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내부 전경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중심 사상으로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형태가 있는 것은 공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집착하는 특정한 대상도 조금만 마음을 넓게 두면 대상이 아닌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이므로 일상에서의 집착을 버리자는 뜻이다. 사람들이 제주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공(空)이지 싶다. 이처럼 화가 이왈종의 그림을 만나면 새가 날고 물고기가 춤을 추고 꽃과 사슴 그리고 남녀상열지사가 함께 뒹굴고 있다. 살아 온 세월만큼이나 편안해져 버린 그의 그림은 잡놈의 그림이고 공(空)의 다른 이름이다. 제주의 자연 풍경을 따듯한 은유와 유쾌함으로 그려낸 그의 그림은 여행자들도 반하게 만들어 버린다. 오늘은 정방폭포와 서복기념관을 이웃에 두고 위치한 이왈종미술관을 찾아 여행자의 중도(中道)를 만나 보았다.

정방폭포를 통해 만나는 제주 생활의 중도

작품 제주생활의 중도(도자기)
여행자의 중도, 현대인 누구나 중도의 삶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약간의 욕망과 뒤틀린 욕정은 적당히 부조리한 삶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제주라는 보물섬이, 이왈종미술관 여행이 주는 행복은 제주 여행자를 중도의 삶으로 이끌어 준다는 점일 것이다. 중도의 삶을 염원하며 만물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버린 그의 작품 어디에서도 권위를 찾아볼 수 없다. 미술관 층마다 만나게 되는 유쾌하고 밝은 그의 그림을 통해 이제 어깨 위에 무겁게 짊어진 도시의 염원을 부수고 세상 모든 욕망과 허구를 버리는 여행을 만나자.

미술에 문외한인 대중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그의 그림은 매력적이다. 그의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대중과 친근하고 접근성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소통이 쉬운 화가 이왈종은 마냥 편안하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 공명, 함께 울리는 심장의 파고가 정방폭포의 물줄기처럼 힘차다.

이왈종의 힘, 여성과 여행을 유쾌하게 그려내는 힘이다

남성성이 강한 화가와는 다르게 그의 그림 속에는 원숙한 삶을 마주볼 수 있고 여성의 풍만함을 만날 수 있다. 서귀포가 여성들에 의해 문화와 경제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만물의 이치를 여성들이 더 잘 깨달은 까닭 혹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덜 권위적인 이유일까. 그림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여인들의 터치가 로맨틱해 보이고 풍만해 보이는 건 결국 서귀포를 닮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전통 민화풍에 바탕을 두고 독특한 색감을 사용하는 그의 작품 세계가 여심과 교감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컬렉터를 반하게 만드는 에너지, 중도와 연기작용

작가는 컬렉터를 넘어설 수 없다. 작가의 생각을 읽어주는 이가 곧 컬렉터이기 때문이다. 그림시장은이 작가와 컬렉터 그리고 평론가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지지만 극소수의 마니아가 주는 열망은 곧 작가의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한없이 부드럽고 살가운 그의 작품을 통해 컬랙터가 반하는 한 가지 도가 있다면 그것이 중도이자 연기작용이다. 생명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지닌다든지, 꽃이 지고 피는 자연의 이치가 곧 연기작용이며 이는 생명 앞에서 모두 평등해지는 중도의 이치와 닮아있다. 제주 여행이 주는 매력 중 하나이다.

Y담의 업보 그리고 붓으로 그린 시에 관한 후일담

잘 살아왔다. 세상은 한때 그를 골프 화가로 야유한 적도 있으나 23년 제주의 풍광과 벗하다 다듬어진 사유의 깊이는 생각의 폭을 넓혀 주었고 이제 주변인을 지나 중도의 화가라 부른다. 결코 피하지 않고 허투르지 않게 화가로서 우직하게 걸어 온 지난 40년. 이왈종미술관을 만들고 왈종후연미술문화재단을 세워 유니세프 후원기금을 기부하고 지역 아동들을 가르치고 있다. 미술사적 혹은 개인사적 의미 어느쪽을 살펴도 한 줄 시로 담아낼 수 없는 필생의 업을 쌓아가고 있다. 추계예술대 교수 생활과 월전 미술상을 마지막으로 중앙 화단을 떠나 이곳 서귀포 생활을 시작한지 23년. 조건이 갖춰지면 소멸하는 연기의 원리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의 그림은 이제 깨달음의 그림이 되어 있다.

깨달음을 얻게 하는 그의 그림을 생각하면 한 번만 더 그의 작품이 뒤집혀줬으면 하는 필자의 바람은 헛된 욕망일까. 오는 11월 중국 뻬이징 금일미술관에서 있을 백남준작가와의 `한국작가 삼인행 전`을 통해 제자백가를 넘나드는 사유의 우주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왈종미술관을 찾는 제주 여행자들이 혜원 신윤복의 화첩이 놓여진 그의 작업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여름 어느 화요일, 당신이 미술관 커피숍에 들러 화가를 만나게 되고 근처 맛집 멧돌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기울일 수 있다면 곧 제주 여행의 행복이다. add61@

미술관 아트샵을 찾으면 행복해지는 여행