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창업한 고 이병철 회장. 그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이틀이나 사흘 동안 면접을 봐도 아쉽다고 했다.

취업시즌입니다. 훌륭한 인재를 찾아내기 위해 기업들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캠퍼스에서 채용박람회를 여는 대학도 많습니다. 그러나 취업의 문은 여전히 좁습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데 비유될 만큼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인재 선발의 원칙으로 창의성과 상상력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대기업,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일류대학 출신, 성적이 우수한 쪽에 더 많이 열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인재일까? 어떻게 뽑아, 어떻게 활용해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까?

삼성을 창업한 고 이병철 회장. 그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정말 신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틀이나 사흘 동안 면접을 볼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면접 결과를 독특하게 표시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면접자 서류에 O표를 하면 무조건 합격을 시켜야 했습니다. 반대로 X표는 아무리 면접위원들이 우수한 사람으로 판단을 내려도 탈락시키라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면접자에 대해서는 ( )표시를 했는데, 이 표시는 면접위원들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과 조직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손해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만 골라냈던 셈입니다.

당시 삼성은 면접과 학과 점수를 동일하게 50점씩 배정했습니다. 비록 학과 점수가 좋아도 면접 점수가 나쁘면 탈락시켰습니다. 또 반대로 학과 점수는 나빠도 면접 점수가 출중하면 합격을 시켰습니다.

삼성에서 뛰어난 최고경영자(CEO)로 꼽힌 인물 중에는 면접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학과 점수보다는 그 사람의 됨됨이, 인간성, 잠재력을 더 높이 샀다는 점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맹상군은 식객들을 정성껏 대우했습니다.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위기 때 보답을 받았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이렇게 철저한 검증을 거쳐 인재를 뽑았는데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는 점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업의 승패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는데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반반의 확률밖에는 자신이 없었다”는 말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만큼 인재를 선별하는 것이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성적 못지않게 면접을 중시한 것이 삼성 경쟁력의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고전에서 배우는 리더십 참조-김민홍 편역)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2300년 전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맹상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계명구도-그것은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을 말합니다.

처음엔 보잘 것 없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식객이 맹상군을 위기에서 구했다고 해서 나온 말입니다. 아무리 천한 재주라도 쓰일 데가 있다는 뜻입니다.

춘추전국시대 말기. 그때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랑객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적지 않은 백성들은 식객이란 이름으로 세도(勢道) 있고 돈 많은 귀족 집에 얹혀살고 있었습니다.

맹상군이 거느린 식객이 3000명을 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살아가는 떠돌이 신세였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백수가 넘쳐나는 요즘 현상과 비교하면 무리일까요?

물론 이 고사성어는 천박한 꾀를 써서 남을 속이는 사람을 이를 때 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사람 등 특별한 재주, 기능을 가진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요즘의 세태를 한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맹상군. 그는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재상을 지낸 진영의 아들입니다. 그의 아버지 진영은 3대째 왕을 섬겨 부(富)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쥔 인물입니다.

그런 막강한 아버지를 두고도 맹상군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길하다는 이유 하나로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버림 받은 후 어떻게 살았는지, 두뇌가 얼마나 명석했는지, 행적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매우 성실했고, 사람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나 봅니다.

그 덕분에 그는 장성한 후 아버지의 눈에 들어 집안에 다시 들어왔고, 아버지는 그에게 집에서 빈객을 접대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그가 이 일을 맡으면서 빈객의 숫자는 3000여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명성도 높아졌습니다.

이 덕분에 맹상군은 그 많은 형제 중에서 후계자로 선정되고, 아버지의 영지까지 물려받았습니다. 40명의 형제 중 유일하게 버림받았지만 가장 인정받는 영광을 안게 된 셈입니다.

그는 모여드는 식객들을 정성껏 대우했습니다.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한결같이 똑같은 대우를 했습니다. 비록 죄를 짓고 도망쳐온 사람이라도 남다른 재주가 있기만 하면 반겨 식객으로 맞이했습니다. 몰려든 식객 중에는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를 흉내 내는 좀도둑도 있었고, 선비도 있었습니다.

맹상군의 이름과 덕행은 중원을 덮어 갔습니다. 온갖 인재들이 맹상군의 처소로 발길을 이었습니다. 결국 맹상군은 제나라의 실력자가 되었고, 동시에 그로 인해 제나라가 패자가 되리라는 소문까지 공공연하게 돌게 됐습니다.

당시 천하의 패자는 누가 뭐래도 진나라였습니다. 진의 소왕은 맹상군의 인물 됨됨이를 전해 듣고 꼭 만나보고 싶어 했습니다. 진나라의 재상에 발탁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맹상군은 소왕의 부름을 받고 진나라에 갔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빈객들은 그와 동행하기를 거절합니다. 오로지 개와 닭소리 흉내내는 좀도둑만 따라 나섰습니다. 진의 소왕은 맹상군을 만나자말자 마음을 바꿉니다. 맹상군을 재상으로 임명할 경우 진나라보다는 제나라를 먼저 생각할 것이라는 모함 때문입니다.

그는 이런 모함에 걸려 진나라의 재상이 되지도 못한 채 구금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습니다. 결국 맹상군이 이 위기를 벗어나는 데는 부하들의 힘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는 진나라에서 도망쳐 고향으로 가려면 왕이 사랑하는 여인의 힘이 절대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맹상군이 진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소왕에게 이미 선물로 바친 호백구를 구명운동의 대가로 요구했습니다. 호백구는 여우의 겨드랑이 털로, 그 값이 천금에 해당할 만큼 2300년 전에는 정말 귀한 보물로 여겨졌습니다.

남은 호백구가 없던 맹상군으로서는 암담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개 가죽을 덮어쓰고 궁중에 몰래 들어가 도둑질을 잘하는 부하가 호백구를 훔쳐 맹상군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호백구를 받은 애첩은 소왕의 앞에서 눈물로 호소합니다. 재상으로 앉히겠다고 초청해놓고 이유 없이 옥에 가두고, 죽인다면 앞으로 많은 인재들이 진나라를 등지게 될 것이라는 진언을 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왕을 어떻게 믿고 모시겠느냐는 말까지 합니다.

듣고 보니 애첩의 말이 맞았습니다. 소왕은 그날로 맹상군을 풀어줍니다. 풀려난 맹상군 일행은 바로 말을 몰아 달아납니다. 그러나 소왕은 또 다시 변덕을 부려 맹상군 일행을 뒤쫓습니다.

맹상군은 국경 근처까지 왔으나 성문이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첫닭이 울어야 성문이 열리게 돼 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식객이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자 성문은 열렸습니다. 닭 울음소리로 착각한 문지기들이 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맹상군은 국경을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성적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인재를 선발하고 계십니까? 지금도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것, 개의 흉내를 잘 내는 것을 천박한 재능으로 보고 계십니까? 성적이 좋지 않다 해서 취업을 포기하진 않았습니까? 자신이 가진 재능이 닭 울음소리, 개의 모습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스스로 비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은 없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하나의 돌멩이도 소중하게 쓰일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더욱 그렇습니다. 저마다 숨은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재능을 찾아내고, 숨겨진 재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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