몇 번 거절하던 교수들은 리지위엔의 열정에 반해 결국 청강을 허락했고 리지위엔은 학점도 인정받지 못하고 학위가 나오지도 않는데도 리포트는 물론이고 시험도 똑같이 치렀다.

그 덕택에 대학을 졸업할 무렵 리지위엔의 한국어 실력은 전공자들보다 오히려 더 뛰어난 수준이 됐고 많은 한국기업에서 통역으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교직원으로 일하느라 사실 한국어를 쓸 기회가 전혀 없지만 리지위엔은 여전히 많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친구를 사귀고 카카오톡으로 한국말 채팅을 한다. 리지위엔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중국 사람들은 어순이 비슷해서 영어를 잘한다고 한다. 중국어의 어순이 영어와 비슷하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지만 중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중국 대학생들은 (한국 대학생에 비해서) 영어를 잘한다’고 답하곤 한다. 물론 대다수 중국인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 택시기사나 상점의 점원과 영어로 대화를 하자면 온갖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해야 된다.

그러나 고등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은 한국학생들에 비해서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대체로 거리낌이 없고 문법이나 발음이 엉망이더라도 적극적으로 말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한국의 대학생과 중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영어 시험을 친다면 그 결과가 많이 다르지는 않을 터인데 중국 학생들의 적극성이 상대적으로 영어를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싶다.

중국에서도 문법, 암기식의 영어공부에 대한 지적이 나온 지 오래됐고 학생들이 테스트 위주의 영어공부에만 익숙하다는 점은 한국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영어를 외우거나 큰 소리로 읽으면서 공부하는 학생이 많아서 아침 일찍 대학 캠퍼스에 들어가면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웅얼거리면서 영어책을 읽는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워낙 인구가 많다 보니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는 숫자도 적지 않은 것이 한몫했을 것이다.

중국인들의 외국어 능력에서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영어 외에 불어, 독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다양한 제2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유명 관광지에 가보면 외국인 단체관광객을 이끄는 중국인 가이드들을 볼 수 있는데 영어가 가장 많이 들리기는 하지만 종종 낯선 언어들이 귀에 들린다. 불어나 독어는 물론 러시아어나 포르투갈어까지 다양한 언어별로 가이드들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직업이니 당연히 제2외국어를 하는 것이겠지만 리지위엔과 같이 직업이나 전공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에도 제2외국어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중국의 공립학교들은 제2외국어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인상적이다. 한국의 고등학교에선 영어 외에 제2외국어를 대부분 가르치지만 중국의 공립학교는 영어 외에 제2외국어는 따로 가르치지 않는다.

물론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관심 있어 하는 별도의 제2외국어를 중점적으로 배운다. 제2외국어를 학교에서 접하지 않은 대다수 학생이 언어를 배우게 되는 계기는 ‘흥미’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

한동안은 일본 드라마나 연예인에 빠져서 일본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요즘은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고맙게도 한류 열풍 덕택에 어디서나 한국인이라고 하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듣게 된다.

흥미가 기본이 된 언어공부는 훨씬 빨리 습득하는 반면 의무로 시작한 언어공부는 학습속도가 훨씬 더디다. 한국에서도 중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어났는데 정말 흥미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실용성을 따져서 ‘배울 가치’가 있어서 중국어를 택한 것인지에 따라서 중국어의 구사수준이 현저히 차이가 나는 것을 보았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못 이긴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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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형제만큼 찐한 중국의 사촌형제’

지난 1980년대부터 시행되어온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은 중국인의 생활과 풍습, 문화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성인인 80년대와 9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은 한 자녀 정책 세대로 소수민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형제자매가 없다. 그런데 이들 80년대, 90년대 출생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우리 언니’ 혹은 ‘내 동생’과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은 한 자녀 정책이 아니냐, 어떻게 동생이나 언니가 있느냐 라고 재차 물으면 그제서야 ‘사촌언니’이거나 ‘외삼촌의 아들’이라는 식의 설명이 뒤따라 나온다. 이들의 부모세대가 태어난 60년대와 70년대에는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에 따라 한 자녀로 태어난 자녀들은 자신의 형제가 없어 사촌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사촌형제는 한국에서의 친형제와 못지않은 우애와 끈끈한 관계를 보여준다.

자녀가 한 명뿐인 부모들에게도 조카는 특별한 존재라서 경제적 여력이 허락하는 한 조카의 대학등록금을 대신 내어주는 이모, 고모, 삼촌 등이 적지 않다.

또 조카가 대도시나 해외로 공부나 취업을 하러 나가면 돈을 갹출해서 집을 사주거나 얻어주는 등 중국에서의 사촌관계는 한국의 사촌관계보다는 훨씬 더 끈끈하다.

이제 중국에서도 부모 한쪽이 독자인 경우 2자녀를 가질 수 있도록 허용돼서 친형제자매와 같은 사촌형제자매도 옛말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